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동일 칼럼-지도를 다시 그리자

제주도에서 교사들에게 강연을 하면서, 교실 벽의 지도가 잘못 되어 교육을 망친다고 했다.

대한민국 전도를 보자. 제주도는 멀리 떨어져 있는 변방이라고 한다.

지도 면적을 줄이려고, 제주도를 제 자리에 두지 않고 한 쪽 구석에 금을 그어 감금시키기도 한다.

사방이 막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학생들이 그런 지도를 보면서 자라나도록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니 당장 시정해야 한다고 했다.

지도를 다시 그리자. 제주도를 중심에다 두고 사각형이 아닌 원형의 지도를 그리자. 북쪽으로 한국 전역이 들어가는 길이를 반경으로 원을 그어 일본의 상당한 부분, 중국의 일부까지 들어가는 지도를 만들자. 멀고 가까운 거리를 동심원으로 표시하자. 반경을 더 넓혀, 아시아 대부분, 지구 반쪽을 다 그릴 수도 있다.

부산이나 대구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자기 고장 중심의 동심원 지도를 그려 교실에 걸어 두고, 학생들이 나날이 보면서 새로운 생각을 하도록 하자.

두 지도는 원리가 다르다.

대한민국 전도는 국가가 홀로 대단하다고 하면서, 지방도 세계도 무시한다.

그것이 한 시대의 이념이었다.

다시 그리는 동심원 지도는 지방·국가·세계가 함께 소중하다고 알려준다.

자기 고장에서 출발해서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세계로 향해 나아가는 길이 사통팔달 열려 있다고 한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지표이다.

이념이 수정되고 지표가 달라지는 것을 지도에서 가장 명맥하게 나타낼 수 있다.

그 둘이 각기 타당하다고 할 것은 아니다.

지구는 둥글어 중심이 따로 없다.

자기가 있는 곳이 중심이다.

사각형 지도를 버리고 원형 지도를 그려야 실상에 근접할 수 있다.

자기 지방은 한쪽에 치우쳐 있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활동무대를 넓히려면 서울로 진출해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한다는 사고방식을 시정해야 한다.

지도만 다시 그리면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지방을 서울에 묶어두려고 하는 수많은 제약이 있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이 당장 실행하기 어려운 이상론임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 세대가 다시 그린 지도를 보면서 이상을 키워야 현재와는 다른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

초중등교육뿐만 아니라 대학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미래를 바람직하게 설계하고 시공하는 데 필요한 연구를 하고 교육하는 것이 대학의 임무이다.

기존의 틀에 매인 학과 교육의 보수성을 시정하는 이론과 지식을 별도로 설치된 연구소에서 제조하도록 하고, 새로운 형태의 통합적이고 개방적인 학제를 마련해 보급하는 것이 힘써 할 일이다.

대구나 부산의 대학들에도 많은 연구소가 있으나 유명무실하다.

장기 계획이 없고, 연구할 인원을 갖추지 않았다.

잘못을 시인하고 방향 전환에 힘써야 한다.

지방·국가·세계가 가지는 관계 양상의 과거·현재·미래를 고찰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필요한 인재를 모아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해 얻은 결과를 널리 알려야 한다.

근대에 이르러 국가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전에는 지방이 중요시되고, 국가를 넘어선 문명권의 동질성이 커다란 의의를 가졌다.

근대국가를 만드는 작업을 선도한 유럽 각국이 진행 방향을 되돌려 문명권의 재통합을 지향하면서 지방의 의의를 되살리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그 내력을 아시아의 경우와 비교해 고찰하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야 한다.

동아시아 또는 더 넓은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대구나 부산에 상응하는 지방을 찾아 그 곳 대학들과 공동연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럽의 새로운 동향을 파악하면서 지방끼리의 협동에 대해서 주목해야 한다.

독일의 바덴 뷔르템부르크, 스페인의 카타로니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프랑스의 론느-알프스는 지방정부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협력체를 만들어 새로운 유럽을 만드는 데 적극적인 기여를 한다.

네 지방의 중심도시 슈투트가르트, 바르셀로나, 밀라노, 리옹은 각국의 수도 베르린, 마드리드, 로마, 파리와 선의의 경쟁을 성과 있게 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문화를 키운다.

지방화시대의 지표를 분명하게 하자. 내 고장을 키워, 나라의 역량을 다각화하고, 문명권의 유산을 새롭게 계승하면서, 인류가 더욱 행복해지도록 하자. 내 고장에 중심을 두고 멀리까지 나아가는 동심원 지도를 그리는 작은 일이 거대한 전환의 출발점이다.

(서울대교수.국문학)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