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짜 현철' 같죠?" 이미테이션가수 현칠(은해기)씨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던 그가 갑자기 몸을 움직여 옆 탁자 위에 있던 전기면도기를 집어든다.

"이러면 그 사람과 더 비슷할 것 같은데…". 마이크 없이 맨손으로 선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사진기자가 만류하자 면도기를 다시 제자리에 놓긴 했지만 그의 표정엔 아쉬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4년 후면 만 50세가 되는 그는 5년 전부터 '투잡(two job)족'이 됐다.

하나는 몸뚱이를, 다른 하나는 그렇게 잘 생기지 못한(?) 얼굴을 밑천으로 하는 것이다.

하는 일이 두 가지이다 보니 이름도 두 개다.

컬러로 된 그의 명함엔 지하에 있는 그의 부모가 호적에 올린 것과는 다른 이름이 새겨져 있다.

3남5녀 중 여섯째인 그는 어릴 적부터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17세 때까지 '부숴 먹은' 기타가 6개나 된단다.

결혼 전 회관 무대에서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지만 '돈이 안돼' 음악과는 거리를 두게 된다.

1984년 결혼 후 토목업에 뛰어들어 호안블록 공사를 주로 하는 속칭 '노가다 십장'으로만 지내던 그가 '이미테이션 가수'라는 새로운 직종에 도전을 생각한 것은 1990년대 중반."30대 후반 경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가수 현철을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긴 했어요. 지난 95년 두류공원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대회에 현철의 노래 '사랑은 나비인가봐'를 들고 출전했는데 사회자 송해씨가 현철씨와 똑같이 생겼다고 하더군요. 그게 결정적 계기가 됐어요".

'제2의 현철'로 살기 위한 그의 노력은 그때부터 본격화된다.

"제 목소리를 현철씨 특유의 굵고 꺽꺽한 목소리로 만들기 위해 흡연량을 종전보다 4배 이상 늘렸고, 사람 없는 곳을 찾아 고함도 많이 질렀습니다.

현철씨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모두 녹화해 수십번씩 봤죠. 일이 없을 때는 하루 종일 거울 앞에 서서 작은 몸짓까지 그대로 따라하려고 연습했고요".

그가 초청가수로 처음 무대에 선 것은 지난 99년. "대구 달서구에서 열린 한 경로잔치였는데 300명 정도 되는 노인들이 제 손을 붙잡으며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그 뭉클한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주로 본인의 신청으로 이뤄진 것이긴 하지만 TV에도 몇 번 얼굴을 내비쳤다.

2002년 12월에는 한 TV방송의 '비스무리를 찾아'라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했고, 올해는 '도전 60초'라는 프로그램에 나가 스타상을 받기도 했다.

이제는 드러내놓고 활동하지만 초창기에는 가족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느라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무대복을 1년 이상 차에 싣고 다녔어요. 차 유리를 일부러 짙게 선팅하고 아내는 물론 애들도 차에 얼씬도 못하게 했지요. 하지만 요즘은 아내가 직접 옷을 챙겨주기도 합니다.

대학생인 두 딸도 좋아하고요".

그는 차를 운전할 땐 항상 현철의 노래 테이프를 틀어놓고, 현철이 새로운 옷을 입고 나오면 무리를 해서라도 장만한다.

그러나 빨리 마무리해야 할 공사가 있으면 공연 요청이 와도 못 간다.

요즘은 주로 주말을 이용해 무대에 서는데 일주일에 3회 정도 무대복을 입는다.

출연료는 1회당 30만~50만원. 경로잔치나 장애인 위안잔치에서는 차비 정도만 받는다.

"아직까지는 주로 대구·경북 지역에서 활동하지만 더 열심히 해 전국을 무대로 뛰는 '제2의 현철'이 되고 싶습니다"는 이미테이션 가수 현칠(예명.46.대구시 서구 원대1가)씨. 그의 본명은 은해기이고 고향은 경북 군위군 효령면이다.

송회선기자 s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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