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무서워요".
경기불황으로 가계가 어려워지면서 전기요금을 못내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어둠 속에서 생활하는 가정들이 크게 늘고 있다.
경주 월성동에 사는 이모(66)씨는 해만 지면 컴컴한 방에 갇혀 아무 것도 못한 채 날이 밝기만을 기다린다.
전기공급이 끊긴 지도 한달이 넘었다.
겨울로 접어들며 밤은 점점 길어지는데 걱정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빠듯한 생활 속에 자녀들을 공부시키느라 돈 한푼 제대로 모으질 못했다.
결국 몇 푼 안되는 전기요금조차 감당하지 못해 단전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돈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당장 해결할 방법도 없다.<
동네 주민과 한전의 도움으로 작년에 끊겼던 전기가 한 때 들어오기도 했지만 다시 끊어지고 말았다.
"객지에 나가 사는 자식도 생활이 어려워요. 어차피 돈을 보태줄 처지가 안되는 걸 알기 때문에 전기요금 못낸다는 말도 못했죠. 이웃 도움 받는 것도 한두번이지…". 이씨는 긴 한숨을 내쉬고 캄캄해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한전 경주지점에 따르면 전기요금을 못내 단전된 수용가는 306곳(체납액 1억5천만원)에 이른다.
이들 중 공장 4곳과 식당 38곳을 제외한 나머지 264곳은 모두 저소득층 가정이다.
최근 이들 저소득가구돕기 캠페인을 벌여 137만원을 모금하기도 했지만 급증하는 요금 체납에는 당할 재간이 없다.
한전 경북지사가 관할하는 안동, 청송 등 경북 북부지역 10개 시.군의 전기요금 수금률은 9월말 현재 95.9%로 외환위기 이후 최저수준이다.
미수액은 무려 78억여원. 3개월 이상 체납으로 인한 단전가구도 10월말까지 3천906가구에 이른다.
작년 같은 시기보다 35.7%인 1천29가구가 늘어난 것. 단전 조치된 수용가의 미수요금도 10월말까지 7억1천여만원으로 작년 3억여원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한전과 시.군 관계자는 "장기간의 불황과 막다른 길에 다다른 농촌 경제의 어려움 때문에 각종 세금과 공과금 징수율이 근래 들어 최저치로 떨어졌다"며 "고의성보다는 실제로 돈이 없어 요금을 못내는 서민 가정이 크게 늘었기 때문에 강력한 징수조치도 먹혀들지 않는다"고 했다.
농촌 경제가 어려워지다보니 음식점.유흥업소 등도 전기세를 내지 못해 단전 조치되는 형편이다.
성주읍 ㄷ식당은 5개월분 전기세 46만원을 내지 못해 한전으로부터 단전 통보를 받았다.
또 외환위기 전만 해도 투기바람까지 불었던 가야산 입구 식당가 역시 관광.등산객이 크게 줄면서 전기요금을 못내 단전조치됐다.
집 주인 이모(57)씨는 "식당에 세를 놓았는데 영업이 되지 않는 바람에 세입자가 문을 닫고 갑자기 떠났다"며 "전기요금을 한푼도 내지 않아 결국 전기마저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한전 성주지점 김병재 요금과장은 "10월말 현재 3개월 이상 전기요금을 체납한 150여곳의 수용가가 계약해지됐으며 이는 예년보다 30%가 늘어난 수치"라며 "특히 단전된 130여곳 수용가 대부분이 일반 가정이거나 식당 등 소규모 점포일 정도로 농촌 경제가 어렵다"고 했다.
상주의 경우 아직 단전되지는 않았지만 전기요금을 3개월 이상 내지못해 단전 대상이 된 수용가는 무려 6천102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보다 80% 가량 급증했다.
아울러 한달 이상 요금을 체납한 수용가도 2만8천가구를 넘어서 심각한 지역 경기상황을 짐작게 했다.
체납으로 인한 단전대상은 일반 주택이 66.8%로 가장 많았고, 농사용전기가 18.7%, 영세업소가 13.4% 등을 차지했다.
이들 대부분은 장기 불황에 따른 소득 감소로 납부능력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전 상주지점은 단전대상 중 사용량이 월 100㎾h 이하 가정의 경우 최소한의 생활을 하도록 내년 2월까지 단전을 유보하기로 했다.
칠곡군 공단지역 섬유업체의 부도와 이로 인한 전기요금 연체도 증가하고 있다.
한전 칠곡지점에 따르면 올해 전기요금 수금률은 작년보다 2% 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전기요금 수금률은 2001년 97.7%에서 올해 9월분은 95.3%에 그쳤다.
이밖에 수돗물, 건강보험료 등을 체납하는 경우도 급증세다.
의성의 경우 9월말 기준 상수도요금 체납건수가 1천여건에 체납액은 4천여만원에 이르러 작년보다 체납건수는 13.8%, 체납액은 43.5% 증가했다.
상수도사업소는 연말까지 납부를 독려한 뒤 장기체납자에 대해 단수 조치를 할 계획이다.
또 국민건강보험공단 문경지사의 경우 올들어 11월까지 보험료를 3개월 이상 체납한 피보험자는 4천800여가구에 이른다.
금액은 10억9천여만원. 결국 경기가 나쁘다보니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운영난에 허덕이고 체납자들은 진료시 본인부담금외 공단부담금을 별도로 내는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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