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송두율씨의 그림자

평양을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서울에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중국의 모 신문사 사장 부인(조선족)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일이 있다.

"평양도 가보셨고 서울도 와보셨는데 만약 살곳을 정한다면 두곳 중 어디서 살고 싶으십니까".

그 부인의 대답은 두갈래였다.

"집은 평양에 정해 두고 쇼핑이나 문화생활은 서울에서 하고 싶디요".

거처를 두되 인간다운 삶의 질을 즐길때는 서울 오는게 나은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 부인은 북한의 고위 당 간부나 정치국 후보위원 같은 특권층과는 거리가 먼 신분이다.

벤츠 자동차도 주어지지 않고 특권층 대우도 받을 처지가 못된다.

그럼에도 평양에 아예 살기 싫다고는 않았다.

그렇다면 벤츠도 제공되고 갖가지 특혜를 부여받는 정치국 서열 20위의 송두율씨 경우는 서울과 평양중 어디서 살고 싶어할까.

김일성 주석이 죽었을때 장례위원이 돼 호곡을 하고 '내재적 북한 접근법'이란 이론으로는 북한 체제를 변호하면서 북한의 신임을 얻어낸 송씨 경우 상식적으로는 북한에 머물며 대접받고 잘 살것 같은데 의외로 남도 북도 아닌 독일 국적을(99년) 택했다.

그리고 이번엔 국정원에서 자신의 행적과 친북활동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꿰뚫고 있음을 짐작하고서도 '간 크게(?)' 한국 땅에 발을 들여 놓았다.

무엇을 믿고 누굴 믿고 들어왔는지는 야당의 배후 연계세력 의혹제기만 무성할뿐 보이지 않는 뒷그림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없다.

DJ정권에서도 조심스레 꺼렸던 송씨의 느닷없는 입국행적이 보이지 않는 세력이 기획한 이념적 면역 떨어뜨리기 시나리오의 한 부분 아니냐는 추측 같은건 정치권이 파헤쳐야 할 숙제로 넘겨두자. 덧붙여 좌파세력, 친북 용공세력의 점진적 확산을 위해 가랑비 옷 적시듯 서서히 남한국민과 사회계층의 자유체제 이념을 와해시켜나가는 전략 세력이 있는지 여부도 정치권 손에 넘겨두자. 북한의 집권세력 입장에서는 남한 교육계에 이념적 투쟁 조직을 펼쳐 2세들에게 반미 친북적 사고를 은연중 주입시키는 방법도 하나의 전술이 될 수 있다.

노동계의 순수한 노동운동 조직에 정치적 투쟁 분위기를 심어 경제를 흔들어 보는 것도 전략일 수 있다.

용공세력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검찰과 국정원 같은 공안조직을 느슨하게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그 또한 그들로서는 용공세력 확산 토대 구축 전략에 속한다.

한총련 등을 이적단체로 보는 반북적 성향의 대법원을 보수란 이름으로 공격해서 친북좌파적 인사로 바꿔 넣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그들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남한 좌경화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가끔씩 북한이 문화예술인 공연교류와 이산가족 상봉을 열어 남북 화합 통일 분위기 조성을 병행시키는 이벤트도 계속 장려는 해야 하겠지만 순수한 통일 염원 차원이 아닌 '기획된 바람잡기'의 의도를 가지고 한다면 그것 또한 평화를 모독하는대남사업의 전술로 전락된다.

송두율씨를 이용해 민주인사의 귀향인양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실정법 위반 친북 활동에 대한 거부감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효과와 함께 서서히 국민의 반 사회주의 체제 정서를 마취시켜 나가자는 의도가 있다면 그것 또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충정'이 아닌 '전술'이 된다.

그런 가상적 시비들을 모두 정치권에 맡긴다.

우리는 그저 그런 가상적 우려를 설정만 해볼뿐 그런 전술을 펴는 세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전술기획 조직이 북쪽에 있는지 야당주장 처럼 우리 내부에 있는지 또한 알 수 없기에 일단 모든 것들을 민족 화합과 통일의 명제를 위해 순수 하게만 보고자 한다.

그러나 행복한 삶의 질을 나누어 추구해야 할 피를 나눈 동족과, 북한 정권의 비인권적 통치 체제와는 떼어놓고 보는 경각심만은 통일이란 미명아래 쉽게 버려서는 안된다.

이제 그가 평양과 독일을 두고 왜 하필 감옥에 갈지도 모를 남한으로 왔는지 그 속뜻과 그림자는 언젠가 드러날 것이다.

황장엽씨에 의해 신분이 탄로 나면서 북으로부터 이용가치를 상실하고 '팽'신세가 돼서였든, 외로운 노론객(老論客)의 수구초심의 인간적 귀향이었든, 아니면 그를 불러다 뭔가 써먹으려 했던 세력의 유혹이었든 어쨌든 지금 그는 제발로 한국땅에 들어와 업보를 겪고 있다.

그가 어떤 처분을 받게 되든 송씨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으로서 유념해야 할 것은 역사의 경험속에서 국가 체제의 전복이 반드시 군사력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어느날 잠깨고 일어나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는 식의 정신적 체제전복이다.

심리 선전공작의 총소리 없는 전쟁에는 항상 평화스런 제스처를 함께 병행시키며 긴장을 풀게 하는 정신무장 해제수법이 사회주의 전술의 기초라는 사실도 잊지 말자.

송씨 사건은 그런 교훈과 경고로 자칫 몽롱해지기 쉬운 우리의 선잠을 깨워주고 있다.

김정길(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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