일을 하고 싶지만 마땅한 기술을 배울 곳도, 교육비를 마련하지도 못하는 기초생활 보장자나 실직자들이 적잖다.
그런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자활 후견기관'. 양식을 제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양식을 스스로 마련토록 하자는 기관이다.
◇인생 역전, 여기 있었네
우산 공장 여사장에서 부도난 실패자로, 그리고는 산더미처럼 쌓인 빚, 덮쳐온 이혼…. 2년 전까지만 해도 김순자(53.여.대구 대명동)씨는 하루하루 끝도 없이 캄캄한 터널 속을 걷고 있었다.
자녀 둘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젊었을 때 익힌 봉제기술로 '종아리에 알이 배도록' 미싱을 돌렸지만 일당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김씨의 힘빠진 어깨를 다독여 준 곳은 (사)불교사회복지회의 대구 '남구 자활 후견기관'. 그곳 봉제사업단에서 김씨는 2001년 초 일을 배우기 시작해 2년만에 '반짇고리 봉제공동체' 대표로 부활했다.
교육 받을 때는 월 50만원 가량을 지원받아 지냈으나 지금은 월 80만원을 자신의 손으로 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족감. 만족감은 두 배, 세 배라고 했다.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봉제 손가방을 샘플 삼아 이러저리 치수를 재고 뜯어고쳐 봤지만 판매용으로 내놓기는 역부족. 미싱 바늘, 재단기 날에 손가락을 다치기도 일쑤였다.
그러나 불교사회복지회는 김씨의 열정만 믿고 홀몸노인들에게 줄 배낭 1천개를 주문했다.
그것이 첫 주문. 직원들과 연일 밤을 샜다.
직원 3명이 첫 수입 30만원씩을 나눠 가졌다.
천금 같은 돈이었다.
"실패 불안요? 교육시켜 주고 사업비 대주고 판매망까지 뚫어주는 든든한 '빽'이 있는데 뭐가 겁 나겠습니까? 닥치는 대로 기술을 익혔을 뿐입니다". 김씨는 자활 후견기관을 "꿈을 키워주는 곳" "팍팍한 현실에 도전을 가능케 해 주는 곳"이라고 했다.
김씨는 지난해 재료를 사러 재래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천연염색을 알게된 뒤 사업 영역도 넓혔다.
감이 담백하면서도 알레르기 유발이 적은 천연염색을 보고 "이거다"는 생각이 들어 그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일에 빠진 뒤 '살림'도 많이 늘었다.
미싱 7대, 재단기 1대, 그리고 그동안 하나하나 만들어 놓은 카펫, 이불, 방석, 쿠션 등의 봉제품들….
"자활후견기관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저하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50여만원의 국가 지원금에 안주하기보다는 자립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히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김씨는 오는 6월쯤 후견기관 안내로 사업자금을 융자 받아 봉제가게를 열 창업의 꿈에 부풀어 있다.
◇나도 성공할 겁니다
박경식(49.가명.대구 복현동)씨는 아침마다 출근할 곳이 생겨 행복하다고 했다.
그가 작년 10월부터 가는 곳은 (사)생명의 전화 대구 '북구 자활후견기관'이 운영하는 '풀비 도배 사업단'. 월~금요일 사이 도배 교육을 받고 현장 실습을 하는 것이다.
박씨도 의류대리점을 하면서 남부럽잖은 생활을 하다 IMF사태 때 부도를 맞았다고 했다.
이어서 부인과 헤어지고 아이들과 월세방으로 내몰렸다.
3여년간 술과 함께 자포자기했다.
그러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일어서야겠다며 자활 후견기관을 찾았다.
그가 선택한 것은 예전 실내 인테리어 종사 경험을 살릴 수 있는 도배. 한달 가량 수업을 받고 어린이집, 경로당, 홀몸노인 집 등을 돌며 실습 겸 무료 도배를 했다.
일이 녹록지 않았다.
"막상 현장에서 벽지를 재단하고 풀칠을 해 보니 눈대중으로 될 일이 아니더라구요".
일을 시작한 지 벌써 6개월. 이제는 종이.섬유.비닐 등 벽지 종류에 따라 풀에 섞을 물 농도를 알게 됐다.
벽지에 주름이 생기기 않게 하려면 풀질 후 10~20분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이젠 방 구조만 봐도 벽지를 자투리 없이 재단할 수 있을 만큼 머릿속에 전개도가 그려질 정도
"한 주에 3일 정도는 돈이 되는 일을 하러 나갑니다.
선입견 없이 일을 맡겨준 고객에게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합니다". 박씨는 도배 기술을 하루 빨리 완전히 익혀 공동체를 만들고 조그만 인테리어 가게를 열고 싶다고 했다.
◇생산복지의 새로운 시도
자활 후견기관은 1997년 7월 정부의 '생산적 복지' 이념에 따라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전국 10개이던 당초의 이름은 '자활 지원센터'. 명칭은 국민 기초생활 보장법 발효로 2001년에 바뀌었다.
자활후견기관은 2000년에는 70개, 2001년에는 157개로 증가했으며 현재는 193개에 달한다.
올해 말까지 242개로 증가될 예정. 대구.경북에선 첫해 대구 북구에 첫선을 보인 뒤 현재는 대구 구.군마다 1개, 경북에 11개가 운영되고 있다.
이용자는 대구.경북 각각 50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기관 대부분은 시.군.구청 위탁을 받아 비영리법인들이 운영한다.
자활후견기관은 근로 능력이 있으면서도 월 가구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기초생활 조건부 수급자'들을 주대상으로 운영된다.
이들로 '자활사업단'을 구성한 뒤 '자활공동체'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 생계를 정부 지원에만 의존케 하거나 취로형 공공근로가 아닌, 새로운 기술을 취득해 이득을 창출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동사무소에 신청하면 후견기관의 상담, 기초조사를 받은 뒤 원하는 분야의 '사업단'에 배치될 수 있다.
대구 경우 주로 청소, 도배, 간병, 봉제, 도시락, 세차 등의 일이 주종. 현재 이용자는 40, 50대가 많지만, 대상은 62세까지로 돼 있다.
이용자들은 사업단에서 1~3개월 교육을 받고 무료 실습이나 유료 실습 기간을 거친다.
자활공동체로 자립하기까지는 2~3년 걸린다고. 공동체를 구성하기 전까지는 하루 2만3천(공익형)~2만7천원(시장형), 월 50만원 가량의 인건비(국비 80%, 시비 20%)를 지급받는다.
자활공동체가 구성되려면 사업단에서 받는 인건비 이상을 벌 정도로 사업성이 인정돼야 하고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한다.
또 공동체를 구성하더라도 6개월~1년 가량의 유예기간 동안 인건비를 계속 지급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자활공동체에서는 분야에 따라 1인당 월 70만~120만원 가량을 벌며, 수익은 일정한 창업기금 적립액을 제외하고는 구성원들에게 분배된다.
대구 북구 자활후견기관 신승수 팀장은 "자활공동체에 소속되더라도 초기엔 전문성이나 인지도가 떨어져 작업 단가가 일반의 70%에 불과하고 그나마 일거리 구하기도 쉽잖아 중도 포기자들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자립의 꿈을 놓지 않고 꾸준히 교육과정을 거친다면 얼마든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신 팀장은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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