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우리 군이 유난히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다.
진급을 위해, 혹은 좋은 보직을 위해 상관에게 돈을 건네는가 하면 장교와 사병, 남녀를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성추행까지…. 이런 현상을 두고 군의 기강이 해이해졌다며 한숨을 쉬는 이들이 많지만 나는 시각을 달리 한다.
우선, 군내부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은 결코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군복무를 마친 성인들이라면 누구나 겪었듯 과거에도 흔히 일어나던 일들이다.
그 흔한 일들이 새삼스럽게 불거지는 것은 우리 사회 전반이 그런 것처럼 군도 이제 어느 정도 투명해져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예전이라면 입을 다물고 피해를 감수했을 당사자들이 지금은 입을 열고 항의하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시시비비가 군의 울타리를 넘어 우리들의 귀에까지 전해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내무생활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의 젊은이들이 수십, 수백명 단위로 모여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함께 지내는 과정에서 갈등과 충돌이 없다면 그 편이 오히려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피를 나눈 형제들끼리도 충돌이 없다면 그 편이 오히려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피를 나눈 형제들끼리도 서로 주먹질을 해가면서 자라나게 마련이다.
오히려 문제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증요법으로 일관하면서 '좋은 게 좋은' 식으로 얼버무리고 덮어버리는 사후처리방식에 있다고 하겠다.
최근 육군은 '사고예방종합대책'을 수립했다고 발표했는데 그 내용이 시중의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
고참병이 후임병에 대해 심부름을 시키지 못한다, 식기세척을 강요하지 못한다.
노래나 춤 등을 강요하지 못한다.
폭언과 욕설을 하지 못한다, 멸시성 은어를 사용하지 못한다, 지나친 고성으로 복창을 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지침대로라면 우리 육군의 내무반 분위기는 거의 대학 기숙사 수준이 될 모양이다.
물론 환영한다.
'계급은 상하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복무기간과 직무숙련도를 표시하는 기준에 불과하므로 명령이나 지시를 할 수 없다'는 원칙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이토록 파격적인 조치 역시 또하나의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다.
그동안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모든 사건들이 마치 병들간의 강압적인 상하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강변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사병들간의 문제는 구조적인 것이고 장교들간에 벌어진 성추행이나 뇌물수수 등은 부사관이나 장교들 사이에서 더욱 심각할 수 있다.
병들의 군생활은 단지 의무복무기간이지만, 부사관이나 장교들에게는 평생직장이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지침 또한 마련되어야 마땅하고, 이들 자신의 자정선언이라도 행해져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지난해 감사원의 국방부 감사결과는 K-9 자주포 등 군장비와 부품도입에 대한 계약과정에서 원가계산을 잘못해서 21억원 이상을 낭비한 것으로 지적했다고 한다.
또한 KSS-Ⅱ 차기잠수함사업은 계약업체 선정과정에서 특정업체에 유리한 평가방법을 적용, 외화낭비가 예상된다고 한다.
이렇게 돈이 새는 구멍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내년 예산으로 28.3% 증가한 액수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들이 군에 대해 실망하고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는 오히려 이런 부분에 있다.
군이 달라지려면 이렇게 덩어리 큰 부분에서부터 투명성을 높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기왕에 수립된 '사고예방종합대책'의 내용대로 우리 육군의 내무반이 혁신적으로 달라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우리 군을 이끄는 사람들은 그렇게 아래다 대고 눈을 부라리기 이전에 자신들부터 달라져야 한다.
부사관이나 장교들의 상하관계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하고, 군비증강사업 등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의 추진과정을 투명하게 밝혀야만 한다.
또한 그동안 군 내부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던 각종 군기사고는 지침과 대책이 없어서가 아니었음도 지적하고 싶다.
우리는 스스로 목격했고,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런 사고를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일부 지휘관들의 잘못된 행태가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던 일들을…. 그런 의식부터 개혁하라. 군이 진정으로 달라지려면. 고원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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