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가을, 하늘은 드높고 맑다. 그 열린 하늘에서 지상으로 쏘아주는 오후의 햇살은 금빛이다.
햇살은 곱게 물든 나뭇잎들을 비추고 나무 아래 앉아있는 사람들의 어깨 위에도 은총처럼 내린다.
마른 잔디 위에 사람들이 앉아있다. 그리고 잔디밭 둘레에 놓여있는 긴 의자에도 혼자 혹은 두셋씩 앉아있다.
여기저기 서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들은 지금 기도를 하고 있다. 성모당 풍경이다. 나무들이 있고 오솔길이 있는 성모당은 언제나 한결같은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기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
수능시험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절박하다. 수험생들은 지금 초긴장 상태에 있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어머니는 무력감을 느낀다. 새벽밥 지어 먹이고, 이것저것 챙겨주고 밤늦도록 기다리면서 보살폈다.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크신 분 앞에 무릎 꿇는 일밖에.
제 몸집에는 아무래도 버거워 보이는 가방을 메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이 엊그제 같다. 그 작은 아이에게 천진난만해도 좋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이는 이내 또래 집단과의 경쟁 속으로 들어갔고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좋아하는 과목보다는 이른바 중요한 과목에 더 매달려야 했고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옮겨 다니면서 파김치가 되곤 하였다. 그렇게 십이 년 혹은 십삼 년을 보냈다.
그 아이 앞에 지금 뛰어넘어야 할 개울이 놓여있다. 아이가 그 개울을 거뜬히 넘을 수 있기를 소망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곡진한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 그것이 무릇 부모들의 소망이다. 기도를 한다면 당연히 건강하기를, 행복하기를 빌어야할 터이다.
게다가 기도란 원래 기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큰 뜻 앞에 무릎 꿇는 것, 무엇을 비는 것이 아니라 바치는 것이 기도의 참 의미라 한다. 하지만 그럴 여유는 없다. 빌고 또 빈다. 염치없다 싶다가도 또 엎드린다.
해마다 신문에는 수능시험 당일 학교 교문에 엿을 붙이거나, 그 앞에서 기도하는 어머니의 사진이 실린다. 바로 그 마음 그 모습으로 지금 이 땅의 모든 부모들 특히 어머니들은 기도를 한다.
하느님께, 부처님께,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이때에는 기도한다. 아이들의 수고가 안쓰럽기 짝이 없고 그 부모들의 마음이 애틋하기 그지없다.
대학, 좀 더 좋은 대학이란 목표에 전 국민이 전력을 투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개성도 소질도 취미도 무시된 채 명문대학에 줄서기를 하고 있다.
수험생들과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교육개혁안을 발표하고 보면 곧바로 부작용이 나타나서 개악이 되고 마는 결과를 낳곤 하였다. 치유하기 어려운 열병인 듯싶다.
아이는 새벽에 나가서 한 밤중에 귀가하고, 부모는 교육비 사교육비를 허리 휘며 감당해서 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면 장밋빛 미래가 열리는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는 날이 실업자 통계수치 더하는 날이 된다고들 한다. 아이들 앞에는 입시란 개울보다 더 큰, 취업이란 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떤 어려움이 놓여있을까. 양심을 팔지 않고는 버티기 어려운, 진실이 결여된 사회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참으로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 그래서 사람과 사물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 하지만 이 다급한 마음을 어쩌랴.
찬바람 한줄기가 지나가면서 빛바랜 잔디 위에 낙엽을 흩날린다. 오늘, 굽힌 등에 내리는 늦가을 햇살의 따스함을 눈물겨워하며 어머니는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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