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국수

여름초입인데도 한여름 같은 무더위가 며칠째 이어지니 입안이 깔끄럽다.

그래선지 국수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지는 것 같다.

어쨌든 술술 미끄럽게 잘 넘어가기 때문이다.

입소문이 난 국수집들은 아무리 꼬불꼬불 골목길 안에 숨어있어도 용케들 찾아간다.

뙤약볕에 땀을 콩죽같이 흘리고, 때로는 길을 물어물어 가는 수고로움도 마다않는 국수 미식가들이 적지않다.

덕분에 이들 유명 국수집들은 사철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특히나 대구사람들은 국수를 즐겨먹는 모양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전국 국수 생산량의 30% 정도가 대구에서 생산되고, 대구지역의 1인당 국수 소비량은 전국 평균의 3배에 이른다고 한다.

유난한 국수 취향은 성미급한 기질 때문일까, 아니면 향수 때문일까.

우리 역사에서 국수문화는 고려시대때 중국으로부터 전해졌다고 한다.

주로 상류층 사람들의 음식이었고, 서민들에겐 잔칫날 같은 특별한 날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였다.

조선시대 최고 요리서인 '음식디미방'에 '밀가루에 달걀을 섞어 반죽해 칼국수로 하여 꿩고기 삶은 물에 말아서 쓴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국수가 조선시대의 대표적 음식 중 하나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귀한 음식으로 여겨졌던 국수는 그러나 모두가 가난했던 지난 시절엔 서민들의 가난한 밥상에 밥 대신 올랐었다.

지금도 중 장년층 이상 사람들 중엔 국수라면 보기도 싫다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가난했지만 정겨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에 국수를 자주 찾게 된다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칼국수는 여름날 해거름의 풍경과 잘 어울렸다.

마당의 돗자리 위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두런거릴때 어머니는 땀방울을 훔치며 홍두깨로 반죽을 밀고 마당 아궁이에 걸린 솥에선 물이 설설 끓고…. 얇게 민 반죽을 칼로 썰 때면 아이들은 불에 구워먹을 귀퉁이 조각 얻으려 밀고 당기고…. 사위가 어둑해지고 서늘한 바람이 불 무렵 머리가 어지럽도록 후후 불어가며 한 그릇 비우고 나면 밤하늘엔 어느새 별이 한가득 돋아나 있고, 모기쑥불은 향긋한 연기를 피워올리고, 아이들은 포만감에 눈이 가물거렸다.

여름날의 국수는 단순한 별미가 아니다.

그것은 국수반죽을 밀던 우리 어머니들의 젊은 날 모습과 모기쑥불, 정다운 두런거림을 떠올리게 하는 유년의 추억이다.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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