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세상은 그녀가 고통에 이른 상처의 사닥다리, 날마다 사닥다리 위에 얹혀 있는 그녀의 가뿐한 서른일곱, 고통을 즐기기로 작정하고 치욕의 채찍에 생을 맡긴다.

나체로 춤추던 상처가 세상의 옷을 입고 세상의 화장을 하고 세상 속으로 출근하면 세상은 그녀를 팽이처럼 돌린다.

질긴 치욕의 채찍으로, 그녀의 상처는 웃는다.

우스꽝스러운 고통의 축제에서 돌아와 최후의 울음을 시의 제상에 올리기 위해

김현옥 「팽이처럼」 중

순수가 상처받게 되면 달팽이처럼 자신을 숨긴다.

그리고 내부에 자신만의 하늘과 바다를 두고 주위의 속물(?)들과 거리를 둔다.

그런데 이 여류시인은 독버섯처럼 피어나는 상처를 즐기기 위해 채찍에 자신을 맡기며 아프도록 현실의 고통을 견딘다.

채찍과 팽이, 그 숙명성과 이율배반성에 물러날 수가 없다.

최후의 울음을 시의 제상에 올리기 위해 정면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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