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3회 서상돈 상' 본상, 이동찬 명예회장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제3회 서상돈상 본상을 받게 된 데는 지난 1957년 부친과 함께 '한국나이롱'을 창업, 당시 수입대체산업에 머물던 국내 섬유산업을 일으켜 초기 국가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난 이 명예회장은 어린시절 부친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부친이 경영하는 '아사히 공예사'에서 부친의 사업을 도우면서 상업학교 야간부를 거쳐 43년 와세다대학 전문부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 발발로 학병 입대를 피하지 못한 그는 44년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 신덕진 여사와 결혼한 뒤 신혼 1주일 만에 전장으로 떠나야 했다.

해방된 조국에 돌아온 이 명예회장은 사회 치안유지에 뜻을 두고 지인들과 함께 경북 '학병동맹', 경북 경찰학교 창설에 참여했으며 경산경찰서 등 일선 경찰서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기도 했으나, 46년 10월 대구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경찰직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이 명예회장은 '국민들에게 따뜻한 옷을 만들어 입게 하는 것도 애국'이라는 소박한 신념을 갖고 47년 '경북기업'이라는 직물회사를 설립, 섬유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54년 현 코오롱상사(주)의 모태가 되는 '개명상사'를 설립, 한일무역을 시작했고 57년 부친과 함께 한국나이롱을 창업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나일론사를 생산함으로써 한국섬유산업의 기수가 됐다.

77년 제2대 그룹회장직에 오른 그는 80년대말 불붙은 노사현장을 지켜보면서 직장에서의 보람이 인생의 보람이라는 생각으로 제창한 '보람의 일터 운동'을 코오롱그룹 기업문화로 정착시키는 등 노사화합에도 새길을 열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장,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 대한골프협회장, 월드컵축구대회 한국조직위원장을 거친 그는 현재 한국경영자협회 명예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금탑산업훈장(1982년), 체육훈장 청룡장(1992년), 국민훈장 무궁화장(1992년), 올해의 신산업경영인 대상(1993년), 한국경영자 대상(1994년)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병고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