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를 즐기는 당신. 특히 여기저기서 총알이 날아오고 슈퍼맨이 아닌 인간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전쟁 신에 열광하는 당신. 게다가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는 "그냥 멋지게 터지는군" 할 게 아니라 "화면도 장렬한 데다 휴머니티까지 가득하군"이라며 뿌듯하게 폼 잡을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올 크리스마스엔 다소 심각하게 생각할 거리를 주면서, 상영 시간 내내 가슴 졸이며 재미있어할 '실미도'로 떠나보자. 그 섬은 32년 간이나 잊혀진 슬픈 진실에 관한 비극이다.
안성기, 설경구, 정재영, 허준호라는 캐스팅 발표만으로 벌써 영화팬들을 설레게 했던 영화. '투캅스', '공공의 적'의 감독 강우석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사실에 들뜨게 했던 영화. 순제작비만 82억이 들었다는 무지막지한 대형작. '실미도'는 광고카피 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게 하는 영화임에 분명하다.
영화 '실미도'의 정체는 육중한 한국 블록버스터이기 전에 30년 전 한 사건에 대한 신랄한 고발이다.
◇限 많은 섬 '실미도'
1968년 1월, 북에서 "박정희 목을 가지러왔다"며 31명의 김신조 일당이 서울 시내에 침입한다.
이에 분노한 박정희 정권은 복수를 위해 사형을 앞둔 죄수, 밑바닥 출신의 31명 남자들을 실미도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새 삶에 대한 보장과 함께 "통일의 주역"이 될 것이란 명분을 내세우며 주석궁에 침투 김일성의 목을 가져올 수 있도록 지옥훈련을 받게 한다.
68년 4월 창설되었다고 하여 '684 부대'라고도 불렸던 '실미도 특수부대'는 인간이 견디기 힘든 극한의 훈련을 3년 간 받으며 차차 살의에 충만해 간다.
드디어 상부에서 작전 실행명령이 떨어지고, 자신감을 불태우며 북을 향해 출정하던 날 갑작스런 작전 취소 소식이 전해진다.
실미도로 복귀한 그들은 허탈한 정신적 공황을 겪게 된다.
1970년대 초 남북 화해무드 속에서 정부는 급기야 실미도 부대의 해체, 즉 전 대원의 사형을 결정하게 되고, 이 사실을 먼저 알아챈 대원들은 대통령과 담판을 짓기 위해 주석궁 대신 청와대를 선택하지만….
◇질기디 질긴 투쟁이여!
31명의 대원들 가운데는 개그우먼 조혜련의 막내 동생 조지환, 여배우 전도연의 사촌동생 김기성도 포함돼 있다.
대원들의 캐스팅 과정에서부터 체력 테스트를 하고, 뽑힌 후에도 2개월 간의 액션스쿨, 한달 간 수영과 잠수 훈련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안전장치 없이 외줄 타기를 하는 장면을 위해 수없이 연습을 거듭했다고 하니 외줄 타는 장면을 놓치지 말길. 나중에는 스턴트맨들보다 배우들 연기가 더 씩씩해 스턴트맨을 쓰려던 계획이 취소됐다고. 뉴질랜드에서의 겨울 훈련 장면과 지중해에서 촬영된 출정식 장면도 장엄하다 못해 눈물겹다.
◇에필로그
국가권력 앞에서 개인은 언제나 초라한 것일까? 목숨을 건 훈련 끝에 실미도 부대가 얻은 것은 '구시대 냉전의 유물'이라는 꼬리표뿐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사건 직후 그들을 '무장공비'로 발표했고, 다음날 군 범법자들의 난동으로 정정한다.
'존재가치를 잃어버린 유령부대'인 그들이 목숨을 걸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믿었던 조국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던 그들의 32년 간 숨겨진 사연들…. 이제 말할 수 있게 된 지금, 그들은 사라지고 없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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