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12월

12월. 조지 윈스턴의 '디셈버(December)'가 썩 어울리는 달이다.

얼음장 아래 흐르는 개울물처럼 차고 맑은 피아노 음률이 속진(俗塵)에 찌든 마음 저 밑바닥을 살짝살짝 건드리는 것만 같다.

달력에 달랑 한 장 남은 달. 언제나 그렇듯 1년 열두달 중 12월이 가장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체감속도로는 눈깜작할 새다.

망년회다 뭐다, 어수선한 연말 분위기로 정신이 얼얼한 사이 뭐가 그리 급한지 후다닥 달아나 버린다.

인디언들은 12월을 부족에 따라 '침묵하는 달', '무소유의 달', '늑대가 달리는 달' ,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 등으로 부른다고 한다.

그들의 달력은 우리가 아라비아 숫자로 1월, 2월 하며 무미건조하게 부르는 식과는 사뭇 다르다.

단순한 숫자개념, 흘러가버리는 시간개념이 아니라 자연과 인생에 대한 애정과 관조의 시선이 깊숙이 녹아있다.

옆도 뒤도 돌아볼 새 없이 내달리지만 그 속도만큼이나 더 팍팍해지는 우리네 삶과는 달리 비록 현실은 고달플지언정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 인디언들의 삶의 방식이 부럽다.

우리에게 12월은 어떤 의미일까. 벌써 직장에선 한 해의 결산작업으로 바쁘고, 샐러리맨들은 연말정산용 서류를 떼느라 발품을 들인다.

망년회 스케줄이 안 꼬이도록 챙겨야 하고, 아무리 주머니 속에 바람 두어주먹 밖에 없다해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손꼽는 아이를 실망시킬 순 없고, 수북이 쌓이는 청첩장을 보며 혹시라도 빠트릴까봐 걱정까지 해야 하는 달, 그러면서도 첫 눈 오는 날이 괜시리 기다려지기도 하는 달….

며칠 전만 해도 붉고 노란 잎들을 귀고리처럼 달고 있던 나무들은 이제 미련없이 그것들을 떨구고 있다.

저 나무들처럼 버려야 할 것을 과감히 버릴 수 있다면, 끝내 포기해야 할 것은 깨끗이 포기할 수 있다면, 우리 사는 이곳도 좀 더 살만한 세상이 될텐데.

'한 해의 마지막'이라는 접두어 때문일까. 가까이 있는 사람은 더욱 살갑고, 멀리 그리운 사람은 더욱 그리워지는 달이다.

옆구리가 시린 사람은 더욱 외로움에 떨게 되고, 마라톤선수마냥 전력질주해온 사람이라면 1년의 결산서를 앞에 놓고 "과연…"하며 만족해 하거나"애개?…"하며 좀 허탈해 하기도 할 때다.

대지의 모든 것들이 휴식에 들어가는 12월.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日暮途遠)'며 신발끈을 새로 조이기보다 잠시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는 지혜가 더 유익할 것 같다.

눈가리개를 한 말처럼 너무 앞만보고 죽자고 달려온 건 아닌지, 그래서 정작 소중한 것을 놓쳐버린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전경옥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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