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오해와 갈등

지난주 수도권 어느 도시의 시민단체 초청으로 강연을 한 일이 있다.

'명복제 기술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부터 시민단체중에는 반대론도 적지 않아 신경이 쓰여지는 강연이었다.

청중은 교사, 의사, 변호사, 기업가, 순수 시민단체 임원 등 40여명과 인근 고등학교의 특별요청에 의해 20여명의 학생이 참석하였다.

그동안 생명복제 연구영역에 대해 원론적인 반대기조를 견지하고 있는 천주교, 기독교계 등의 초청강연 경험은 적지 않았으나 시민단체와의 만남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 분들에게야 말로 생명복제 기술이란 무엇이며, 현재 어느 단계까지 진행되어 있고, 왜 이런 연구가 필요한지를 정확한 정보 전달을 통해 잘못된 오해를 풀고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사회, 윤리적 문제점과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인지에 대한 진솔한 대화와 논의가 연구자와 시민들 사이에서 이루어질 때, 생명복제 기술의 선용으로 인류가 누리게 될 21세기의 보다 나은 삶의 질이 참다운 가치와 의미를 지니게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여 동영상 화상 등 슬라이드 자료를 준비하고, 기술보호 차원의 국익적 특수 항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개하기로 마음 먹었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생각으로 연구도중 경험했던 각종 장기의 기형 등 문제점에 대해서도 과감히 밝혔다.

가능한 쉽고 솔직하게, 나의 개인적 경험담을 곁들여가며 슬라이드를 한 장씩 넘겨 갈 때마다 굳은 얼굴에 심각한 눈초리가 가득하던 강연장의 분위기가 점차 풀려가고 종종 파안대소가 울리며 연자와 청중이 일체가 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가 접한 난치병 환자와 그 가족의 모습이 영상으로 공개될 때는 적지 않은 참석자가 머리를 끄덕이며 생명복제기술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표시했다.

예정되었던 40분의 강연은 요청에 의해 1시간 반으로 연장되었고, 강연이 끝난 후에는 질의와 코멘트가 연달아 이루어졌다.

학생들을 인솔하고 참석했던 교감선생님과 몇 분의 여선생님들은 이런 강연을 다른 학생들에게도 들려줄 수 없겠냐며 정중히 구두초청을 하시기도 했다.

참석했던 학생 모두로부터 열성적인 질문과 사인 요청이 쏟아졌으며, 일부 청중은 개별적으로 기념사진 촬영을 제의하기도 하였다.

그 단체의 책임자로부터 강연에 이어 있을 뒤풀이 행사에 동행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기꺼이 응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통된 흐름은 이제껏 생명복제 기술의 실체와 분야 과학자들의 심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큰 오해와 불신이 계속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제부터는 자신들이 앞장서서 황 교수의 연구분야를 반대론자들에게 이해시키는 역할을 하겠다는 제의를 하기도 해 필자의 가슴을 벅차게 만드렀다.

뒤풀이 말미에 전국적 조직을 지닌 어느 시민단체의 그 지역대표가 필자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생명복제 기술 회의론자들은 필자를 맹목적 애국주의자요, 과학의 민주화를 도외시하는 효율 우선주의자라고 비판한다는 것이다.

산업기반이라고는 전무하던 제3공화국 시절, 잘 살아보세라는 기치대신 정치, 사회, 경제의 민주화만을 우선했다면 대한민국의 오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과학의 현대화를 추구하면 과학의 민주화는 자연 수반될 수 있는 사안일 것이다.

또한 과학에는 국경이 없으나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과학적 애국심을 주창하는 것을 맹목적 애국주의자로 취급될 수 없다고 본다.

세상에는 오해로부터 파생되는 갈등이 많을 것이다.

이해와 아량으로 훈기넘치는 사회를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과학분야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까지.

황우석(서울대 교수 수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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