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를 넘긴지도 한참이나 지났는데 하늘은 아직도 걸핏하면 질금질금 비를 뿌린다.
장마철마냥 습기가 많은 이런 날, 풀숲을 헤적거려 보면 갈색의 달팽이들을 만나게 된다.
가는지 멈췄는지 헷갈리게 하는 느림보 달팽이.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로 모든 것이 바쁘게 굴러가는 세상 한 편에 이토록 느려터진 것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그래서인가, 달팽이에 관한 유머들도 적지 않다.
하나같이 느린 행동을 빗댄 내용들이다
'어느 날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시합을 했다.
거북이가 이겼다.
창피해진 토끼는 1년간 피나는 노력 끝에 다시 거북이와 시합했지만 또 졌다.
토끼가 분을 삭이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달팽이가 놀려댔다
"니가 그러고도 토끼냐? 너의 존재성이 의심스럽다.
왜 사냐, 바부양(바보야)!". 그러자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은 토끼, 달팽이를 힘껏 차서 산너머로 날려버렸다.
그로부터 3년 후,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토끼가 문을 여니 이게 웬일인가. 3년전 차버린 달팽이가 와있었다.
놀란 토끼에게 달팽이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감히 니가 나를 차!"'.
물론 우스개일 뿐이지만, 달팽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그런 우스개를 하는 것이 왠지 미안스러워진다.
제 몸뚱이만한 집(아프리카마노 같은 대형 달팽이는 껍데기 높이만도 10cm)을 평생 등에 지고 살아가야 하는 달팽이에게서 연민마저 느끼게 됨은 이 풍진 세상에서 저마다의 짐을 이고 지고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 오버랩되기 때문일까.
요즘 서울에서는 방학으로 일시 귀국한 조기 유학생 대상의 어학원들이 성행하고 있다한다.
'내 자식만은…'을 내세운 부모들의 끊임없는 닦달로 어린 유학생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빡빡한 일정으로 스파르타식 과외수업을 받고 있다는 것. 한쪽에선 방학 중 결식아동에 대한 도움의 손길을 호소하고 있는데 한쪽에선 월 최고 1천만원선의 학원 수강료를 낸다는 사실에 그저 멍해진다.
자식 사랑으로 마음이 너무 성급한 일부 부모들의 모습은 활착도 되기 전의 볏묘(苗)를 쏙쏙 뽑아올리는 농부와 닮아보인다.
우리는 달팽이를 보고 웃지만 거꾸로 달팽이는 이런 우리를 보고 왓하하! 웃지나 않을는지….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피에르 쌍소는 저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느림은 나태와 무능력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어느 길에 서있는지, 우리가 잊고 사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빠름의 철학은 과정보다 결과를, 느림의 가치관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한다.
그것은 매순간 우리 앞에 놓여지는 선택의 갈림길이다.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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