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최고 유산인 한글의 현재 모습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한글의 본래 이름이 훈민정음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요즈음 한글을 보면 훈민도 없고 정음도 없는 것 같아 차라리 한글이라는 말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한글이라는 이름조차도 무색하다.

밀려오는 서구의 언어들로 인해 '크다'는 의미의 한글은 단순히 '하나'의 글로 전락한 느낌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한글이 훈민의 기능을 상실한 것은 정치적인 변화일 것이고 정음의 기능이 약화된 것은 민주사회의 다양성과 한글 자체의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좋게 생각했을 때의 경우이고, 역으로 생각하면 한글은 국민들을 가르치는데 한계가 있고 정음 역시 언어의 이상적인 기준과 규범을 확립하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시각이 양립하는 가운데 무리한 결론을 도출하기 보다는, 한글날을 맞아 한글이 과연 훈민정음의 이상과 기능을 실현하고 커다란 글로서 발전했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본인의 좁은 소견으로 역사를 평가한다면 조선시대는 물론 민족 역사 전체를 통해 최고로 자랑할 수 있는 문화적 업적과 유산은 한글의 창제에 있다고 단언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고유한 한글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이런 주장이 결코 과장되거나 무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같은 이유로써, 우리에게 역사적 실패내지 과오가 있다면, 특히 한글이 만들어진 조선왕조 시대의 최대의 역사적 실패 내지 과오를 지적한다면, 그것은 한글을 본래의 취지대로 발전시키지 못한 사실이다.

조선시대는 한글을 제쳐두고 예나 다름없이 한자로 훈민하고 그것을 정음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는 한글을 발전시킨답시고 한자는 멀리하고 순수 한글만을 고집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영어에만 매달리고 있다.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영어부터 교육시키려는 부모들, 우리말 습득이 영어를 잘 하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교육자들, 우리의 한글은 또 다른 시련과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오늘날 인터넷 언어의 혼란은 언어 자체의 속성과 연관된 문제이기는 하나 근본적으로는 오랫동안 지속된 한글에 대한 우리의 철학과 긍지가 결여된 결과일는지 모른다.

오늘날에 있어 한자를 배제한 한글전용 운동 내지 국가 정책은 이 같은 역사적 실패에 대한 때늦은 각성이자 동시에 대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한글 정책이 과연 한글의 훈민적 기능과 정음적인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한글 전용은 오랫동안 우리의 언어 속에 뿌리박은 한자를 일시에 제거함으로써 오히려 한글 자체마저 위험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자를 영어와 같은 단순한 외국어로 보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이다.

또한,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영어의 발전 과정을 보면 수많은 전쟁을 통해 이민족 언어의 침범과 영향을 받으면서 영어는 오히려 더욱 경쟁력 있는 우수한 언어로 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영어를 잘 알면 영어나 불어를 배우기가 쉽듯이 우리말도 잘 알면 한자를 배우기가 수월해야하건만 실상 그렇지 못한 까닭은 언어의 속성을 모른 채 이념적으로만 언어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한글에 있어 한자는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발전시켜야할 과제인 것이다

한글과 한자가 왜 창조적으로 어울리면서 발전해야 하는지 일례를 들어 보자. 우리가 홀로 된 상태를 표현할 때 대개 두 가지 단어를 사용 한다.

우리말로는 '외로움'이라 하고 한자로는 '고독'이란 말을 쓴다.

본질적으로 같은 뜻이건만 두 단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일반적으로 홀로 있는 이의 정신적 상태를 가리키는 반면, 후자는 그런 상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거나 부각시키고 있다.

따라서 외로운 사람은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반면 고독한 사람은 관심과 존경의 대상마저 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우리말에서 고독이란 한자를 제거하려 할 때 우리의 언어는 그만큼 단순화 되고 예술적 철학적 가능성마저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터럭처럼 많은 수많은 사례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이 글에 취지는 한글 전용의 문제 제기가 아니라 한글의 비전과 발전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한글도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면 그것의 나아갈 방향도 보이기 마련이다.

한글은 이름 그대로 커다란 글 내지 언어로 발전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장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글은 우리만이 가진 도구이자 무기이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교육하고 역사를 전하며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양심과 영혼을 주조해 나가고 있다.

언어는 공유의 재산이다.

그러기에 한글은 하루만의 기념의 대상이 아닌, 숨쉬고 살아있는 창조적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동력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