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시종(61.문경중 교장) 문경지부장은 지난 1976년 경북에서는 경주와 안동에 이어 세번째로 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를 결성, 문학 불모지 문경의 문학발전과 후진 양성에 주력해 왔다.
그는 경북에서는 두번째로 문예지 '백화문학'을 77년1월 창간했고 여류문인들의 중앙문단 등용문인 '백산 전국여성 백일장'을 지난 85년부터 시작해 경북유일 여성 백일장을 매년 열고 있다.
또 지역의 문학애호가 17명을 중앙 문단에 등단시켰고 지역문학의 숨은 일꾼을 찾는 백화문화상과 정문문학상을 82년과 93년에 각각 제정했다.
42년 문경에서 태어난 김시종씨는 '자신의 삶이 문학 그 자체다'는 평가처럼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다.
그는 초교 5년 시절, 6.25 전쟁의 참화속에서 우연히 접한 소년세계 11월호의 동시 '어머니 생각' 두 소절을 읽고부터 문학의 꿈을 키웠다.
고교1년인 57년에는 당시 최고 발행부수의 학원지에 '재수없던 날'로 입선했고 대학시절인 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도약'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그러나 그는 '외팔이 춘희' 등 시집22권과 4집째의 개인 시잡지 '영강시안'을 펴내면서도 문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열어 보고픈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았다.
"창작활동을 하면 되지 기념회를 굳이 열면 뭣하느냐"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아픔도 적잖았다.
지난 80년 한 여성잡지에 이달의 명시로 '외팔이 춘희'가 선정, 소개되자 당시 군사정권이 담당기자를 박해하는 바람에 그 기자가 미국으로 망명을 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4.19당시 앞장서 군사정권에 저항하던 한 여성이 군경이 쏜 총탄에 맞아 한 팔을 잃고 겨우 목숨을 건졌으나 생계가 막연하자 몸파는 창녀로 전락한 슬픈 우리네 역사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했기 때문.
자유를 갈망했던 김 지부장의 저항적인 모습은 자신의 회갑기념 시집에 수록된 '도로고'란 민청학련 사건 당시 발표한 시에서 잘 나타난다.
'포장된 도로 밑에는 /많은 돌들이 감금되어 있다.
.. 아스팔트를 밟으면/폭신한 느낌뿐 /강경한 돌의 감촉을 느낄 수 없다'.
그는 청상으로 평생을 보낸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사모곡을 여러편 창작하여 그 애절함을 노래함은 물론 사재를 털어 그의 어머니 이름을 따 '안복임 장학회'를 만들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문경.박동식기자 parkd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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