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하나뿐인 우리 엄마께….
엄마 안녕하세요? 선미예요. 이젠 아빠란 말을 들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을 만큼의 나이, 저도 벌써 18살이예요. 제 나이만큼의 지나 온 많은 세월들이 아빠란 말을 낯설게만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나신지도 벌써 10년…. 엄마에게도 아빠없는 세월의 고통이 10년만큼 무겁기만 하지요? 예고라도 한 듯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예쁜 보라색 투피스와 공책과 연필을 입학하기 몇 달 전부터 왕창 사들고 오셔선 내 입가에 환한 웃음을 선물해 주시더니, 그렇게 모든 걸 다 준비해 주시고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은 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버린 아빠…. 삶과 죽음의 거리가 얼마나 아득한 거리인지를 알기엔 그땐 너무 어렸어요. 엄마의 마음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아빠 언제 오냐며 보채기만 하던 철부지 딸을 달래느라 마음 깊숙이 슬픔을 묻어두곤 눈물 한 번 제대로 흘리지 못했던 엄마. 그렇게 혼자서 모든 고통과 아빠의 빈자리를 짊어지고 가기엔 너무 세상에 물들지 않은 아직도 마음 여린 소녀였지만, 엄마는 오직 내 생각에 이를 악물고선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악착같이 했었지요. 그렇게 아빠를 가슴에 묻고 지낸 지 1년쯤 지났을까요? 그때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다정하게 내 이름 부르며, 엄마는 머리가 좀 아파서 누워 있겠다며, 외할머니랑 목욕탕 갔다오면 맛있는거 해 놓고 기다리겠다던 엄마…. 그땐 정말 엄마가 아픈 줄로만 알고, 아무것도 모른채 할머니랑 목욕탕 가서도 엄마 걱정만 하고, 빨리 집에 가자며 혼자 앞장 서서 뛰어 갔었는데, 집이 텅 비어 있었죠. 내가 매일 같이 뛰어 놀던 침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만화영화 볼 텔레비전도 없어졌지만, 그 텅 빈 집에서 엄마를 얼마나 목이 터져라 불렀는지 엄마는 모르시죠? 그렇게 텅 빈 집이 어린 딸의 절규로 흔들릴 정도로 울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오셔서 "너 버리고 간 엄마 뭐가 좋다고 그렇게 찾냐?" 하시며,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던 나를, 그렇게 애가 타게 엄마만 찾던 나를, 억지로 끌고선 할아버지 집으로 데리고 갔죠…. 혹시나 엄마한테 전화가 올까 전화기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울다 지쳐 잠드는 악몽같은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요. 울먹이느라 아무말도 못하는 나에게 변명 한마디 못하시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엄마의 목메이는 목소리….
"선미야, 누구 탓도 하지 말고,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밥 잘 먹고,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럼 엄마가 데리러 갈게". 나는 엄마를 믿었어요.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알았기에 그 말씀을 믿었어요. 어린 나의 절대적인 믿음은 견고하게 쌓아올린 성 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른채 남편 죽은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냐며, 엄마를 욕하고, 날더러 불쌍하다고 했지만, 엄마가 분명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 나를 지켜 주겠다고 했기에,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엄마가 날 데리러 왔었죠. 그 때 물벼락을 맞고 내 얼굴 한 번 제대로 못보고 가신 엄마의 뒷모습, 그 날 그 깊은 상처가 아직도 가슴에 눈물로 맺힙니다.
내가 엄마를 믿고 있던 만큼 실망시키지 않고, 행복을 안겨준 엄마, 그땐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어요. 엄마가 진짜 날 버리고 간 줄 알았어요. 아무것도 이해 못하고, 내 생각만 하던 철없던 딸이 이젠 엄마의 키를 훌쩍 넘어섰고, 그만큼 마음도 깊어져 그땐 엄마의 그 길이 최선의 방법이었던걸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새까맣게 타 들어 갔을지 알면서도, 엄마가 해 준게 뭐 있다고 엄마냐며, 매일 고함만 치던 얼음처럼 냉정했던 딸, 매일 같이 엄마 앞에만 서면, 눈물 흘려 엄마 마음에 피눈물이 나게 했던 이기적인 딸이지만, 이젠 엄마를 누구보다 더 마음깊이 이해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다 지나간 일을 들추어 내어 엄마를 원망하지 않을거예요. 지금 엄마는 거짓없는 모습으로 지난날 못 다 주셨던 사랑보다 더 많은 사랑을 저에게 주시고 계시니까요. 엄마가 주시는 사랑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제 마음이겠지만, 나에 대한 엄마의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처럼 나도 엄마를 조건없이 존중해 줄 수 있는 딸이 될게요.
교통사고가 나서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우리 딸 걱정하니까 아무말도 해주지 말랬다던 당신, 내가 눈물 흘릴까 애써 넉넉한 미소 지어주시며,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시던 엄마의 모습은 안쓰러울 만큼 내게 희생적이기만 합니다.
누구하나 뭐라고 하지 않았건만 남들한테 아빠 없어서 버릇 없다는 소리 들으면 안된다고 누구보다 엄하게 가르치셨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다른 사람한테 기죽어 있으면 안된다며 남이 하는 것보다 모든 걸 두 배는 더 많이 해주시는 엄마, 언제나 자존심 하나에 매달려 학교에서 주는 학비지원 창피해서 받기 싫다며, 엄마 생각 한 번 안해주고, 거절해 버리는 딸의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고 다그치시는 대신, 혹시나 여린 마음에 상처 입을까 괜찮다며 감싸안아 주시는 엄마, 그런 당신에게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옹졸하고 편협한 마음보다 끝없이 사랑하는 관용과 포용력 있는 마음을 배웁니다.
언젠가 한 번은 아빠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어요. 아빠는 사진 속에서 그 모습 그대로 있는데 나는 자꾸 나이가 들어가면, 나중에는 아빠의 사진을 봐도 포근함을 느끼지 못할까봐요.
봄이 더 눈부시게 빛날 수 있는 건 시련과 고통의 추운 겨울이 떠났기 때문인 것처럼, 엄마의 사랑이 더 따뜻하고, 값지게 느껴지는 것은 아빠가 떠나간 빈자리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파른 가시덤불 속에서 피투성이 모습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도, 나를 낳고, 기르시고, 가르치시는 동안 한 순간도 모녀의 끈 놓지 않고, 늘 그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머물러 주시는 엄마….
입이 닳도록 불러도 또 부르고 싶은 이름, 어디에 있어도 눈부신 이름….
엄마, 사랑합니다.
오늘은 10월의 햇살을 작은 유리병에 가득 담아 엄마와 나의 소망을 적은 종이학도 몇 마리 접어 넣고, 엄마에게 작지만 눈부시고 환한 미소를 안겨 드리고 싶습니다.
―엄마의 딸이라서 당당한 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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