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지역에 돈이 마르다보니 중소도시 상가는 죽을 맛이다.
하루 종일 가게 문을 열어놔도 3, 4만원 벌기가 쉽잖다.
목 좋다고 소문난 시장 상가에도 폐업이 속출하고 점포 매물이 쏟아진다.
하지만 사려는 사람이 선뜻 나서질 않는다.
습관적으로 가게 문을 여닫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군위읍에서 미용실을 하고 있는 정모(38.여)씨. 8평 남짓한 미용실에서 벌어들이는 한달 수입은 월세 17만원을 빼고 나면 40만~50만원이 고작. 아무리 농촌 생활이라지만 네식구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90년까지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남편 권모(41)씨가 신부전증에 걸리면서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간 알뜰히 모아뒀던 재산은 병원비로 바닥났다.
국비지원 직업훈련원에서 미용기술을 배운 정씨는 생활안정자금 500만원을 융자받아 조그마한 미용실을 운영하게 됐다.
처음에는 제법 수입이 짭짤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농촌 경제가 급격히 악화됐고, 근래엔 최신 시설을 갖춘 경쟁업소들이 잇따라 들어서는 바람에 단골들마저 놓치게 됐다.
투병 중인 남편은 "한푼이라도 보태겠다"며 1t 중고 화물차를 구입해 구미.칠곡 등을 돌아다니는 과일행상에 나섰지만 생활에 도움은 안된다.
그냥 집안에 있는 것보다 소일거리 삼아 조금씩 활동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 남편을 말리지 않고 있을 뿐이다.
정작 마음이 아픈 것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 때문. 그 흔한 학원 한 곳 보낼 수 없다.
"웬만한 애들은 태권도.컴퓨터.피아노.영수학원 등 서너곳씩 다니는데 형편이 어렵다보니 못 보내죠. 친구들이 학원에 가고 없어서 혼자 집에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미어터지죠".
영양읍에서 귀금속점을 하는 박모(49)씨는 얼마전 읍 장날에 부인과 함께 하루 종일 가게를 지켰다.
아무리 장사가 안돼도 장날엔 손님이 올거라며 내심 기대했었다.
하지만 벽시계와 손목시계 배터리 서너개만 갈아줬을 뿐 금반지, 목걸이 등 귀금속은커녕 탁상시계 하나 못팔았다.
물론 이런 불황은 한두달새 벌어진 갑작스런 일이 아니다.
벌써 3년이 넘도록 제대로 매상을 올려보지 못했다.
"결혼 패물을 장만하는 손님들이 찾아와야 그나마 장사가 되는데 요즘은 교통이 좋다보니 대구, 안동으로 가버립니다.
몇년 전과 비교하면 손님이 절반 이상 줄었죠".
영양에는 최근 몇달새 옷가게.비디오점.식당.다방 등이 줄줄이 부동산소개업소에 매물로 나와있다.
하지만 장사를 하겠다며 가게를 찾는 사람들은 전혀없다.
결국 점포세가 밀리고 심지어 난방비며 전기요금도 못내 허덕대는 점포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읍에서 옷가게를 하는 박모(39)씨는 "장사가 안돼 점포를 내놓은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사겠다는 사람이 전혀 없어 겨우겨우 버틴다"고 했다.
청도도 상권을 모조리 대구로 빼앗겨 지역경제 기반이 흔들릴 정도다.
팔조령 터널이 개통될 때만해도 군민들은 인구도 늘고 경제도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웬만한 가재도구며 생활필수품조차 대구로 나가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상가가 들어서 있던 청도.풍각.이서면 소재지에는 폐업 점포가 속출하고, 그나마 남아있는 점포들도 매출이 절반 가량 줄었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청도읍에서 20년째 옷가게를 하는 정모(52)씨는 "팔조령 터널이 뚫린 뒤 인근 지역 단골도 대구로 가버렸다"며 "연말엔 업종을 바꾸던지 폐업할 생각"이라고 했다.
10년전만 해도 100여개 점포가 밀집해 호황을 누리던 풍각면 소재지도 5일 장날만 잠깐 북적인다.
주민들은 각북면 오산리와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를 잇는 헐티재까지 4차로로 확장되면 풍각 상권은 사라질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일부 이주해 오는 사람도 있지만 주민등록은 옮기지 않고 몸만 오기 때문에 경제에는 도움이 안된다.
울릉지역 경제도 심상치 않다.
불황이 계속되자 섬 주민들은 도시로 떠나겠다며 상가며 주택을 급매물로 내놓고 있다.
읍내 벽보판 곳곳에는 부동산 매물광고가 빼곡이 들어차 있지만 거래는 단 한건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기업종으로 손꼽히던 여관이며 다방업종도 폐업이 속출한다.
다방의 경우 34개 업소가 영업을 하다 최근 무려 16곳이 문을 닫았고, 나머지도 불황에 허덕인다.
여관업을 하는 유모(43)씨는 "여객선 관문에 위치한 여관인데도 도무지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며 "이대로 불황이 계속되면 섬 경제가 끝장날 판"이라고 했다.
음식점을 하는 김모(42)씨도 최근 식당을 처분하려고 매물을 내놨지만 나서는 사람이 없어 섬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부인과 가족은 이미 지난 5월 부산으로 떠났고, 부인은 지하상가를 임대해 전자부품 판매업을 시작했다.
"식당업을 한지 7년이 됐지만 해마다 1천500만원씩 집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것은 빚 뿐이었다"며 김씨는 한숨지었다.
장영화.허영국.정창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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