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마도

청명한 하늘, 떠나기 안성맞춤인 가을이다.

국내 여행이 조금 식상하다면 에메랄드빛 바다와 이국적인 풍경이 꿈틀대는 대마도로 향해보자. 한국에서 불과 49.5㎞ 떨어져 별 부담없이 떠날 수 있다.

일본 본토보다는 오히려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해 여러가지 한국역사 흔적들을 체험할 수 있는 것도 대마도 여행의 매력. 부산항에서 '씨플라워호'를 타고 떠나기 전 "과거에는 대마도가 우리 땅이었는데…"라는 아쉬움을 가슴 속에 새긴다면 대마도여행이 훨씬 뜻깊어진다.

자! 이제 요동치는 뱃길을 참으며 떠나보자.

◆시라타케산(백악산) 오르며=쏟아오르는 하얀 물결을 2시간 넘게 지켜보고 있으면 대마도의 남쪽 항구인 이즈하라항에 도착하게 된다.

항구를 나오면 시야에 수채화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붓으로 색칠이라도 한 듯 푸르른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과 하얗게 보이는 고깃배, 이색적인 일본고택 등. 뱃길의 답답함은 이내 사라진다.

무엇보다 주위가 깨끗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해발 512m 높이의 백악산으로 향한다.

20여분간 차선이 없는 좁은 도로를 굽이굽이 올라가면 '백악등산구(白嶽登山口)'라는 안내판을 만난다.

이제 본격적으로 몸풀기를 할 때. 입구부터 5.5㎞까지의 산길은 워낙 평탄하고 내리막도 많아 산책을 즐긴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간혹 급경사가 있어 풀렸던 마음을 다시 조아야겠지만. 시원시원하게 뻗어있는 나무들과 '푸지직'하고 밟히는 나뭇가지들로 인해 산행이 지루하지 않다.

산길을 따라 줄기차게 늘어선 나무들이 참 특이하다.

대나무는 아니지만 모두 가늘고 길게 솟아있다.

이런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불어 '쏴~'하는 소리라도 낼 때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이 확 트인다.

평안한 마음으로 2시간 가량을 걸으면 돌로 만들어진 신사문을 접하게 된다.

빨간천과 흰천이 묶여 있는 모습이 다른 신사문과도 사뭇 달라보인다.

이곳에서부터 정상까지의 30여분 거리는 바짝 긴장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원만한 산행로는 잊어라. 긴 호흡과 함께 신발끈을 졸라매고 이제 발길을 옮겨보자. 길이 가팔라 곳곳에 매인 로프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숨을 헐떡이며 한번씩 발길을 멈추는 가운데 간간이 대마도 특유의 조그마한 신사들이 눈에 띈다.

돌로 된 부처상에 초를 세워놓은 모습이 흡사 우리 민간신앙과 닮았다.

끙끙거리며 30여분을 정신없이 오르다보면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와! 이제 정상이다.

올망졸망한 섬들과 그 사이를 둘러싼 바다, 푸르른 바다 위를 떠다니는 고깃배, 바람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 이 모든 것을 접하고나면 한순간 뇌리 속에 남아있던 세상시름이 씻겨지는 듯하다.

천혜의 자연 앞에 역시 인간은 숙연해질 수밖에 없구나.

◆면암 최익현 선생을 기리며=산행한 다음날 한국역사가 서린 사적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많은 사적지가 이즈하라 시내에 자리하고 있어 발품을 팔아 여기저기를 둘러보자.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최익현 선생의 추모비가 자리하고 있는 수선사. 이 절은 이름 모를 백제 비구니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절 뒤쪽에 흩어져 있는 많은 비석들이 우리나라 절의 모습과는 달라 이질적이다.

일본인들은 과거 무덤을 절 뒤쪽에 두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대부분 절이 이런 모양이란다.

최익현 선생 추모비 앞에 섰다.

선생의 깊은 충절과 함께 비운한 조선 말의 정세를 떠올리며 눈을 감는다.

최익현 선생이 누구인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를 극구 반대하고 다음해 전라도 순창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제에 항거하다 체포돼 이곳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유배생활 중에도 "내 늙은 몸으로 어찌 원수의 밥을 먹고 더 살겠느냐"며 주위의 만류에도 단식으로 일관하다 74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이곳에 세워진 기념비는 선생의 생전에 펼치지 못한 선비정신을 기리기에는 턱없이 초라하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추진위원회가 결성돼 수선사 뒤쪽에 1만5천평 규모의 면암 최익현 선생 추모공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단다.

천으로 몸을 가린 돌불상도 수선사의 또다른 볼거리다.

그 이유가 무척 재미있다.

현지인들이 부처가 알몸으로 있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 생각해 이렇게 천으로 옷을 입혔다는 것.

◆조선통신사 발자취를 답습하며=수선사에서 시내길을 따라 조선통신사의 행렬이 향하던 길을 답습한다.

20여분을 걷다보면 운동장 옆에 비교적 큰 비석이 서있다.

이름하여 '이왕조 종가결혼봉축기념비'. 이 비석은 조선 26대 고종의 왕녀 덕혜옹주가 1931년 대마도주 아들인 종무지(宗武志)와 정략 결혼을 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대마도에 거주하던 한국인들이 세웠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덕혜옹주의 실제 삶은 조선 말 쇠퇴한 국력만큼이나 비극적이다.

왕녀가 한낱 섬 도주의 아들에게 시집을 간 것 또한 우리나라 치욕의 역사를 보여주는 대목. 덕혜옹주 자신도 결혼 생활 내내 정신이 이상하다며 심한 남편의 학대를 받았고 결국 이혼당했다.

해방 후 고국을 밟았으나 정신질환이 심해져 결국 1989년 낙선재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최익현 선생 추모비나 옹혜공주 기념비는 모두 조선 말 우리 역사의 비통함을 토하고 있다.

씁쓸함을 간직한 채 대마역사민속자료관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자료관 입구에는 조선통신사가 지나갔다는 '고려문'이라는 대문이 나온다.

옛 이즈하라 성문으로 에도시대에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맞이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의 대문은 과거 화재로 소실된 실제 고려문을 복원한 것. 고려문 옆에는 '조선통신사의비'가 우뚝 서있다.

이제 대마역사민속자료관으로 들어선다.

아담한 규모지만 이곳에 전시된 유물들은 상당수가 과거 한.일 역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중한 것들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통신사 접대를 위한 상차림 그림도가 있다는 사실. 이렇듯 곳곳에 남아있는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유물들은 과거 이곳 주민들이 얼마나 조선통신사들을 신성시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2, 3시간 발품을 팔아 경험한 한.일 역사체험은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혜초여행사(053-567-8848)는 11일과 18일 각각 1박2일 일정으로 대마도 백악산 등산여행을 떠난다.

요금은 호텔 2인1실 기준으로 23만9천원.

글.사진 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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