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낮 1시20분쯤 U대회 선수촌. 정문 밖에서 갑자기 '와'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북측 선수단 버스가 입구에 도착한 것.
◇쑥스러운 첫 만남
그 2분 뒤 임원과 기자단이 먼저 정문 검색대를 통과해 선수촌 광장에 들어섰다. 자원봉사자, 서포터스 회원 등 100여명의 "반갑습니다"라는 환호가 쏟아졌다. 짙은 감색 정장을 입은 이들의 얼굴에선 일순 당혹감도 엿보였지만, 곧이어 "고맙습니다"라고 짤막하게 화답했다.
다시 5분여 뒤 북측 선수단이 선수촌 광장에 도착했다. 환호가 최고조에 달했다. 감색 정장에 베이지색 치마차림을 한 여자축구 선수들, 한복 차림의 예술(리듬)체조단 선수 등은 쑥스러운 웃음을 보이며 환영단원들과 악수했다. 그 20여분 뒤 선수.임원단은 숙소로 들어갔다.
그러나 환영단은 그 후에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자원봉사자 김양숙(여.46)씨는 "표정들이 생각보다 부드러웠다"며 "환하게 웃는는 선수들을 보니 역시 우리는 동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종대(40)씨는 "북측 선수와 악수한 손을 평생 씻지 않고 싶을 정도"라고 했다.
◇"김치가 제일 맛 있었어요"
선수단은 숙소로 배정된 109동 아파트 1층 휴게실에 여장을 놔 둔채 오후 2시쯤 곧바로 식당으로 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대부분은 동양식 식사 라인에 줄을 섰지만 일부는 바로 옆 이슬람식 라인으로 가기도 했고, 서양식 라인에서 먹는 사람도 있었다. 서양식 식전 음식으로는 연어고기와 양상치 등이 나왔고, 동양식 라인엔 밥과 김치, 젓갈류, 고기류 등이 차려졌다.
단장과 임원들에게는 음식이 서빙됐으나 선수들은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던 음식을 손수 골라 먹었다. 식당 관계자는 "시간이 별로 없어 식사를 서두르는듯 했다"며 "특히 바나나가 가장 인기가 있었고, 포도.키위 등 과일도 많이 먹더라"고 전했다.
식사를 마친 한 선수는 "다같은 조선 민족인데 싫고 좋은 맛이 어딨느냐"고 웃었으나, 많은 선수들은 김치가 가장 맛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배구 권영철(22.김영직사범대) 선수는 "맛이 좋았다, 매우 덥다"고 했고, 여자축구 홍화주(23.김철주사범대) 선수는 "역시 같은 나라에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북측 선수단과 함께 식사한 U대회 박상하 집행위원장은 "대구로 오는 차 안에서 북측 선수단장이 사흘이나 늦게 와 미안하다고 했다"며, "시민 서포터스가 몇달 전부터 응원 연습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는 '아, 그렇느냐'며 고마와 했다"고 전했다.
◇곧바로 컨디션 관리 돌입
식사를 마친 일부 선수들은 종목별로 경기장을 찾아 개별연습으로 오후를 보냈다.
오후 6시쯤 선수촌 국기 광장에서는 북측 여자축구 선수단이 트랙을 달리며 몸을 풀었다. 거기서 만난 북측 축구선수단 박철 임원은 "이번에 첫 출전하는 사람들"이라며, 기대 등수를 묻는 질문에는 "겨뤄봐야 알지요, 다 금메달 따자고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웃었다. 선수들도 프랑스 대 독일의 여자축구 경기를 관람하느냐고 묻자, "이 동무들은 안보고 감독과 여러명이서 볼 예정"이라며 "남북이 힘을 합쳐 응원해 주면 몇 배 더 힘이 나 겠지요"라고 했다. 이에 앞서 박상하 위원장은 "북측 선수단 대표 등이 20일 오후 4시에 열리는 프랑스 대 독일 여자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북에선 축구 열기가 대단한 것 같았다"고도 했었다.
여자축구 선수들은 국내 취재기자들의 촬영 협조에 웃으며 포즈를 취해 주기까지 했다. 입촌 때와는 달리 여유있는 분위기였다. 포지션이 어디냐고 묻자 한 선수는 "나, 볼 못차서 위치가 없습니다"고 해 폭소를 터뜨리게 만들기도 했다. 자원봉사자들도 카메라에 이들의 훈련 모습을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홍모(23.대구 지산동)씨는 "북측 선수들을 이번 기회가 아니며 언제 또 보겠느냐"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저녁 7시쯤에는 남자 체조팀과 여자 리듬체조팀이 몸을 풀겠다며 각각 성서 계명대와 원화여고를 찾았다. 그러나 퇴근길 교통 정체로 이들이 애를 먹었다고 관계자가 전했다.
◇조용한 첫날 밤
북측 선수들은 저녁식사를 종목별 선수단으로 나뉘어 따로 했다. 메뉴는 육개장, 불고기, 고추장 돼지고기, 치킨 튀김, 구운 양고기, 장어 양념구이 등. 식당 관계자는 "점심 때와 달리 한결 여유롭게 식사했다"고 전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개막식을 하루 앞둔 20일 많이 들뜬 모습을 보였으나, 북측 선수들은 식사를 끝낸 후 숙소 밖으로 외출하지 않았다. 대신 대회조직위가 전해 준 개막식 행사용 정장을 입어보는 등 한국에서의 첫날밤을 조용하게 맞았다고 관계자가 전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사진설명)20일 오후 대구하계U대회 개막을 하루 앞두고 입촌한 북측선수단들이 숙소인 109동에 입실, 불을 환히 밝힌 채 대구에서의 첫날밤을 보내고 있다.정운철기자woon@imaeil.com--관련기사--▶매일신문 '2003 대구U대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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