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전쟁 예언서를 믿습니까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뭐가뭔지 앞날이 예측되지 않을때 사람들은 곧잘 '비결(秘訣)'류의 예언서에 빠져든다.

최근 미국의 전직 장관급 고위인사가 2004년에는 북한과 전쟁을 치를지도 모른다는 공개적인 발언을 하면서 서점마다 북핵전쟁과 부시 대통령 암살 등을 예언했다는 예언서가 부쩍 잘 팔리고 있다고 한다.

조선조 구한말에 송하라는 노인이 썼다는 이 예언서는 6.25전쟁과 미국의 9.11테러 2004년 부시 암살, 2007년 남북핵전쟁 등을 맞췄거나 앞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문제가 된 예언서의 허와 실을 짚어보는 것은 잠시 미뤄두고 동.서양의 예언서들을 살펴보자. 서양의 대표적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 9.11테러가 터졌을때도 전세계 인터넷에는 '신의 도시(뉴욕)에 거대한 번개가 치고 두형제(쌍둥이 무역센터빌딩)는 무너질 것이며…'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시(詩)예언이 순식간에 퍼졌다.

그러나 그 예언시는 짜맞춘 가짜 예언이었고 가장 결정적 주제였던 1999년 7월 3차대전 예언도 4년전 지구인의 신경만 곤두세웠다가 허구로 끝났다.

'히스터'란 예언으로 히틀러의 등장을 말했다지만 히스터는 다뉴브강의 옛이름일뿐 해석자의 추측이다.

중국에도 당나라때의 '추배도'나 명나라시대의 유기가 지었다는 '소병가(歌)'같은 예언서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는 율곡이 썼다는 '율곡비기(秘記)'칠언시와 정감록의 칠언고결 그리고 가장 유명한 남사고(南師古)의 격암유록을 손꼽는다.

어제 송하노인의 비결과 율곡비결, 남사고비결, 정감록 4권의 비결서를 모아놓고 여러 예언중 2004년(또는 2007년)의 핵 전쟁 예언에 대한 해석만 대비해봤다.

서로 다른 비결들의 정확도를 따지려는 게 아니라 과연 요즘처럼 세상이 어지러울때 이런저런 비결책이 나오는 것이 건강한 사회인가를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또한 해석들이 상식적으로 타당하며 합리적 논거가 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동방에 귀인이 있다'는 식의 자의적 자구(字句) 해석이 자칫 본의 아닌 혹세무민이 되는 것을 경계하자는 뜻이다.

송하비결은 '율곡이 칠언고시(七言古詩)에서 2007년 남북핵전쟁을 예언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정감록에도(두곳) 송하노인 예언과 '유사하게' 2004년 전쟁과 2007년 핵전쟁을 예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송하비결이 제시한 그 세가지의 예언 내용은 단어의 표현만 조금씩 다를뿐 줄거리가 베껴싣듯 묘하게 닮아 있다.

한쪽 비결에는 돼지와 닭과 개.호랑이와 표범이 나오는 대신 다른 비결에는 승냥이.스님.누런소와 백호 같은 낱말로 바뀌어 나올 뿐 줄거리는 같다는 뜻이다.

정감록 경우 전쟁나는 해를 신(申)년으로 해석, 2004년(갑신년)을 찍었지만 신(申)년은 2016년에도 신년이 된다.

송하는 갑신년과 '같을 경우'라는 단서를 달아 끼워맞추기식의 해석을 했다.

송하는 또 남사고의 격암비결에도 2004년에 전쟁이 시작된다고 했으므로 4개의 비결서가 다 유사하게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남사고 격암유록의 '승운론'에는 전쟁이 일어난다는 '신유해'의 해석을 두고 송하는 2004~2005년으로 봤지만 또다른 격암유록 예언서의 해석자는 2016~2017년으로 해석했다.

똑같은 남사고의 예언을 두사람의 해석자가 다르게 해석하여 다른 책을 펴냈다.

한민족의 운명이 걸린 전쟁이야기에 결정적인 연도를 제각각 12년이나 틀리게 해석한 셈이다.

여기서 예언서를 남긴 인물들의 시대를 보면서 생각해보자.

남사고는 1509년 생으로 격암유록을 1549년에 썼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보다 5년앞에 이미 미래인류 사회에 무선전화기와 비행기의 등장을 예고, 가장 앞선 예언서를 쓴셈이다.

이후 율곡이 1536년 탄생하고 송하노인은 1895년에 나타났다

적어도 율곡의 칠언고시가 명종과 선조 무렵의 것이라고 볼때 민간에서 전해진 조선조 중기 이후의 정감록에 나온 두개의 시나 300여년 후의 송하시 경우 율곡같은 대학자의 시(詩)를 표현만 바꾸어 모방하거나 번안해 지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더구나 율곡의 시(詩)는 '돼지(亥)와 닭과 싸우는 곳에 개가 따른다'고만 했음에도 송하는 '돼지'를 '丁亥年'(2007년)이라 해석하고 한반도 핵 전쟁이 난다고 비약한 것은 너무 자의적 해석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과연 남북핵전쟁의 예언이 맞아 떨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북핵문제는 예언(전쟁)이 아닌 외교적 노력에 의해 풀어야 할 과제이다.

다자간 회담 등이 성공한다면 남북핵전쟁은 남사고가 예언한 2016년 전쟁설만 시간적으로 유효하게 남아있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7월 종말설처럼 공상가의 허구로 끝나는 게 좋다.

점과 예언, 비결서가 흥한다는 건 그만큼 민심이 불안하고 나라의 정치가 잘못되고 있다는 얘기니까.

김정길〈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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