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월 26일 백두대간 아홉번째 발걸음에 나섰다. 산행사이클을 한달 마다에서 3주 마다로 바꾸었지만 당초 예정된 5월 4,5일이 어린이날이 낀 연휴라서 한 주 더 당겨 결국 2주만에 대간길에 다시 나섰다. 자주 가니 좋구만. 아주 산에 미쳤구만. '등산 매니아'가 되었네요. 유부남 회원들은 다들 집에서 쫒겨날라.
나도 아예 등산과 관련된 직업으로 인생을 다시 새출발할까. 전문 산악인들은 정말로 좋겠다. 돈도 벌고 좋아하는 산에도 가고. 세계의 최고봉, 히말라야산을 오르다 죽을 지도 모른다구요. 죽으면 안되는데. 그게 이헌태, 한계야. 따식, 영광과 환희의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지. 저는 백두대간이나 종주하면서 살래요. 이것도 주위에서 대단하고 부럽다고 말하더라구요. '용꼬리'보다 '닭대가리'가 낫다는 말도 있거든요. 완전 틀린 얘기는 아니네요.
한번 물어 볼께요. 누구 말이 맞습니까. 로마의 시이저는 작은 동네라도 그 우두머리가 되어야한다고 말했어요. 이에 비해 무위자연을 주장했던 노자는 절대로 세상에서 우두머리가 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노자가 가장 싫어한 사람은 머리에 먹물 든 소위 '지(知)'가 들어간 인간, 특히 잘난 척하는 사람이었죠. 장자는 소규모 자연농촌부락의 공동체사회가 이상적인 형태라고 믿었다고 하네요.
도가사상가들은 "태고 적에는 도적이 없었는데 성인이 세상에 나온 뒤로 사람들에게 선을 강요해서 불선한 행위가 있게 되고 자연 도적이 생겼다. 성인이 죽어 없어지지 않으면 큰 도적이 그치지를 않는다"고 거품을 물었다고 하네요. 유가쪽에서는 이를 정신 나간 소리라며 일축하고 "만일 그 옛날에 성인이 없었다면 인류가 멸하여 없어진 지도 아주 오래되었을 것"이라고 흥분했다고 하네요. 뭐가 뭔지.
독일의 철학자 니체 아시죠. 혼란의 시대를 맞아 기존의 모든 가치를 뒤집어 엎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서 '초인'을 주장했죠. 영겁회귀를 깨달음으로써 기존의 가치와 위계질서를 초극한 인간. 그는 "독수리는 결코 무리 지어 날지 않는다. 그런 건 참새나 찌르레기한테 맡기는 게 좋다--- 높이 날아오르고 발톱을 갖는 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천재의 운명이다". 말은 멋진데 나중에 염세적 영웅주의로 빠져 나찌즘과 파시즘에 이용당했죠. 니체도 결국 '영웅론'을 펼쳤구만.
시저나 노자나 둘 따 똑똑한 사람들인데. 누가 맞는 지 모르겠다. 이헌태, 니는 작은 동네라도 우두머리가 될 수 있냐. 그것도 못하면서 이쪽 저쪽 고심하는 척 하나. 사실 국민학교때 반장도 아니고 분단장한 경력 밖에 없거든요.
제가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서양철학가보다는 동양철학가들이 더 맘에 들어요. 서양철학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근세 데카르트와 칸트, 헤겔을 거쳐 현대에 들어와 논리철학의 비트겐슈타인, 선험적 현상학의 후설, 창조적 진화의 배르그송, 역사와 계급의식의 루카치, 실존철학의 샤르트르, 담론의 질서의 푸코까지 나오면 대충 무슨 주장은 하고 있는 지는 이해가 가는데 인생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 가요. 서양에서 철학필라소피도 '지사랑'이거든요.지만 뚫어지라 연구했나봐요. 논리,지식,과학이 서양사람들의 주관심사였죠.서양철학사는 '진리탐구'라고 볼 수 있죠.
순수이성비판을 위시 무슨 무슨 비판의 칸트와 정신현상학의 헤겔 철학을 한번 보세요. 아주 미쳐버리죠. 그 분들이 지은 책 10 페이지만 넘겨 봐도 머리가 뱅글뱅글 돌잖아요. 아이큐 테스트하나. 짱구를 세게 돌려야 하잖아요. 이게 과연 삶이란 무엇인가를 연구한 철학인가. 삶에서 유리되지 않았나 싶네요. 특히 서양에서 인간은 원죄를 안고 태어났죠. 오직하면 프로이드가 "신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없었던 듯하다"고 불평했겠어요.
