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중앙박물관 '위작 망신'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카뮈가 '문화-그것은 운명 앞에서의 인간의 외침'이라고 했던 것처럼, 문화를 창조하기는 어렵다.

말과 행동은 그럴듯한데 진실하지 않은 사람이나 물건을 '사이비(似而非)'라 한다.

달리 말하자면 '가짜'이고, '모조품'이다.

정교한 모조품은 '진짜'와 구별하기 어렵고, 때로는 진짜 행세를 한다.

하지만 진짜와 가짜는 만들어진 과정과 그 속에 담긴 정신부터 전혀 다르다.

진짜에는 창조적이며 독창적인 정신이 깃들여 있고, 고통스러운 삶과 그 고뇌가 투영돼 있다.

가짜는 겉모습만 진짜를 닮게 해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도둑질하려 한다.

▲고미술품을 둘러싼 위작(僞作) 시비는 비일비재다.

동서고금을 통해 대단히 어려운 일로 꼽히고 있듯이, 그 감정은 실로 어렵다.

그래서 자칫 감정이 잘못된 경우 소장자가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그릇된 인식을 심고, 유통질서를 교란시키게 하기도 한다.

렘브란트의 초상화가 가짜로 알려졌던 뉘른베르크 소장 작품과 진짜로 행세해온 헤이그미술관 소장 작품이 뒤집히는 일도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위작 소장으로 체면이 구겨졌다.

지난달 21일부터 이 달 30일까지 열리고 있는 '조선 성리학의 세계-사유와 실천'전에 출품된 율곡 이이(栗谷 李珥)와 다산 정약용(茶山 鄭若鏞)의 유묵이 가짜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적류 40여건도 중간본(重刊本)인데 제작 시기를 대부분 초간본 연대로 표시해 실제보다 100~200년 차이가 난 것으로 밝혀져 '망신살'이 뻗쳤다.

▲위작 시비가 일자 중앙박물관은 김양동 교수(계명대) 등 서지전문가들로 자문위를 구성, 감정한 결과 위작으로 판명됐다.

다행히 이들 유묵은 11일부터의 후반 전시 품목에 포함돼 전시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도록에 실려 있어 뒤늦게 정오표를 붙이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전문가가 '예고된 사고'라고 꼬집고 있듯이, 중앙박물관에는 서지학.전적.서예 등의 전공자가 없는 데다 자문마저 제대로 하지 않는 '배짱'을 부리다가 빚어진 일이었다.

▲우리나라만큼 가짜가 판치는 나라도 드물 게다.

가짜 미술품들이 진짜로 둔갑해 유통되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조차 가짜가 있다면 말이 안 된다.

아무리 가짜들이 진짜로 행세하면서 대접까지 받는 세상이라지만, 국내 최고 권위의 박물관까지 눈이 어두워서야 되겠는가. 이젠 가짜 문화, 가짜 상품, 가짜 지도층이 판치는 사회를 정직한 진짜가 아니면 발을 붙이지 못하는 사회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짜를 가려내고 추방하는 분위기도 성숙해져야 하리라.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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