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활기차게 소매유통을 주도하던 재래시장들이 경기침체와 대형할인점의 파상적인 도심 진출과 백화점들의 물량 공세에 밀려 장기불황을 겪고 있다.
어려운 가운데 재래시장을 지켜나가는 시장지킴이들을 만나 재래시장의 빛과 그늘을 들어본다.
"짐 있어요?"
새벽 4시30분. 팔달시장에서 리어카를 끌며 채소를 옮기는 김해윤(68.대구시 서구 비산5동)씨는 대뜸 이렇게 묻는다.
팔달시장에서 36년째 리어카 배달을 해온 김씨는 차와 짐으로 뒤엉킨 좁은 시장길을 요리조리 피해다니며 요령껏 리어카를 끈다.
김씨가 하는 일은 각 산지에서 트럭 가득 싣고 온 농산물을 도매상에 배달하기도 하고 도매상 물건을 소매상으로 옮겨주는 것.
김씨는 장이 시작되는 새벽 3시경이면 어김없이 시장에 나타나 배달일을 찾아나선다.
팔달시장에 스물 대여섯명의 배달일꾼 중에서도 최고 경력자축에 속한다며 베테랑임을 자임하는 김씨지만 그래도 요즘은 여기 저기 아픈데도 많고 육체적으로 힘이 든다고 했다.
"이래뵈도 이 리어카로 1남6녀 공부 다 시키고 먹고 살았어요". 요즘은 배달하는 채소의 양과 거리에 따라 2천원부터 5천원까지 받는다.
이 삯은 30여년 전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1톤 트럭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장거리를 많이 뛰었어요. 한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여기서 명덕, 봉덕시장 등 대구시내 곳곳에 있는 시장까지 리어카로 물건을 실어다줬죠. 당시 장거리는 5천원을 받았어요".
김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오전 11시까지 일을 했지만 올해는 일거리가 없어 오전 7,8시만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시장에서 일을 시작한 후 올해처럼 경기가 최악인 해는 없었어요. 일거리가 있어야 일을 하지요". 특히 비나 눈이라도 오는 날엔 비옷을 입고 무거운 짐을 실은 채 미끄러운 시장길을 가야 하지만 김씨는 리어카를 놓지 않을 작정이라고 했다.
"아직 힘이 있으니 앞으로 4, 5년은 이 일을 계속 할겁니다". 김씨는 이 말을 남겨놓고 서둘러 리어카를 끌고 다음 배달을 위해 사라졌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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