이에 비해 석가는 철학자라고 보기에는 그렇지만 노자 장자 공자 맹자등의 동양철학자들의 글을 보면 하늘의 이치와 삶을 논하고 있잖아유. 그분들 책을 읽으면 우선 쉽고 이해가 빨리 빨리 오잖아요. 자연속에서 벗과 학문을 논하며 인생을 즐기는, 꺼리낌 없는 자유인. 하늘의 도리에 순응해서만 살면 인간은 만물의 주인이죠. 현자의 깨달음과 인생의 향락이 동양철학의 백미라고 하네요. 향락이란 표현이 이제는 사치, 향락의 대명사처럼 되었지만 참 좋은 말인데. 책이 있고 벗이 있고 달이 있고 술이 있고. 미인이 있다면하고 예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마누라한테서 쫓겨나요. 나 원 참, 세상 잘못 만나서.
동양에서 최대의 찬사, 아시죠. "그는 다만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바라 보고 살다가 죽었다"내지는 "그는 자연의 경지에 다가갔다".불교에서도 '여여한 인생'이라고 하죠. 나도 그렇게 살았으면. 동양사상은 하늘과 자연, 인생이 맞물려 있는 것 같아요.
2.
저녁 9시 강동구 길동 청산학원 앞에서 쐬주 한 잔 걸치고 저녁 11시쯤 출발한다고 미리 들었지만 이번주 월,화,수,목,금요일 연장으로 5일 내리 술을 마셨더니 속도 이제 한계가 왔는지 '싸하게' 쓰려와서 이날은 '단말마의 고통'이 아니라 '단말마의 결단'을 내려 저녁 11시에 청산학원앞에 도착했다. 그 나이에 일주일내내 술 마시고 이헌태 체력 좋네. 제가 산에 다니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몸은 건강한 것 같아요. 또 까불다가 병 생길라. 이헌태도 술 거부할 때가 다 있구만. 박수. 짝짝짝. 강철같은 의지가 아니고 저도 좀 버텨서 살아 볼려고. 대단한 의미는 부여하지 마십시오.
황당하면서도 으쓱한 얘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작년 말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대구에 혼자 계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자주 하게 되었고 연초부터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전화를 하거든요.
퇴근길에 마누라한테 전화해서 '집에 일찍 가니 저녁 식사 준비하라"고 흔히 말하잖아요. 똑같이 엄마한테 전화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너무, 너무 쉽더라구요. 전화비도 들면 몇 푼 들겠어요.
제가 엄마에게 매일 전화를 하다보니 어느 순간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 아세요. 주변에서 갑자가 저보고 '효자'라고 난리에요. 얼마전 엄마 팔순에 가니 일가 친척들이 '대견스럽다'고 칭찬하시더라구요. 지인들도 대화가운데 이런 얘기가 나오면 "야, 보통 사람 그렇게 하기 어렵다"며 모두들 감동 그 자체의 표정이에요. 마치 교과서에나 나옴직한 효자인줄 알더라구요.
매일 매일 전화하다보니 엄마도 매일 기다리더라구요. 처음에는 "전화비 든다", "나는 괜찮으니 매일 하지 마라"등등 이라고 말씀을 하시다가 나중에는 "기다렸다" "니, "전화오니 기분좋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저도 솔직히 기분 좋죠. 엄마가 좋아하시니.
얼마전에 가슴 뭉클한 일이 있었어요. 밤늦은 시간에 대구 엄마집에 전화를 거니 전화를 받지 않더라구요. '사고가 났나', '어디 가셨겠지'라며 혼자 이래저래 걱정을 했죠. 그런 일이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나중에 물어보니 엄마가 내가 전화해서 없으면 걱정할 까봐 며느리인 마누라에게 "놀러 가니 남편에게 전화하지 말라고 해라"라고 미리 일러 놓았더라구요. 그래서 엄마도 내 전화를 매일 기다리고, 또 좋아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앞으로 매일 매일 전화를 해야겠구나하는 다짐도 했구요.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하면요, 효자라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솔직히 말해 저는 효자축에도 들어가지 못하죠. 제 친구 한명은 서울을 살면서 결혼하고도 오랜 기간동안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주 말 대구의 부모님 집을 찾아 가더라구요. 와, 진짜 효자죠. 저는 그 친구하고 비교하면 비교 대상이 안되죠. 하늘과 땅의 차이.
