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쟁 폐허 속에서 꽃핀 태권도 정신

이라크의 태권도 선수 알완 타이어 패틸(22)은 이라크와 미국 전쟁의 여파로 심신이 피로했지만 젊은이의 이상과 꿈을 담은 대구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하고 싶었다.

그러나 전쟁직후의 상황에서 참가하기가 쉽지 않았음은 당연할 일. 이런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준 사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전쟁 상대국인 미국 국적의 한국인 송복남(57감독이었다.

대회 참가가 결정되자 그는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국내에서 10일 간의 '길거리 훈련'을 가졌다.

전쟁으로 훈련장이 파괴돼 마치 연병장에서 수련하는 군인처럼 부서진 건물 사이로 난 길거리에서 연습해야만 했다.

마침내 그는 처음 참가하는 국제대회 장소로 향하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6일 경북고체육관에서 열린 태권도 남자 67kg급 경기에서 타이어 패틸은 콩고 선수에게 부전승을 거두고 16강전에 올랐으나 중국의 탕 후이에게 기량 열세를 보이며 탈락했다.

그는 시합 도중 탕 후이와 부딪혀 왼쪽 눈 아래 부위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그에게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고 다른 국가 젊은이들과 몸으로 부딪히며 승부를 겨루는 순간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는 "결승까지 올랐다면 미국 선수와 대결할수도 있었겠지만 감정적인 부분은 없다"며 "스포츠는 스포츠이고 태권도 선수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라크는 대구U대회에 선수 5명(태권도 4, 유도 1), 임원 3명(태권도 2, 유도 1)이 참가했다.

참가가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졌지만 대구유니버시아드 조직위원회와 세계태권도연맹의 도움으로 최소한의 선수단이라도 참가할 수 있었다.

이라크 태권도팀의 감독으로 참가한 송복남씨는 "7월초 이라크에 입국, 급조된 선수 4명을 데리고 짧은 훈련기간을 거쳐 대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송 감독은 현재 미국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태권도 연맹 임원으로 활동중이다.

이라크 대표팀을 맡게된 것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라크 태권도 관계자의 요청을 받았기 때문.

대회를 위한 준비도 부족했고, 열악한 환경속에서 훈련을 받은 터라 이라크 선수들은 참가에 의의를 둘 수 밖에 없었다.

타이어 패틸을 마지막으로 태권도 선수 4명 모두 예선에서 탈락했다.

유도 역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이다

송 감독은 "비록 성적은 저조했지만 전쟁의 상처속에서도 세계 대학인의 축제에 참가했다는 것이 큰 의의"라며 "한국 사람들이 이라크 선수를 이렇게 열성적으로 응원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관중석에서는 이라크와 미국 서포터스들이 바로 옆에 앉아서 선수들을 응원하며 언제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있었냐는 듯 흥겹게 어울렸다.

이들은 파도를 타기도 했고, 양국의 국기를 휘날리기도 했으며, 양측 선수들을 가운데 두고 "We Love You"라는 율동을 펼쳐 대구유니버시아드가 하나되는 축제임을 확인시켜주었다.

타이어 패틸은 "한국 서포터스들이 반갑게 맞아주고 열심히 응원해 줘 너무 고맙고 힘을 얻었다"며 "고국에 돌아가면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인의 친절과 따뜻한 우정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관련기사--==>매일신문 '2003 대구U대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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