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여년 전 러시아의 한 왕족 청년이 유럽 여행길에 나섰다.
신분을 속이고 부둣가 등지에서 목수로 일하면서 서구 문물을 몸소 체험하기를 2년 여.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곳 군주들을 만나고 외교술을 익혀나갔다.
서유럽의 산업기술과 국가관리 능력을 지닌 인재를 모으는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꿈은 오직 하나 '러시아 개혁'이었다.
"역사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러시아 근대화의 아버지 표트르 1세는 이렇게 역사에 등장한다.
▲귀국 후 권력을 잡은 그는 턱수염부터 잘라내고 러시아 재생산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짜르에서 황제로 명칭을 바꾸고 모든 러시아인들에게 전통 옷을 금지시켰다.
징병제도를 도입하고 기술학교도 세웠다.
1703년에는 핀란드 만(灣)을 출발점으로 하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위해 수도 모스크바를 옮기기로 했다
9년동안 엄청난 인력과 비용으로 '유럽으로 향하는 창(窓)'인 상트(聖) 페테르부르크는 이렇게 탄생한다.
시인 푸슈킨이 "나는 너를 사랑한다.
표트르의 창조물"이라며 극찬한 도시다.
▲북위 60도에 건설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사실 사랑받을 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북국의 추위, 네바 강의 잦은 범람, 발트해의 짙은 습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표트르는 '뼈 위에 세운 도시'란 말을 들으면서도 이를 강행했다.
1914년에는 페트로그라드로 이름이 바뀌었고 1917년에는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의 현장이 됐으며 1924년 레닌 사후에는 레닌그라드로 개칭됐다가 1991년 구 소련 붕괴 이후 본래 이름인 상트 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을 되찾은 영욕의 도시다.
▲이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 때 건설된 수많은 운하와 다리로 인해 광대한 도시계획의 전형으로 '북쪽의 베니스'로 불리고 있다.
해군성, 겨울궁전, 대리석궁전 등은 바로크와 순수 고전주의라는 정반대 건축 양식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건축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당연히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돼있다.
많은 러시아인들이 수도와 의회를 다시 이 곳으로 옮겨야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도시 건설 3백주년을맞아 온통 축제 분위기라고 한다.
23일부터 6월 1일까지 벌어질 축하 행사 기간에는 미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세계 50여개국 정상들이 도시를 찾아 잇단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특히 축제 기간엔 일본 예술가 히로 야마가타가 네바강의 수면과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벽면을 스크린삼아 레이저 쇼를 연출한다고 한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우리는 이런 세계적 축제 행렬에 끼지도 못하고 소외당하고 있으니 '세계화'를 위해 그동안 무엇을 해왔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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