"매일 매일 부모에게 전화걸기". 한번 도전해보세요. 진짜로 쉽더라구요. 발상의 전환만 하면 돈도 안들고 시간도 안드는 '저비용, 저노력 효자법' 이더라구요. 김영삼 전대통령이 거제에 계시는 아버지에게 매일 전화를 건다고 해서 효자라고 소문났잖아요. 막상 해보니 별거 아니더라구요. 제가 모르는 다른 다양한 방법으로 효도를 하고 계신 지는 모르겠으나 그 사실 하나만 가지고는 제가 볼 때 영 아니더라구요. 너무 쉬워요.
제 얘기를 듣는 분들의 열이면 열, 매일 전화하는 것도 큰 효도라고 말씀하시죠. 한번 도전해 보세요. 남의 말 좀 믿으세요. 나 원 참. 얼마나 쉬운지. 졸지에 효자가 되어버린 제가 효자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도 우습습니다만 효자가 아닌데 효자소리 듣는 저도 답답합니다. 속이 터집니다. 가령 자신이 받는 월급의 상당액을 부모님에게 드리고, 또 수시로 부모님을 찾아뵙고하면 효자소리 듣는 게 마땅하지만 매일 전화하는 그 자체로서는 효자가 아니라고 봅니다. 일년에 통화비가 얼마나 들겠습니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낳고 기르신 분은 아버지, 어머니 단 두 분. 친구처럼 많지도 않습니다. 돌아가신 뒤 후회하는 것 생각하면 껌값이죠. 적은 비용으로 효자소리 듣는 방법 가르쳐 드렸으니 한번 꼭 실천해보세요.
제가 전에 돈 안 들고 가정을 잘 이끌고 가는 방법을 소개해 주었잖아요. KBS '개그콘서트'보면서 일주일에 한번씩은 온 가족이 서로 껴앉고 깔깔대라고 했죠. 이헌태는 돈 안들고 생색내는 쪽에만 머리가 발달되었구만. 돈도 없고 꾀만 늘어서 그런가요. 하여튼 개판처럼 사는 것 보다는 낫잖아요.
또 제가 백두대간 종주가 얼마나 돈 안들고 건강 좋아지고 인생의 추억을 쌓는 비법중의 비법인지 가르쳐 드렸죠. 당장 왜 행동에 옮기지 않느냐며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시한번 간곡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꼭 해보세요. 만약 부모님에게 매일 전화하다가 고충이나 고통이 계시면 저한테 상담해주세요. 결론적으로 식은 죽 먹기고 손바닥 뒤집기고 두부를 칼로 자르는 것만큼 쉬운 것입니다. 돌아가시고 난 뒤 후회하면 뭐하겠습니까.
대화시간도 너무 너무 짧아요. 대화내용은 늘 똑같아요. 딱 하나만 소개하면. " 나) 오늘 별일 없나, 엄마) 별 일이 뭐가 있노. 나)저녁 뭐 먹었노, 엄마) 그냥 된장에 나물하고 밥 비벼묵었다. 나) 아지매들하고 화투쳐서 돈 땄나, 엄마) 3백원 땄다. 오늘 별 일 없으니 전화 끊어라. 집에 일찍 가거라. 나) 잘 자라, 엄마) 알았다. 자꾸 전화하지 마라." 뭐 대충 이런 식입니다. 싱겁기는.
보너스 하나. 제 경우, 퇴근길 마누라에게 하는 통화 내용. "오늘 별일 없나. 아들은 잘 있나, 오늘 반찬은 뭐 꼬." 경상도 사람들은 집에 가서 1) 아들은 (아들, 딸의 아들이 아니고 자식들의 의미, 내가 너무 친절하나) 2) 밥 먹자 3) 불끄고 자자. 이 세마디만 한다면서요. 또 어떤 아버지가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아들이 받았는데 아버지 왈 "난데, 엄마는"라고 말했고 아들이 "있는데요"라고 답하자 말자 '뚜뚜뚜'라는 전화 끊긴 소리가 나더래요. 진짜 용건만 물었거든요.
미국에서는 무식한 하층민의 대화 어휘를 보면 몇 마디로 만사 오케이라고 하네요. 인사에는 '왓쯔 업', '헤이 맨', 꺼져에는 '겟아웃', 겟이라는 동사를 진짜로 많이 사용한데요. 아무데나 갖다붙이는 거죠.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못 배운 분들이 '야 임마','너 죽어','미친 놈','개새끼', '염병할', '지랄하네'등 욕을 중심으로 어휘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고 하네요. 경상도 사람들을 무뚝뚝한 사나이가 아니라 무식한 하층민으로 임명합니다. 앞의 사례하고 질이 다르다구요. 알겠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남자들도 유머있는 분들이 인기가 짱이고 무뚜뚝한 분들은 여자들이 싫어한다고 하네요. 참조하세요.아니먼 그만이고.
