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항상 미련이 남는 이때, 곳곳에서 아쉬운 한해를 보내고 새해맞이를 위한 행사가 많이 마련되는 시기다. 소란스런 송년회보다는 고즈녁한 산사에서 한해를 반추해보는 시간을 갖는 게 오히려 필요한 때. 겨울산사를 찾았다. 목탁과 독경소리가 은은하게 울린다면 더 좋겠거니와 그저 풍경소리만 있어도 좋다. 천년이 넘도록 제자리를 지켜온 산속의 고찰은 해마다 요란을 떨지 않는다.
평지가 드물고 가파른 봉화는 경북의 오지였지만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가까운 곳이 됐다. 봉화땅에 작고 골 깊은 청량산이 있다. 그 산에는 산만큼 작은 절 청량사가 있다. 멀리서 보는 청량산은 왜소하다. 그저 도로 한편에 올라가는 등산로만 있을뿐 그 모습은 감추고 있다. 매표소를 지나 모정에서는 차로도 갈 수 있지만 '차량절대 출입금지'란 서슬푸른 푯말에 등산로를 따라 걸어 오른다.
첨부터 길이 곧추 섰다. 하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 가을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작은 소로를 따라 가득 담겨 있다. 겨울이 오기전까지 잎으로 가렸던 나무줄기가 나신이 되면서 부끄러운 몸을 드러내고 그 벗은 옷들이 길가에 깔렸다. 떡깔나무와 갈참나무 잎들이 오롯한 산길, 그것도 한쪽은 천길 낭떠러지고 한쪽은 바위투성이인 산에 난 오솔길에 푹신한 융단을 만들
어 놓았다. 청량사 백미는 당연 이길이다. 20여분간 계속되는 오솔길 진입로는 다른 산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속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는 얘기다.
외청량 응진전과 내청량 유리전으로 향하는 삼거리가 나타난다. 청량사로 향한다. 모퉁이를 돌자 겨울바람이 손님맞이를 하더니 이내 연봉에 감춰진 청량정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내리막길로 가니 변소가 먼저 나타난다. 산꾼의 집이 그 뒤에 있고 퇴계가 은거하며 도산십이곡을 집필한 '오산당'이 그 옆에 있다. 절집앞에 집을 지어 놓고 '내 산에 있는 집'이란 현판을 내건 것은 당시 숭유억불정책의 일면목을 볼 수 있는 재밌는 모습이다. 하기사 소수서원도 절터를 허물고 지었다고 하니...
절집으로 향하는 오솔길로 접어든다. 다른 사찰과 달리 일주문도 없고 천왕문도 없다. 길 오른쪽에 벼락맞은 고목의 형상이 마치 천왕문의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청량사는 수년동안 대대적인 불사를 해 막 단장을 끝내고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농부 삿갓아래에 숨었을 정도로 작은 터가 있고 거기에 청량사가 있다. 계곡에 위치한 까닭에 바람이 엄청 분다. 바람에 흔들린 풍경소리가 모든 산사에 울려퍼지고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바람에 범종루 기둥뒤로 숨었다. 범종루 뒤에는 음료대가 설치돼 있는데 지붕에서 물이 떨어지도록 만들어 놨다. 추워도 산사의 샘물은 보약이라 덜덜덜 떨면서 한바가지를 마신다.
위로 난 계단을 따라 유리보전에 오른다.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종이로 만든 부처가 모셔져 있다. 기대와는 달리 금칠을 해 놓아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다. 공민왕의 친필 현판이 걸린 유리보전앞에는 원효와 의상이 처음 절을 창건할 때 주민들이 보시한 뿔이 셋난 소가 불사가 끝나자마자 죽어 묻힌 자리에 난 절벽위의 소나무 '삼각우총' 있고 그 앞 '모든 봉우
리의 기가 모이는'곳에 5층 탑이 세워져 있다. 칼날같은 바람을 마주하고 선 절벽에서 바라보는 외청량과 건너편 축융봉의 모습이란... 유흥준교수가 "경북답사코스의 클라이맥스"라면서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답사를 포기한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범종루 아래 안심당이란 찻집도 인상적이다. 절 코밑에 찻집이 있다니? 주지 지현스님이 바람을 피할 공간을 만들고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란 화두를 던져 놓았다. 불교전통등을 재현한 내부 공간이 바람에 혼을 뺏긴 영혼을 진정시킬만 하다. 오히려 안심당 안에서 넓은 창을 통해 청량산을 바라보니 시간가는 줄 모른다. 11가지 각종 차들 가격이 3천원이다. 넋
놓고 바라보던 외청량을 오른다. 산꾼의 집을 다시 거슬러 뒤편으로 난 길을 오른다. 길이 너무 가파르다. 한 참 쉰 다리가 후들거리는 길이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어풍대에 오르니 청량사의 모습이 6개의 봉우리에 둘러 쌓인 채 들어 안은 모습을 보면 문득 탄성이 나온다.
한뼘 땅뙈기도 없을 만큼 가파른 협곡이 여섯봉우리 아래 펼쳐지고 기암마다 노송을 머리에 이고 있다. 퇴계는 이곳 청량의 비경을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흰기러기 뿐'이라고 읊었다. 눈에 보이는데로 카메라에 도저히 담을 수 없어 안타깝다.
청량산 제일의 전망대 어풍대부터 원효대사가 수도를 위해 따로 머물던곳 응진전까지는 거의 평지다. 천길 낭떠러지위에 난 돌길이다. 금탑봉 이마부분에 자리한 나한전인 응진전은 초라하지만 외롭게 한그루 서있는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응진전앞 공터에서 바라보면 봉화로 나가는 도로가 까마득히 보인다. 빼어난 풍광이다. 응진전을 거쳐 오른쪽으로 하산하는 등산로가 나 있다.
◆산꾼의 집에서는 초막산인 이대실씨가 산사를 찾는 이들에게 9가지 약재를 넣어 만든 구정차를 공짜로 제공하고 있다. 이유를 물으니 "줌으로 인해 그만큼 비워진다"고 답한다. 직접 빚은 도자기와 목공예 인형이 가득해 눈요기거리로도 충분하다.
◆봉성에는 고려때부터 이어진 토속음식인 숯불돼지구이 음식단지가 있다. 암퇘지고기를 솔잎위에 얹은 뒤 소나무숯으로 구워내는데 지나치면 후회한다. 청량산을 나와 우회전해서 봉화방면으로 한 20분 가야 한다. 봉성숯불식당이 맛있게 한다. 1인분 4천원. (054-672-9130)
◆겨울 산사를 찾은 뒤 언 몸을 녹일 온천이 주위에 많다. 최근 개장한 알카리성 유황온천수인 소백산 풍기온천이 좋다. 영주에서 죽령쪽으로 10여분 달리면 나온다. 입욕료 4천원.(054-639-6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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