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릴레이 대담>김주영·이문열 '문화, 무엇이 문제인가'

오늘의 문화, 무엇이 문제인가

사회 : 지금은 '문화의 세기'라지만, 문화가 가벼워지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이 일상 생활과 밀착되면서 활자 문화가 밀리고 영상 문화가 부각되는 등 구텐베르크 이후 우리 문화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 문화의 기반이 흔들리는 느낌입니다.

이문열(사진 오른쪽): 제 경우 인터넷 문화와 직접 충돌하고 있는 편입니다. 인터넷은 온라인 상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의사 결정을 하게 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일종의 낯선 '광장입니다. 하지만 그 광장이 악용될 경우 '히틀러 광장'이나 '천안문 광장'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쌍방성이 특징이지만 사실 그보다는 조직되고 준비된 일부 세력에 의해 움직이는 일방성이 두드러지는 게 문제입니다. 인터넷은 사람을 끌어내는 힘과 결속력이 강한 만큼 악용될 소지도 큰 것이지요. 그러나 변화를 조정하고 일체감도 키울 수 있는 긍정적 면도 있습니다.

김주영: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고유의 문화적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화의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문화에는 익명성이 끼여들면서 발언하고 숨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같은 익명성은 인터넷 문화의 약점이자 경계되고 극복돼야 할 과제라고 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인터넷 문화는 전파력이 커서 증폭될 수 있습니다.

이: 인터넷 문화는 짧은 시간에 다량유통을 가능케 하는 점도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이 때문에 무절제한 양적 팽창은 질적 저하를 부를 수 있으며, 하향 평준화로 이어질 수도 있어 우려됩니다.

사회: 익명성은 피해를 낳기도 하지요. 대중과 교감이 잘 되는 문화는 가볍게 마련이며,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면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디지털 세대는 아날로그 세대와는 크게 달라 세대 차와 세대간의 단절을 가져오고 있기도 합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고뇌하지 않으려는 경향은 걱정스럽습니다. .

이: 디지털 문화는 단순화로 치닫고, 인터넷 상의 이슈 역시 다분히 자극적입니다. 이상한 일은 e-book이 널리 퍼지던 1998년 무렵, 많은 전문가들이 5년 뒤엔 e-book이 일반화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우려하기도 했으나, 어떤 부분들은 여전히 아날로그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김: 보수 세력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합니다. 변화에 저항하려는 심정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요. 이 때문에 인터넷에 젖어 있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에는 단절이 불가피합니다. 경망스러움과 익명성에 대한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들도 어차피 그 변화에 운명적으로 적응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다만 디지털 문화를 어떻게 고급스럽고 심오한 쪽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느냐가 과제입니다.

이: 올 초부터 인터넷 매체에 소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이 많이 보니까 내용이 가벼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등의 고민도 했지만, 정보 교환 수단으로 인터넷이 주가 되더라도 진지하고 어려운 주제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무게가 실린 글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김: 기성작가들이나 지식인들은 고집과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거부감을 앞세우며 접근하면 현실과 괴리되고, 문화의 연결성에 공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회: '문학(시)이 죽어간다'는 말이 나온 지는 이미 오래됐습니다. 정신문화의 뒷걸음질과 인문학의 위기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으며, 날이 갈수록 덧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습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작가나 시인, 학자들이 시대를 거슬러 오르려는 반발과 도전의 정신, 오히려 '느림의 미학'을 미덕으로 삼는 사명감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 구텐베르크가 활자를 만들었을 때 세상이 망한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만, 활자 문화가 오랜 세월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인터넷 소설이라면 가벼움만 연상하는데 이는 초기의 현상일 겁니다. 이 시대에는 심오한 철학도 인터넷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김: 며칠 전, 자살하는 사람이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많다는 신문기사 읽었습니다. 고민하지 않으려는, 심지어 '고민하느니 죽는다'는 풍조는 분명 인터넷 문화와 관계가 있습니다. 고민하게 만들려면 문화 일선에 전진 배치된 사람들이 고집과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문화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회: 수능시험을 예상보다 못 쳤다고 죽음에 이르는 길을 택한다는 건 지금 문화가 '생명 경시'로 치닫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는지요. 요즘 문화계뿐 아니라 사회 전분야에 걸쳐 보수·진보간의 갈등과 분열이 고조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광복 직후의 해방 공간에서 빚어졌던 좌·우간의 갈등과 대립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이: 좌·우나 보수·진보에 다양한 편차가 있는데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분위기도 문제입니다. 딱 두 덩어리로 나뉘니까 싸우게 되는 건 당연합니다. 이를테면, 보수에는 개혁적 보수가 있고, 진보에도 반동적 진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단순화를 깨뜨려야 합니다.

