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 직할시로 승격돼 경상북도에서 분리된 지 올해로 23년째다.
또 지방자치제도의 실시로 정부가 임명하는 시장과 지사가 아니라 주민들의 손으로 단체장을 뽑은 지도 햇수로 9년째다.
세월이 흐른 탓인지 공동운명체라기보다는 '대구는 대구고 경북은 경북'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예전에는 그런 인식 자체가 필요 없었다.
그냥 '한 몸'이었다.
태생적으로 그랬다
경북에 속해 있던 대구는 동남권 내륙의 중심도시로 역할을 했고 대한민국 제3의 도시였으며 인재의 보고로 성가를 높였다.
경북은 그런 대구를 중심으로 해서 다양한 공급원이자 배후지로 '공존', '공생'하고 있었다.
보완의 관계였다.
'이와 잇몸'과도 같았다.
그러던 것이 경북에서 대구가 떨어져 나가고 시장과 지사를 주민 손으로 뽑고 나서부터는 그 터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기능은 달라진 게 없는데도 그랬다.
대구의 일에 경북 사람들은 팔짱을 끼고 있었고 경북의 일에 대구 사람들은 무신경했다.
10년을 끌었음에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는 대구의 위천국가산업단지 문제에 대한 경북의 인식이 그랬고 경북의 영일만 신항문제에 대구는 딴청을 부렸다.
공무원들이 서로를 외면했고 주민들도 그랬다.
경북지역의 한 중진 국회의원의 보좌관은 위천공단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 "구미나 경산·영천 등 공단이 들어설 곳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대구를 고집해서 그 난리를 일으킬 이유가 무엇이냐"며 "결국 대구의 이기주의 때문은 아닌지 곰곰이 되돌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구 출신인 그는 이어 "못살겠다고 온 대구가 죽는 소리를 내면서도 높은 소비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경북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 아니냐"며 "그런데도 굳이 대구라야 한다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혀를 찼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지난 94년 서해안과 남해안만 중시하고 포항을 제외시킨 L자형 국토개발계획이 나오자 포항과 동해안을 포함하는 U자형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한나라당 윤영탁 의원이나 국토개발연구원장을 지낸 홍철 인천대 총장같은 '선각자'들이 나섰으나 지역의 역량은 제대로 모아지지 않았다.
당시 대구에서는 포항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10년 전의 일이었다
정부의 무관심도 한 몫을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대구에서도 경북에서도 U자형 개발계획이 이야기된다.
방향을 설정하는 데만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대구와 경북이 눈앞의 일에만 매달려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사이 지역의 위상은 추락했다.
평택·광양·부산 등 서·남해안 주요 도시들은 10년동안 상전벽해가 됐는데 포항은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힘을 합해도 시원찮을 터인데 제각각 행동했으니 그 결과는 물으나마나다.
발전이 없으니 지역도 사람도 구닥다리가 됐다.
활기도 없어졌다
대구는 늙은 도시가 됐다
경북도 그랬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구의 최대 현안은 위천국가산업단지에서 대구테크노폴리스로 이름만 바뀌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이름만 바꾼 것이라고들 한다.
경북은 아직 영일만 신항에 매달려 있다.
언제 완공될지도 모른다.
구미-대구-포항간 고속도로는 아직 건설중이다.
특히 대구의 몰락은 주목할 만하다.
"도대체 대구사람들은 뭘 먹고 사느냐"는 '농담 아닌 농담'을 듣고도 딱부러지는 대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대구의 현주소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정치적인 영향력마저 축소되자 'TK의 몰락'이라고 수군거린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대구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대구는 한계상황에 봉착해 있다.
그럼에도 대구사람들의 생각은 여전히 '독불장군'이다.
대구의 위상에 대한 자각은 물론 경북에 대한 인식 역시 몇 십년 전이나 다를 바 없다.
거의 '착각' 수준이다.
포항사람들은 '포항은 포항, 대구는 대구'라는 대등한 관계로 보는데 대구사람들은 '아직'이다.
심지어 "대구도 포항같은 항만이 없으면 죽은 도시"라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구가 포항에 손이라도 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안동사람들은 중앙고속도로 개통 이후 서울과의 거리를 좁혀 놓았다.
기댈 언덕이 대구만 있는 게 아니다.
대구와의 연결고리는 가늘어져만 가고 있다.
대구에서 학교를 나와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용길(42) 변호사는 "동해안지역 사람들의 대구에 대한 생각은 과거와 달리 상당히 독립적"이라며 "특히 포항사람들 사이에서 대구중심적 사고는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경북은 대구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지만 사정이 약간 다르다.
포항과 구미 등 자립 능력을 갖고 있는 도시도 있다.