3.
청산학원 앞에 저녁 10시반쯤 도착해서 보니 일부는 길 건너편 감자탕 집에서 저녁식사 겸 반주를 들고 있었고 일부는 도로옆 보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와, 오늘 참가자는 총 22명,
심상준 총무는 전주에서 합류한단다.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이래 최대규모다. 아마 우리 산행팀의 명성이 퍼지고 있고 특히 이번 산행 코스가 평이하다고 고지되면서 왕창 몰린 듯하다. 신입회원들도 더러더로 눈에 띄었는데 아무런 연고도 없이 우리 산행팀의 사이트를 보고 신청해서 회원이 된 분이 오셨다. 사이트 상의 필명은 '산적'. 산적처럼 생기셨네. 반갑습니다.
전세버스는 저녁 11시 반에야 겨우 출발해서 고속도로를 통해 전주로 빠져 심 총무를 태우고 다시 목표 지점인 장수군 장계면으로 향했다.
이날 차 안에서는 유영래 선배가 또 한 말씀 하셨다. "대장으로서 대원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임무가 있고" 라면서 운을 뗀다. 농담도 잘하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대통령인가. 사회에 나온 뒤 지난 15년간 재산을 늘리지 않은 나 같은 무능력자의 재산을 크게 늘리게 할 능력은 없나. 그게 가장 중요한데
참고로 헌법 제69조. 대통령은 취임 선서문.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역대 대통령 자신들이야 모두들 열심히 일하셨겠지만 제가 볼 때는 참 참 참. 국부를 까먹고 개인 재산을 까먹게 한 대통령은 도로 물려도.
이어 유선배는 불교 선종에서 정진의 주제이며 반드시 정복해야 하는 '화두'의 의미를 설명한 뒤 우리의 화두는 '양반들, 백두대간에 오르다'라고 주장한다. 또 그 양반타령. 아휴 지겹다. 양반이 산에 오르는 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죠. 그런데 조선시대 때 벼슬아치나 양반들은 하인을 데리고 봇짐도 없이 여유롭게 산에 올라가서 시를 읊고 했더라구요. 말타고 올라갈 수 있을 때까지는 말타고 가고. 산 좋은 지는 알아 가지고.
유선배는 이어 "예전의 양반은 문, 사, 철은 기본이고 시, 서, 화도 필수. 가,무도 덧붙여지면 좋고" 라면서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인격도야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낭창하게 말씀하신다. 구구 절절 옳은 말씀. 문사철에 시서화, 가무까지 다 하면 요즘말로 학자와 예술가, 만능 엔터테이너를 모두 갖춘 거의 '신의 경지'의 사람이겠네.
유선배, 입만 떼면 양반, 양반 얘기니. 차라리 '양반 산악회'로 이름을 바꾸죠. 한국의 산악회 가운데 가장 웃기는 이름이 되겠지만. 하기야 탁무권 선배는 욕심을 비운 의미에서 이미 '헝그리 산악회'로 부르자고 제안을 한 적이 있죠. 헝가리입니까, 헝그리입니까만.
회원 여러분, 하나씩 별칭을 지어보세요. 제가 볼 때는 3주일에 한번씩 황금 같은 주말에 가족들 버리고 나오니 차라리 이 참에 '가정 파괴 산악회'라고 지읍시다. 가족끼리 함께 가지 안가면 대한민국의 모든 산악회는 다 '가정파괴 산악회'지 뭐. 너무 심했나. 국회가 가족 2인 이상 포함되지 않는 산악회는 즉각 해체하고 모든 산 입구에서 가족 2인 이상을 확인한 뒤 입산시켜야 한다는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미친 놈.
산에 가면 '가정 파괴'고 집에 가만 있으면 '가정 화목'인가. 주말 때 집에서 빈둥빈둥 놀아보았더니 가정 화목도 별로더라구요. 맞습니다, 맞고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등산하고 열심히 가족과 놀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가 정답입니다. 등산이 몸 특정 부위의 강화에 최고인 걸 아시죠. 저하고 관계 없지만 어떤 분은 산에 갔다 오니 마누라가 너무 너무 좋아한다면서 걸핏하면 "언제 산에 가느냐"고 치근댄다고 하네요. 이것은 '가정 파괴'가 아니라 '부부 화목'이네.
