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이래 대구경제가 깊은 수렁에 잠겨있다.
13년째 지역내 총생산(GRDP)이 전국 꼴찌인 것은 물론 1인당 GRDP가 서울 8천790달러보다 무려 3천144달러나 적은 5천646달러에 머물고 있다.
어느 곳보다 많이 배출되는 고등교육자(대졸, 전문대졸)가 갈 만한 대기업 하나 없어 졸업하자마자 실업자로 전락하고, 급기야 지난 2월에는 대구지하철참사까지 터져 대구시민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대구와 대구 경제를 살리기위해 운동이라도 펼쳐야할 때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한 가운데 대구의 미래에 희망을 심는 청신호들이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다.
대구에서 처음 치른 2003 하계 U대회의 성공적 개최로 대구시민들도 모처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재확인한 데 이어 17일에는 삼성상용차 부지 18만2천평을 대구시가 사들여 대구경제를 활성화시킬 날개를 달자 지역사회 전반에 혁신의 기운이 넘치고 있다.
◆대구에 불고 있는 변화바람
최근 대구에서는 위축된 대구경제를 재도약시킬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몇가지 변화와 결정이 잇따르고 있다.
17일 대구시가 대기업 역내 유치나 해외투자 유치를 하는 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었던 '공장용지 절대부족' 현상을 극복할 삼성상용차 부지 18만2천평 매입에 성공했다.
삼성상용차 부지는 도심과 불과 20분 위치에다 지하철로 바로 연결되는 편의성, 완벽한 기반시설 등으로 국내 대기업은 물론 외국계 다국적 기업들도 탐내는 알짜배기 터. 대구시가 도시개발공사를 통해 삼성상용차 부지 매입에 성공함으로써 대구산업구조의 고도화는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이 뿐만 아니다.
대구 경제의 최악 상황을 나타내는 각종 지표나 일반 인식과는 달리 변화나 도약 가능성을 품은 긍정적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경북대에서 '산업자원부 지정 디스플레이 기술교육센터'가 문을 열었고, 이달 16일에는 세계적 다국적 기업인 지멘스가 투자한 초음파기술(주)의 경북대연구소가 개소식을 가졌다.
산자부 지정 디스플레이 기술교육센터는 생산기술(=완성품)면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최대 수출 주력 품목인 우리나라의 디스플레이 산업의 취약점인 고급인력 양성과 핵심 기반기술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적 프로젝트인 만큼 지역대학 교육수준의 우수성을 공인받은 셈이다.
초음파기술(주) 경북대연구소 역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지멘스 메디컬 솔루션 USA가 차세대 센서 개발을 전적으로 노용래 경북대 교수팀에 위임했다는 점에서 지역연구 수준의 수월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향토 게임개발업체 (주)케이오지는 출시한 온라인 액션게임 '그랜드체이스'가 국내 톱10 게임으로 부상하면서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정보통신부로부터 약 1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첨단산업단지 11개 업체와 (주)맥산시스템, (주)아이씨코리아를 비롯한 중견 벤처기업들의 불황 속 고속성장도 '대구에서도 성공한 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맥산시스템의 웹패드는 일본과 독일 등지의 물량을 다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대구를 첨단과학도시로 만들 법적 근거인 디키스트(DKIST.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정부 예산 10억원을 지원받았다.
◆애물단지에서 대구의 희망으로 변신할 상용차 부지 매입
침체된 대구경제를 살릴 새로운 희망으로 주목받고 있는 대구시의 삼성상용차 부지 매입은 첨단대기업 유치와 직결된다.
삼성상용차 부지는 대도시 도심에서 불과 20분 거리에 있는 데다 지하철 역에서 걸어 출근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공장용지여서 조만간 국제적인 기업이 대구에 투자를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상용차 부지처럼 대도시의 문화.교육.레저.쇼핑 등의 편의시설을 즐길 수 있는 거리에 공장 부지를 제공할 수 있다면 수도권 외곽지역보다 인재확보에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IT의 대표산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의 경우 지역출신 인재들의 우수성은 이미 입증된 상태다
또 대구권에 대학이 밀집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미 배출된 우수인력이 많다는 것뿐 아니라, 향후 기업이 번창했을 때 언제든지 필요한 인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인프라가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구를 둘러싼 주위 환경도 첨단 대기업의 흥미를 돋운다.
