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약 몇재 먹는 것보다 게이트볼 한 게임이 건강유지에는 최고라니까".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린 지난달 27일 오후 대구시 남구 대명3동 동사무소 인근 게이트볼 구장. 비오는 날씨도 개의치않는 듯 10여명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작은 막대를 잡고 게이트볼 경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따악'하는 타격음과 함께 흰색, 빨간색 공들이 경기장 곳곳에 구를 때마다 여기저기서 탄식과 환호가 이어졌다
남구 생활체육 게이트볼연합회 회원인 이들 노인은 5명씩 팀을 짜 연습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한 할아버지는 같은편 순서가 되면 마치 프로경기 감독인 양 팔짱을 끼며 경기장 전체를 둘러보다가 '아하'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치라며 팀원에게 작전지시를 내렸고, 이 지시를 받은 한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인 후 힘찬(?) 스윙을 했다.
이들 회원은 대부분이 60, 70대로 구성됐으며, 10여년 전부터 모임을 결성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 구력은 조금씩 다르지만 최소 5년 이상이 된 회원들이 상당수이며 10년 이상의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이들도 많다.
게이트볼을 시작하게된 동기에 대해서는 게이트볼에 대한 호기심, 무리한 운동이 아니어서 나이에 맞는 체육활동으로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순희(68.대명9동) 할머니는 "3개의 작은 게이트에 공을 집어넣고 상대팀이 공을 치기 어렵도록 만드는 것이 경기를 이길 수 있는 작전인데 한껏 시합에 집중하다 보면 절로 활기가 돈다"며 게이트볼 자랑을 열심히 했다.
또 이 모임의 정병춘(71.대명1동) 사무장은 "회원들 대부분이 직장 또는 생업에서 은퇴한지 10년 이상돼 자칫하면 의기소침해지기 쉬운데도 게이트볼 운동을 통해 다시금 생기를 찾고 있다"며 "특히 친구, 형제처럼 오손도손 지내는 분위기를 통해 주위의 많은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게이트볼 구장에 모인 회원들 가운데는 유난히도 함께 움직이며 보조를 맞추는 이들이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가 부부회원들이라고 귀띔했다.
10년간 모임에 거의 빠지지 않고 있다는 최재교(76.대명동).배상영(75.여)씨 부부. 직장생활과 사업 등으로 바깥생활이 많았다는 최 할아버지는 "그동안 관심도 못 가져주고 때로는 화를 내는 일도 꽤 있어서 늘 미안했는데 함께 게이트볼을 하면서 괄괄하던 성격이 누그러지고 아내에게 좀 더 신경을 쓸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배 할머니는 "내가 먼저 이 운동을 배운 후 한달 뒤부터 남편을 졸라 이후 늘 같이 다니는데 금슬이 새록새록 돋는 기분"이라며 얼굴을 붉혔다.
또 다른 부부회원인 박성호(68.봉덕3동).안호봉(65.여)씨는 남편인 박 할아버지가 몇년 전 건강이 좋지 않아 신장이식을 한 뒤 건강회복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게이트볼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했다.
박 할아버지는 "처음 수술을 받았을 때만 해도 몸에 이상이 많았기 때문에 어떤 운동도 해낼지 두려웠다"며 "하지만 자주 걷고 우리 나이대에 적당한 운동이라는 소개에 게이트볼에 입문했는데 이후에는 아픈 것이 다 사라졌다"고 말했다.
또 안 할머니는 남편과 게이트볼 경기를 치르면서 건강이 점점 나아지고 노년에도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분야가 생긴 것같아 너무 좋다고 얘기했다.
노년층인 회원들 속에서 다소 젊어보이는(?) 2명의 남녀가 어르신들 사이에서 열심히 스틱을 손놀림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어서 다가가봤다.
약간의 장애를 갖고 있는 몸으로 각각 2년 전과 1년 전에 이 모임에 참석하게 됐다는 변창근(55.봉덕동).이윤자(49.여)씨.
걷는 것이 조금 불편한 변씨는 장애가 있어 운동을 한다는 결정을 선뜻 내리기가 쉽지 않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이 모임을 알게 됐다며 게이트볼을 접한 이후 허리근력이 강화되고 불편했던 발의 건강도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정상인에 비해 왜소한 체구를 지닌 이씨는 처음에는 장애인들로만 구성된 게이트볼 팀에서 활동하다 1년 전 '장애인의 날'을 계기로 이 모임에 참석하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대부분의 운동이 장애인.비장애인을 구별할 수밖에 없는데 비해 게이트볼은 그러한 점을 개의치 않고 함께 어울릴 수 있어 좋다며 모임의 막내이자 최연소로서 열심히 걸으며 땀흘리고 있다고 얘기했다.
빗속에서도 열심히 운동을 마친 회원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오늘은 평상복으로 운동을 하고 있어서 게이트볼이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는 운동인지 잘 모를 것이라며 정식 시합땐 번호가 새겨진 조끼를 입고 프로선수같이 멋지게 한판 벌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장비도 작은 스틱 하나만 구입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데 보통 스틱 한 개당 2만~20만원선에 이르러 큰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건강만점 스포츠'라는 점을 연신 강조했다.
변경옥(72.봉덕2동) 할머니는 연습을 할 땐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서로의 단점을 지적.보완해주고 격려도 하지만 정식 경기때는 조금은 살벌한(?) 분위기가 된다며 시합을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승부욕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게이트볼은 정식경기때 5명이 한 조를 이뤄 경기를 하므로 어느 한사람만이 잘한다고 팀이 이길 수 없으며 팀원간 단결력이 승부를 가름짓는 잣대라는 전문가같은 설명도 곁들였다.
한편, 회원들은 지난번의 태풍 매미로 신천변 부지가 휩쓸리면서 훼손됐던 중동교 아래 게이트볼 구장의 보수가 최근 끝나 12월6일 재개장 기념식 및 행사를 가질 것이라며 꼭 참석해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때 와 보라고. 오늘 우리 연습하는 것을 본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구. 진짜 멋진 모습은 그날 보여줌세.
이렇듯 황혼의 자락에서도 뜨거운 열정을 지닌 채 생활하는 회원들의 모임인 남구 생활체육 게이트볼연합회는 지난 2000년 10월 대구시의 제12회 시민생활체육대회 혼성부에서 우승한데 이어 올들어서도 각종 전국대회에서 상위입상하는 등 전국적으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고 회원들이 전했다.
한 회원은 예전엔 대구 남구팀 하면 다들 두려워할 정도로 엄청난 강팀이었는데 최근에는 전국 각지역 팀들의 수준이 고루 평준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날 게이트볼 구장에 모인 회원들은 가끔씩 해외에 나가 경기를 치를 정도로 게이트볼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며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찬 파이팅을 외쳤다.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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