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년 화재감식 '외길' 이정식(58) 수성경찰서장

지난 14일 오전10시쯤 대구시 수성구 범물동 용지아파트 화재 감식현장.

"입구부터 저쪽 복도까지 줌으로 천천히 찍으라구". 이날 현장을 진두지휘한 이는 다름 아닌 대구 수성경찰서 이정식(58) 서장. 퇴임을 1년 앞둔 서장이 대형사건도 아닌 화재감식 현장에 직접 나서는 것은 드문 일. "사람이 죽었잖아요"란 짤막한 답을 뒤로 한채 이 서장은 감식가방을 열고 꼼꼼이 도구를 챙겼다. 확대경과 드라이버, 나침반, 줄자와 갈고리... 다양한 감식도구들은 그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감식 조끼 포켓에 제자리를 잡았다. 감식도구는 그가 직접 구입했고 몇 가지 도구들은 그가 직접 고안한 것.

"34년 경찰생활동안 감식에만 30년을 보냈어요. 승진에도 불리하고 힘들다며 기피하는 자리에만 있다보니 세월만 꽉꽉 눌러 채웠죠".

21일 경찰의 날에 만난 이서장은 줄곧 '한직'으로만 돌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서장은 전국에 4명밖에 남지 않은 간부 후보생 19기 출신. 1971년 경위로 임관한 그는 동기들이 승진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늘 현장 바닥만 맴돌았다. 덕분에 2000년 영주서장, 2001년 김천서장으로 늦깎이 '서장명함'을 달았다. 그때는 벌써 동기생인 이무영, 이팔호 씨 등이 지방경찰청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이었다.

"일만 하던 놈이 돼 나서...". 경북경찰국(현 경북경찰청) 감식주임과 감식계장으로만 11년, 경북 경찰청 수사과장과 기동대장 등 늘 '변방'으로만 돌았지만 아쉬움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70년대초 '경찰전문학교 제557기 화재감식반' 교육을 받으며 사건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혀 나가는 감식에 경찰인생을 투신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당시 같이 교육을 받았던 21명의 수료생 중 감식특기를 살린 사람은이 서장 뿐. 그가 30년간 감식한 화재사건만도 1천600여건에 이를 정도.

독불장군을 자처하며 '춥고 배고픈' 시절을 지내는 동안 그는 늘 '호랑이 고참'이었다. 너무 강직한 성격탓일까. 그는 그동안 수차례의 인신공격과 인터넷 투서로 마음고생도 겪었다고 했다. 이 서장은 요즘 퇴임 뒤 운영할 '화재감식연구소' 준비로 바쁘다. 개인.기관에서 화재사건을 의뢰받아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혀주는 일이다. "경찰생활을 마치는 그 날까지 늘 현장에 있고 싶습니다. 경찰이니까요".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사진 : 퇴임을 1년 앞둔 이정식(58) 수성경찰서장은 요즘도 현장감식을 진두지휘한다. 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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