김: 정치와 정치가들의 책임이 가장 무겁습니다. 특정 세력이 득세해 갈등과 대립 양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정치권이 이념 구분을 단순화시키고 정치 공세에 이용하는 느낌입니다.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단순화된 두 이념의 가치 있는 부분들을 융화시키고 조화시키는 세력(중간 세력)이 나오고, 목소리를 제대로 내야합니다.

이: 여러 편차가 있는 진보 세력을 하나로 몰아가면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게 되고, 보수 세력 하나로 몰아가면 친일파나 해방 이후 반공 이데올로기를 확대하고 확산시키는 결과를 부르게 됩니다. 단순화에는 그런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사회: 문화계와 문화단체의 주요 자리를 민예총 등 민족문화운동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 지난날에는 제도권 인사나 어용 인사들이 문화계의 요직을 두루 차지하는 현실을 비판하던 세력이 자리를 차지한 셈이지요. '시어머니를 욕하면서 시어미니를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회: 적지 않은 문화계 인사들이 문화의 다양성이나 '부드러움의 힘'이 희석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분위기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만….

이: 문화는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지 일시에 주입되지는 않습니다. 노사모가 탈레반이 되겠다고 했다던데 도대체 탈레반의 정체를 알고나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탈레반을 하겠다는 것은 너무 끔찍한 발상입니다. 만약 탈레반에 대해 조사를 안 했다면 너무 경박하고 무식한 짓이죠.

사회: 문화에 정치적인 요소가 깊이 파고들거나 문화를 정치논리로 풀려고 하는 시도가 있는데요.

김: 문화는 부드러운 것입니다. 부드러운 가운데 호소력을 가져야 바람직합니다. 정치 논리가 깊이 개입되거나 문화가 정치에 귀속되는 건 곤란합니다. 문화가 점차 날카로워지고 전투적으로 바뀌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어야 할 문화를 정치적인 논리로 풀려는 분위기는 경계돼야 합니다. 과거 제3공화국 당시 문화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현재 정권의 실세인 것도 사실입니다. 문화 운동을 밥그릇을 차지하기 위해 했다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 운동을 오래 해왔지만 자리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 순수파들도 있습니다. 과거의 비판 세력이 '속내는 밥그릇에 있었다'는 오해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사회: 문화가 계속 새롭게 상승 작용을 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 우선 문화의 정치화를 경계해야 합니다. 20세기 후반의 중국 문화 혁명 결과를 떠올려 보세요. 좀 과격한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홍위병들이 문화를 장악은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그런 식으로 문화 혁명을 시도하는 건 아니어야 합니다.

사회: '문화 권력'이라는 말이 나온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만 이 문제를 들러싼 논란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

이: 문화 권력이라면, 그 용어를 누가 가장 먼저 썼느냐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문화 혁명 당시 반동 예술 권위, 또는 반동 학술 권위를 지칭하던 말이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작가 파군위를 처형할 때 반동 예술 권위라는 이유를 댔지요.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이 말은 다소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계의 중진 엘리트들이 문화 권력을 잘못 행사하는 것을 염두에 둔 말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김: 문화인은 영원한 '야인'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문화 전체가 올바르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 밥그릇 싸움을 하거나 권력에 취하면 문화는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문이나 감투를 위해 일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해금 조치 이후 사정이 조금 나아졌으나 여전히 문학사마저 반쪽에서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남·북의 이질화를 극복하면서 동질성을 회복하는 일은 큰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지금의 남북 문화 교류는 이질화의 극복보다는 '단합대회' 성격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김: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주로 친분이 있거나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문인들을 해외에 보낼 때 민족문화 쪽 인사를 많이 보냈지요.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도 폭넓게 문호를 여는 게 바람직합니다. 민족의 동질성 회복은 정말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회: 이태수 논설위원

정리: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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