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겨우 900만원짜리 골프채

취미생활의 최고봉, 마지막 정착지는 서예라고들 한다.

미식가 노릇도 해보고, 주색잡기에 골프와 고미술품 수집을 거쳐 종국엔 말타기 놀이까지 해보지만 결국엔 이것 저것 다 비우고 서예에 입문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다스리는 힘'이 붓끝만한게 없다는 뜻인가.

▲만인지상(萬人之上)에 계신 분들은 그래선지 대개 붓을 잡았다.

그 YS의 대표적 휘호는 대도무문(大道無門), DJ는 경천애인(敬天愛人), JP는 상선약수(上善若水)다.

역대 대통령중에서 현판.비문을 가장 많이 남긴 박정희 대통령의 붓글씨 네글자 '자조정신'이 올2월 경매에서 4천만원에 낙찰됐었다.

한 글자에 1천만원이다.

그러나 솜씨로만 따지면 전두환 대통령의 글씨가 단연 뛰어나다고 한다.

▲추징금 환수를 놓고 "수중에 있는 돈이라곤 29만원 밖에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던 서울 연희동 전통(全統)집의 가재도구 경매가 북새통을 이뤘다.

감정가 30만원짜리 골프채가 무려 900만원에 낙찰되는 등 49점의 경매액이 감정가의 꼭 10배인 1억7천900만원이나 됐다고 어저께 신문마다 방송마다 시시콜콜 보도를 했다.

▲그러나 생각 제대로 박인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전 세계에 가십거리를 제공한 이 경매사건이 오히려 부끄러울 터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그나마 추징금의 79%를 납부해 세계적 망신을 피했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여태껏 14%밖에 안냈고, 그럼에도 지난 5월 법정에서 "29만원 밖에 없다"고 버틴게 빌미가 돼 가재도구를 몰수당하는 처지가 됐으니, 이건 망신정도가 아니라 그 앞에 한 글자 더 붙어야 할 판이다.

명색이 전직 대통령이 7년 동안이나 정을 줘 온 진돗개 두마리까지 압류해 버린 검찰의 그 '눈물겨운' 처사에도 기가 막힌다.

낙(樂) 붙이고 살던 진돌이.진순이가 얼마나 눈에 밟힐 것인가.

▲경매 물건이 10배 값에 다 팔렸다고 온 언론이 신기해 하지만 냉정히 "우리 대통령들의 물건값이 왜 이 정도 밖에 못되는가"를 오히려 부끄러워 해야 할 터이다.

이승엽의 공값은 억(億) 소리가 나는데 대통령의 골프채는 왜 억이 못되는가. 박통의 '자조정신'이 4천만원에 팔렸다지만 그건 기념관 열풍의 거품 값이고 평상시 정상적인 거래라면 700, 800만원선, 비싸도 1천만원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백범 김구선생의 글씨값이 박통 수준일뿐 이승만 대통령이나 YS.DJ의 글씨 값은 심히 부끄러운 수준이요, 전두환 대통령은 가격 형성조차 되지 않는 형편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글값이 그 사람의 인품과 업적, 세인(世人)의 존경의 정도와 비례함을 세상이 말해주고 있음이다.

나라가 제대로 되고 대통령들이 제대로 됐다면 30만원짜리 골프채는 9억에 팔렸어야 했다.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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