아직 무궁무진한 개발 여지가 있는 땅도 있다
바다도 끼고 있다.
그러니 점점 대구 의존도가 낮아지는 것이다.
그러니 대구사람들은 '언제까지나'라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대구에 기대할 게 없으면 경북은 독자생존의 길을 걸을 것이고 그럴 능력도 갖고 있다.
그러면 대구는 정말 외톨이가 된다.
이것을 막아야 한다.
대구와 경북은 공존·공생을 넘어 공영의 길을 가야 한다.
대구와 경북이 공동 추구해야 할 목표들은 대구지하철의 연장, 한방바이오 밸리, 낙동강 개발, DKIST(대구·경북기술과학연구원) 설립, 구미-대구-포항의 연결 등 부지기수다.
그러나 이들 문제 역시 대구와 경북이 유기적으로 공조하면서 추진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지금껏 그랬듯이 대구는 대구대로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대구 생각만 하고 경북은 대구가 경북의 계획을 빼앗아 갔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최원병 경북도의회 의장은 최근 한나라당내 행사에 참석, "경북사람들은 한방 바이오 밸리도 상주에 있는 것을 대구가 빼앗아 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와 경북이 한 배를 탔다고 하지만 대구가 경북을 한 식구로 생각한 적이 있느냐"고 항변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와 올해 경북도와 대구시가 약속이나 한듯이 발표한 2020년을 목표로 한 '그랜드 플랜'을 보면 '대구와 경북은 하나가 아니다'는 사실이 보다 분명해진다.
협조란 없다.
사전 조율도 없었다고 한다.
대구나 경북이나 제 살 길만 찾는 '독자생존'을 목표로 삼은 것 같다.
대구도 경북도 경쟁적으로 요즘들어 각광을 받는 분야는 실현 가능성이나 재원조달 여부를 떠나 빠뜨리지 않고 모두 나열해 놓았다.
정부 차원에서 보면 극심한 에너지 낭비요 '김칫국 마시기'다.
이와 관련, 대구시의 한 관계자는 "단체장의 생각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며 "대구나 경북이나 이런 일을 할 때 서로 의견을 듣고 종합할 만한 여건이 안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또 "단체장이 바뀌면 마스터 플랜은 또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쓸데없는 경쟁심리마저 발동돼 에너지 낭비를 가져왔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대구가 하면 경북도 해야 하고 경북에 있으면 대구도 뒤를 따르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졌다.
소싸움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 그렇고 지역 대표 브랜드라는 쉬메릭과 실라리안의 사례가 그렇다.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시도가 통합을 해 광역 행정을 펼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은 없다.
현행 법률은 사실상 시도 통합을 포함한 행정구역 통합이나 개편은 하지말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각 지방의회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단체장을 거쳐 행정자치부까지 통과해야 한다.
물론 주민투표 실시라는 방법이 있지만 세부 규정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유명무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법을 개정해서라도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는 이유도 대구와 경북이 따로 가는데 따른 폐해가 만만치 않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의 출범과 함께 부각된 지방분권화 움직임과 그에 맞추려는 지역의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진정한 분권을 위한 지역의 움직임도 상대적으로 다른 곳보다 활발하다.
민간의 참여도가 높아진 것도 특징이다.
최근 지역에서는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사회단체 학계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대구·경북 분권혁신 민관협의회'가 구성되고 '대구·경북간 기술혁신 네트워크' 구축도 시도되고 있다.
관에만 맡겨두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민간의 움직임이 관 사이드보다 훨씬 활발하다.
지방분권이라는 이슈를 만들어낸 것도 관이 아니라 민간이었다.
특히 민관협의회는 창립선언문을 통해 "민과 관이 상호 신뢰와 협력을 통해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과제에 대해 결집된 견해를 모으고 우리 지역의 자기 혁신을 통한 시도민의 지혜와 힘을 결집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처럼 대구와 경북이 따로 움직이도록 놔두었다가는 공멸한다는 인식에 다름아니다.
노 대통령도 지방분권과 관련, 당선자 시절부터 여러 차례 지역 스스로의 노력을 강조하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을 부각시켰다.
지방 스스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어 "각 지역이 특화된 사업과 계획을 마련하면 정부는 이들 가운데 가장 경쟁력 있는 것을 선정,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상황이 변한 것이다.
적어도 앞으로 5년은 이런 방식으로 갈 것이다.
과거와 같은 안이함으로는 더이상 살아남을 수가 없다.
무턱대고 '나만 잘 되자'는 식이어서도 곤란하다.
물론 지금처럼 대구와 경북이 따로 놀아서는 될 일도 안된다.
힘을 합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본격적인 지방간 경쟁이 불붙은 지방분권의 시대에 대구·경북이 공존·공생·공영하는 길이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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