양평에서 카폐를 하시는 김사장 누님과 고경훈후배가 27일 한꺼번에 생일을 맞아 차안에서 축하연이 열렸다. 참 별난 일이네. 유 대장께서 버스차 뒤에서 술 마시는 대해 늘 마뜩찮은 표정을 짓기래 제가 목소리를 높였죠. "형님, 오늘은 술자리가 아니고 생일 축하연입니다"라고. 차원이 다르다고 누누이 강조해서인지 유대장이 그냥 모른 척하고 슬쩍 넘어가는 분위기다. 유선배, 술도 못하는 사람은 다 독한 사람들이에요. 독재자들의 절대다수가 금주가였다고 하네요. 히틀러는 고기는 물론 담배도 피우지 않았고 뭇솔리니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했으며 스탈린도 브랜디나 약간 입에 댈 정도였다고 하네요.
양평 누님이 집에서 직접 만든 두부김치 맛이 일품이었다. 누님의 요리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에요. 진짜예요. '명불허전'. 전해 내려온 그 이름 헛되지 않고 제 값을 하는구나. 너무 아부했나. (이헌태도 '명불허전', 이빨이 세다고 하더니 만나보니 그 명성 그대로더라) 요리 솜씨가 기네스 북에 오를 만하니까 일방적으로 '한국 제1의 두부김치명장'에 임명하겠습니다. 니, 멋대로. '멋대로 맛대로.' 비슷한 말이네. 멋대로와 맛대로가 사촌간이었구나. 말도 되네. 질문 있습니다. 맛과 멋, 그리고 맛대로는 좋은 말인데. 유독 멋대로는 별로죠. 다만 제멋대로는 자유분방한 인상을 풍기고. 모르겠다.
양평 누님, 맛있게 먹어주니 고맙죠. 그리고 제가 또 협박했죠. "다음부터 꼭 나오시라고. 안 나오시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누님 때문이 아니라 김치 때문에." 내가 너무 솔직했고 , 내가 너무 야박했나. 낙엽만 굴러가도 깔깔 웃음이 터져 나오는 여고생들처럼 이날도 차 뒤에서 사나이들이 조잘조잘. 대장부들이 쪽 팔리게. 모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양평 누님은 오가피주도 만들어 오셨다고 한다. 유대장께서 산정상에서 생일 축하를 할 때 마시자면서 엄한 통제령을 내렸다고 하네요. "누님, 감사합니다. 어린 백성을 이렇게 거두시고". 나를 포함해서 백두대간 회원들이 많지만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됩시다. 같은 인간들이라도 어떻게 저렇게 다를 가. 이헌태, 니나 잘해. 저도 마찬가지죠. 꼬리를 낮추며 네 네. 양평 누님 제가 아부한 이유 아시죠. 다음부터 본인 사망이외에는 무조건 빠지지 마시고 맛있는 거 많이 많이 해오세요. 지난 번에 김밥도 맛이 죽였는데.
사실 맛있는 식당에 가면 "저 분이 애국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인간생활에 있어 의식주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것은 인간이 살아있는 한 만고의 진리일 것입니다. 이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을 만든 사람은 '행복 제조기'가 아닙니까. 너무 아부했나. 거리를 청소해주시는 청소부들은 뭐냐. 저는 그분들도 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 거리가 더럽고 집안 쓰레기가 길거리에 방치되어 보세요.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해. 아마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따지니 많은 사람들이 애국자네. 그렇죠. 이헌태, 니 생각이 건전하고 밝다. 제가 언제는 뭐 틀린 얘기했습니까. 쐬주가 아니라 인심 한 번 쏜다. 이헌태, 니도 애국자다. 애국자는 애국자인데 사랑 애(愛)가 아니고 슬플 애(哀). 나라를 슬프게 하는 놈.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니에요. 저도 대구집에 가면 귀한 자식이고 고양시 화정집에 가면 귀한 아버지이고 술집에 가면 귀한 손님인데.
시대가 바뀌어. 너무 너무 바뀌어. 상전벽해. 맛이 좋은 식당 차리면 금방 부자가 되더라구요. 여러분 요즘 세상에 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아시죠. 권력자보다 더 나은 대접 받죠. 좋은 집에 살고 외국여행 자주하고 자녀들 해외유학 보내고. 저희 동네 모 칼국수집이 손님들로 터져나가더니 결국 빌딩 올렸다고 하네요. 서울 시내 모 김치찌개 집도 마찬가지. 형제들끼리 빌딩을 한 채씩 갖고 있다네요. 대구의 현풍 할매 설렁탕 집도 갑부가 되었죠.
