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靑蛙臺가 안되려면'

공직자의 수신(修身)과 선정(善政)의 규범을 가르친 목민심서는 '향응의 예법'에서 지나친 향응접대는 음식으로 사람을 섬기려 드는 비루한 행위라 비판했다.

왕조시대의 음식 접대의 등급기준은 5등급으로 황제에서부터 하급관리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를 넘어서지 않았다는데 목민심서에는 감사의 지방순시때 3등급 정도의 향응만 하면 아첨이 아닌 빈객접대라 하여 공직사회 향응의 적정선을 제시하고 있다.

5등급 음식의 종류와 양은 최고 1등급이 찌개류 요리 9가지에 술잔은 9잔, 그릇에 담은 음식 8가지, 국물류 7가지, 소반에 담은 음식류 9가지, 콩으로 된 음식 8가지에 소쿠리에 담긴 과일류 8가지다.

제일 낮은 5등급은 특돈(特豚)이라 하여 찌개요리 1가지, 술 1잔, 밥그릇에 담은 음식 2가지, 국물류 등이 각 1가지, 콩음식과 과일이 두가지다.

다산(茶山)은 감사만 행차해도 수백명의 수행원이 동원돼 호화판으로 향응하던 낭비와 민폐를 지적하며 공직자의 직책직급에 알맞는 접대 음식등급을 매겼던 것이다.

대통령 제1부속실장 양모씨의 향응접대 비디오 폭로가 정치판에 연일 연쇄파문을 일으키며 청와대가 목민심서 책꽂이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청와대는 자체 강령(제22조 2항)을 만들어 2만원이상의 식사나 통신 교통 등 편의를 받지 못하도록 못박고 있다.

더구나 양 실장 경우는 민원·인사·정무·민정 업무부서 직원은 2만원조차도 접대 받아서는 안된다는 단서 조항에 해당 될 수 있어 술값액수에 관계없이 명백한 자체강령을 위배한 경우다.

목민심서 기준으로 치면 5등급 음식조차도 얻어 먹어서는 안될 신분인데 40만원이 넘는 술판에 끼어 최소한 아홉잔 이상의 술잔을 받아 마셨다면 천자(天子)나 황제가 접대 받는 1등급(9잔)기준도 훨씬 넘은 셈이다.

필자나 우리 독자분들도 일상속에서 너나없이 마시는 술문제를 가지고 특정인을 윤리적 심판대에 올려 놓자는 생각은 없다.

단지 이번 청와대간부 향응 사건을 재삼 거론하는것은 참여정부가 자신들의 개혁성과 참신함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빡빡한 윤리강령이 거꾸로 자승자박의 패착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보라는데 있다.

어느 국가 어느 정권도 그물처럼 짜놓은 강령 따위의 법치망이 조밀했기 때문에 개혁이 성공했다는 경우는 듣지 못했다.

오히려 청렴하고 깨끗한 개혁정부임을 강조하기 위해 지나치게 조밀한 그물을 짜둔 탓에 저들 스스로도 걸려들 확률만 높임으로써 강령이 없었더라면 적당히 받았을 비난을 일부러 만든 강령탓에 더 많은 비난과 실인심(失人心)을 자초하는 역효과를 냈다.

지금부터라도 참여정부는 좀더 수수하고 물 흐르듯 국정을 끌고 갔으면 한다.

매사에 '우리는 개혁적인 인물이고 참신한 정권입니다'고 선전하려 들고, 인정받지 못해 안달난 집단처럼 서둘고 다그치듯 하지 말고 좀 묵묵히 한발한발 나아가란 뜻이다.

단숨에 경제·정치·언론·노사 문제를 '태권V'처럼 일격에 깡그리 개혁해낼 재주가 없는 한 먼저 자아도취에서 깨어나 프로의 여유와 겸허함을 익혀야 한다.

남의 비판에 의연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나를 내세우고 인정받으려들고 동네 시비에는 코피 내가며 끝까지 곡절을 가려야겠다는 '아망'이 있는 한 '국정신문 발간'이나 언론과의 전쟁같은 엉뚱하고 감정적인 정책발상만 내놓게 된다.

언론이나 야당같은 비판세력이 나를 알아주든 말든 국민의 뜻만 좇아 가며 묵묵히 일하는 정부에게는 국정신문 홍보나 '우리는 2만원이하만 먹습니다'라는 청와대 강령 같은 건 쓰잘데 없는 광고간판일 뿐이다.

야밤에 지방호텔 나이트에 내려가 1등급 향응을 받으면서 저네끼리 자기네 안방에서 만든 '국정신문'에다 '지금 우리 개혁하고 있소'라고 선전해본들 어느 바보가 고개 끄덕이며 옳소! 해주겠는가.

그래서 거듭 당부컨대 황소처럼 묵묵히 앞만보고가라. 개혁솜씨도 굳이 드러내려 하지말고 주변과 싸움도 좀 걸지말고 정신없이 민생문제에만 매달리는 자세로 민심을 끌어라.

국민들 가슴에 그런 모습이 느껴지면 부속실장이 아니라 노 대통령 자신이 술집에 초대받아가 거나하게 취했다해도 2만원 강령위반시비 걸기는커녕 술멋과 풍류가 있는 지도자라고 먼저 감싸줄 것이다.

며느리(정부)도 예쁜 짓만 하면 발꿈치도 계란처럼 봐주는 것, 그것이 민심이요 언론이다.

국정이 청개구리(靑蛙)처럼 민심과 자꾸 반대로 가고 비서들이 윤리강령과 거꾸로 가게 되면 '청와대(靑蛙臺)'소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김정길(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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