세계 최대의 전자산업단지 중 하나로 휴대전화, LCD 등 첨단제품 생산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자랑하는 구미공단이 불과 30여 분 거리에 있다.
항공물류를 필요로 하는 첨단 소형 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에게는 기존의 대구공항을 이용하더라도 중국 등 아시아권 물류망을 간단히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대구의 장점은 한결 높아진다.
한때 기업하기에 부적합한 도시처럼 여겨졌던 대구가 '삼성상용차 부지'를 확보함으로써 '대기업 입지로서도 손색이 없는 도시'로 탈바꿈한 셈이다.
삼성상용차 부지에 중소첨단기업이 아닌 최소한 수 조원 단위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첨단 대기업을 유치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구를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만들자
첨단대기업이 유치되면, 그에 따른 상당수 협력업체들도 자연히 원청업체의 주위에 모이게 된다.
대기업 유치의 산업파급 효과가 모기업 매출의 2.5배 정도라는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에 미루어 볼 때, 삼성상용차 부지에 매출 5조원 정도(=이정도 규모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관련 기업의 기준으로 본다면 대기업이라기보다는 중견기업에 속한다)의 대기업 2개만 유치에 성공하더라도 무려 25조원의 산업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 대구 제조업 전체의 총생산액 15조원보다도 무려 10조원이나 더 많다.
지역사회 분위기도 어느 때보다 좋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 매일신문에 의해 처음 제기됐던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법 제정 작업은 지역의 전문가 모임을 통한 이론개발과 논리적 대응으로 수도권 및 타지역의 반대 인사들을 설득하고, 친여 성향의 인사들까지 적극 협력해 마침내 청와대의 적극 지원 의사를 이끌어 냄으로써 국회 본회의 의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여야와 언론, 시민, 전문가들이 너나할 것 없이 한 데 뭉쳐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부정적 시각을 정면으로 돌파해 버린 것이다.
예전의 지역사회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과거 대구의 기업유치 활동이 정치권이나 시 정부에서 주도함에 따라 너무 정치적이고 관료적 발상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보완하기 위한 움직임도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기업을 하는 사람이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기업인만이 아는 기업유치의 노하우'와 '기업가 특유의 정보 분석력과 뚝심, 치밀함' 등을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기꺼이 제공하고, 직접 기업유치 활동에 나서겠다는 기업인 그룹이 첨단벤처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어 첨단 대기업 유치작전의 성공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구가 구태를 완전히 벗고 진정한 '과학기술 중심도시', '첨단산업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대기업 유치는 산업구조 고도화의 시작일 뿐
이종현 전 대구테크노파크 사업단장(경북대 교수)은 "대기업 1, 2개 유치나 연구원 설립이 곧바로 지역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산.학.관이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상당한 재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지만, 급격한 산업변화를 제대로 읽고 대처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젊은 벤처기업인들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해 주고, 행정기관도 지위 중심으로 업무를 처리할 것이 아니라 젊고 능동적인 유능한 인재를 스카우트해 전담팀을 만들어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 대학도 관변학자나 원로중심에서 벗어나 참신하고 새로운 인재들이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만 대구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세계적 다국적 기업의 경영자문을 맡고 있으며, 오랜 외국생활 뒤에 고향에 온 한 젊은 지식인은 좀 더 솔직하게 대구사회의 해결 과제를 제시했다.
"대구에 와서 가장 놀란 점은 지역사회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자리에 실질적으로 일을 할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감투나 쓰고 자리를 즐기는 듯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며 "발전하는 기업이나 도시에서 책임있는 역할을 맡은 사람을 중용하는 인적 쇄신작업이 모처럼 일기 시작한 경제계의 변화기류와 맥을 같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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