이들 대다수는 50년 전만 해도 시장 모퉁이, 허름한 가게에서 힘들고 고생스럽게 장사를 했을텐데. 맛있는 곳 찾아 다니면서 먹는 '식도락'의 세월을 맞아서 일확천금. 고생도 했겠지만 운도 좋구만. 할 게 없었는지 한 우물만 판 결과가 아니겠어요.
우리 엄마도 진짜 요리 잘 하시거든요. 기자시절동안 전국에 걸쳐 맛있는 요리집에 다 가보았는데 저희 엄마도 최고에 속할걸요. 엄마가 30년만 더 젊기만 했어도 엄마를 앞세워 식당을 차렸을 것이고 그럼 큰 돈 만졌을 거예요. 오마니, 왜 늙어셨어요. 원망스럽습니다. 미친 놈, 어머니 오래 오래 더 사시라는 뜻에서 그런 말해야지 돈 벌려고 그런 말 하냐.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돈에 미쳐서. 식당 안 차려도 좋으니 오래 오래 사세요.
이조시대 때만 해도 식당하면 기생집이나 주막이지 뭐. 인간 취급 받았겠어요. 지금이야 식당 재벌도 나타나고. 세계적인 프로골프 박지은도 아버지가 강남에서 제일 잘 나가는 갈비집한다는데. 하여튼 세월도 잘 만나야 해요. 요새 여성의 경우 패션 디자이너, 의사, 국악인 및 예술인의 직업을 가지면 '전문직 여성' 이라며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남자들이 서로 결혼하려고 난리죠. 그런데 술집에 다니는 여자들을 왜 '직업 여성'이라고 해요. 직업을 가지면 좋은데. 그게 아니라구요. 네, 그럼 뜻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겠구만.
어쨌든 전문직 여성 여러분. 죄송한 얘기입니다만, 백년 전만해도 하나같이 천시받고 멸시받았죠. 궁녀, 기녀, 의녀, 사당패등등. 백년 사이에 어떻게 이렇게 뒤집어질 수가. 이헌태, 왜 부럽냐. 예전 족보는 들추어내고 지랄이야. 제 얘기는 예전이 잘 못 되었다는 애기죠. 휴, 살았다.
과거에 어두컴컴한 시장 한켠에서 식당해서 이제 큰 돈 번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소 팔고 땅 팔고 대학 보낸 사람들의 자식들은 "고달픈 샐러리맨 생활을 언제 끝내냐" 하며 한숨을 지으며 겨우 겨우 먹고 사는데. 세상이 이래도 됩니까. 너무 억울하잖아요. 시대를 앞서 읽어 가야한다고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공부해서 잘 살고, 잘 될 것 같으면. 머리에 잡동사니만 늘어날 수도 있어요. 세상의 논리와 동떨어져 있을 수도 있고. 중국 위진남북조시대때 남조의 양나라 마지막 황제인 원제는 14만권의 책을 모으고 수백권의 저서를 남기는 '책벌레', '학문벌레' 였지만 결국 왕조가 무너지면서 "이 책들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던가"라며 탄식을 했죠. 공부는 돈을 벌고 권력을 누리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인격도야를 위한 방편이 되어야한다고요. 그게 말처럼 쉽습니까. 그래도 땅 팔고 땀 흘렸으면 쬐금은 잘 되어야지. 나도 모르겠다. 땅과 땀이 비슷하네. 땅에서 땀을 흘려라는 말인가. 참 의미가 깊네.
책도 다 부질없는 것. 철학자 허버트 스펜스는 임종 직전 자신이 쓴 18권의 철학서를 무릎위에 놓고 그 책의 무게를 느끼며 손자가 더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책에서 얻는 지식보다는 가족이라는 따뜻한 사랑이 더 가슴에 와 닿는 다는 말씀. 공부가 돈과 권력, 가족보다 저 아래에 있으면 공부할 필요가 없구나. 총칼 앞에서도 꼼짝 못하고. 아무리 학식이 높아도 죽고 나면 모두 부질 없는 짓. 미당 서정주 시인도 사후 방송에 시신을 보여주더라구요.몰골이 너무 심하더라구요. 인생무상. 공부하지 맙시다. 공부해 봐도 헛 빵인데 뭘. 미친 놈. 돈도 없는 것들이 공부라도 해야지. 그런가.
4.
버스 안에서 탁무권선배가 지난번에 겨울용 모자를 주시더니 이번에는 여름용 등산모자를 일제히 나눠주었다. 고맙습니다. 역시 공짜는 좋아. 모양과 디자인도 좋더라구요. 군인모자스타일로 어떤 사람은 영화배우 같고, 어떤 사람은 5,16혁명을 일으킨 장성 같고, 어떤 사람은 빨치산 같고 어떤 사람은 패잔병 같고. 모자 하나가 어떻게 저렇게 다른 모습을 연상시키는지. 이헌태, 니는 두상과 인물이 별로라서 어떤 모자도 어울리지 않으니 그냥 벗고 다녀. 네, 알겠습니다.
소피를 누기위해 잠시 들렀던 중부고속도로 죽암 휴게소의 화장실에는 앉으면 온돌방처럼 따뜻한 좌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아니, 우리 집에도 설치되어 있지 않는 고급시설이 대중 화장실에 있다니. 우리나라가 화장실 문화를 고급화시키더니 이제 끝장을 낼려고 하네. 금 칠만 안 했을 뿐. 좋긴 좋더라구요. '불가마좌변기'라고 이름이 붙였더라구요.
근래 불자가 히트치고 있네. 지하철 주간지에 "불륜시장 불황이 없다"는 제목이 적혀있더라구요. 경기불황인데도 불륜시장은 활황이다는 뜻이겠죠. '불황은 불륜시장의 호황'을 줄인 말인가. 불자에는 불교도 있고 제가 좋아하는 불낙전골도 있고. 불교가 번성하고 불낙전골이 히트치면 그것도 불황인가. 그래서 그런가 베트남출신 틱낫한 스님이 내한하자 큰 반향을 일으켰죠. 말장난하지 말라고요. 죄송합니다. '아닐 불'이 원래 좋은 뜻이 아닌데 불자가 붙은 좋은 말들이 많아서 그냥. 용서해주세요. 비도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생명수잖아요. 너무 좋죠. 그런데 한문으로는 아닐 비. 불도 좋고 비도 좋은데 왜 한문으로는 모두 아니올시다인가. 역시 극과 극은 통해
5.
새벽 4시반쯤 육십령 아래 무령고개 무인간이휴게소에 도착해서 차에서 눈을 잠깐 붙인 뒤 새벽 5시반에 대장정을 시작했다. 이미 날이 훤히 밝아 있었다. 랜턴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전날 비가 온 뒤 개여 청명한 날씨였고 기온마저 포근해서 등산하기에는 만점, 퍼펙트였다. 나는 누가 준비해온 포장 비빔밥이 등산하고 나면 버릴 것 같아 비빔밥 세개를 얼른 비벼 모두에게 나눠주면서 쬐금씩 배를 채우게했다. 음식 버리면 안되죠. 농부들이 땀흘리며 열심히 농사지었는데. 심상준 선배가 맛있다며 잘 먹는다.
버스에서 내린 도로가 벌써 고도가 높은 탓에 가벼운 마음으로 대략 20분쯤 올라가니 옛 석축이 쌓인 너들지대를 지나자마자 백두대간 마루금 위에 놓여있는 영취산 (1075미터)에 다다랐다. 먹고 싶은 달걀 노른자와 진배없는 해가 동쪽 저편에서 빛을 발하면서 떠 있었다. 일행에 따르면 조금 전까지는 화투의 팔광처럼 선홍색의 해였다고 한다. 따식, 그 사이를 못 참고 변신하나.
자 출발. 쾌청하고 선선한 날씨다. 상쾌한 기분이다. 사방의 산들이 우람한 형체를 드러내고 있고 골 골에 끼여있는 민가는 자욱한 안개 속에 꿈꾸듯이 잠들어있다. 동이 튼 새벽녘의 아름다운 정경이다.
백두대간 행군을 시작했다. 굴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군데군데 진달래가 보라빛을 뿜어내며 눈을 즐겁게 만들고 있었다. 4월의 산하는 역시 진달래가 대표선수야. 늘 봐도 파릇파릇한 산죽도 산길을 따라 자주 보인다. 진달래 꽃을 한 움큼 입에 넣고 씹으니 그 맛과 입안에 퍼지는 향기가 너무 좋다. 걸어가는 산길에는 고사리, 취나물, 쑥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다들 얼마나 앙증맞은 지. 무색의 고사리는 뻗은 줄기위에 손을 뭉친 모습이다. 그래서 어린이손을 고사리손이라고 했구나. 절대로 어른 손은 아닙니다. 식물가운데 가장 고기맛에 가깝다고 하네요. 지금 고사리는 제철 직전이라고 하네요. 신문기자 시절에 어린이기사를 쓸 때는 늘 고사리손이라는 표현을 넣거든요. 약방의 감초처럼. 그런데 오래 전에 '모 여대생 떡 팔아 불우이웃 도와'라는 기사가 나가서 큰 일 난 적이 있대요. 떡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하네요. 저는 순진해서 왜 큰 일 났는 지 저도 잘 몰라요.
취나물도 아직 덜 자랐지만 입에 넣어보니 그렇게 향기가 진할 수가 없다. 공복상태의 몸 구석구석까지 그 맛과 향기가 쫙 퍼지는 것 같아요. 아아, 그래서 자연식품이 좋은가. 몸에 느낌이 와요. "된장하고 밥 주세요". 없어, 정신 나갔구만. 취나물도 근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다고 하니 기가 차지만 그 맛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죠. 임진왜란때 조선사람들이 먹을 것도 준비안했는데도 높은 산으로 피난만 가면 내려올 생각을 않아 왜놈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하네요. 된장만 가져가면 먹을 게 지천에 깔려 있으니까. 믿거나 말거나.
영취산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 곳에 산사태때문인 것 같은데 대간길이 아슬아슬하게 붙어있었다. 곧 없어지겠구나. 대간 산행에 나선 지 처음이었다. 그 길이 사라지면 조금 더 올라간 곳에 길이 생기겠지만 그래도 참 아쉬웠다. 인간들이 자꾸 산을 파괴하니 이런 일들이.
나는 지난 번부터 대간산행을 하면서 나의 엄마 고향인 경북 봉화출신인 손석규선배 뒤를 졸졸 따라 다닌다. 자연에 대해서는 '만물박사'니까. 오가피술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설명이 이어진다. "오가피라는 약재는 몸에 좋지만 혼자만으로는 큰 약효가 없다. 인삼은 예외로 단독으로도 약효가 있다. 오가피는 근골력에 좋은 약재로 다른 한방과 함께 작용해야 효과를 본다".
김영삼전대통령이 집권시절 "독불장군은 없다"더니 한약재가 바로 '종합 예술'이었구만. 깊은 교훈을 주는구만. 인간 여러분, 아셨죠. 혼자 잘난 채 하지 말고, 혼자 잘 살려고 발버둥치지 마세요. 모두들 다 함께 잘 살고 즐겁게 살아야죠. 인삼은 혼자 잘 나간다구요. 알아서 사세요. 내가 볼 때 당신이 고따위 말씀을 하는 꼬라지를 보니 인삼은 아닌 것 같은데. 인삼흉내 내다가 개망신 당하지.
6.
새벽 6시 30분.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가다보니 해는 중천에 떴는데 노란빛깔이 어느새 흰빛깔로 바뀌더니 너무너무 눈부시게 광채를 내는 바람에 그냥 쳐다볼 수가 없었다. 너무 너무 강렬해서 눈을 찡그려도 볼 수 없었다. 보는 것을 포기했다. 만물생명의 근원인 태양을 어떻게 감히 쳐다볼 수 있겠나. 저녁의 석양때는 잘 보이던데. 태양을 신으로 본다면 신도 잘 보일 때가 있고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지. 그래요. 나쁜 짓하면 겁나고 착한 일하면 칭찬할 것같고 그냥 그냥 살면 잘 보이지도 않고 있는 것도 모르고 대충 살지요. 말 되네.
대간길은 항상 숲과 억새,초지의 되풀이 반복이다. 사위가 다 훤하게 보이는 대간 길에 나오니 탁무권 선배 왈, "뒤 돌아보니 지나온 길이 더 멋지다". 요즘 산에 너무 빠졌는 지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탄성이다. 질문. 그럼 "지나온 인생이 앞으로 올 인생보다 더 아름답다"는 뜻인데. 어떤 사람은 그럴 거이고 어떤 사람은 아닐 것이다. 저는 지나온 인생도 아름답고 앞으로 올 인생도 아름다울 것이라고 기대하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헌태식 분류법. 1) 지나온 인생도 개판이고 앞으로 올 인생도 개판일 것 같다 2) 지나온 인생은 개판이지만 앞으로 올 인생은 멋질 것 같다 3) 지나온 인생은 멋졌지만 앞으로 올 인생은 개판일 것 같다 4) 지나온 인생은 멋졌고 앞으로 올 인생도 멋질 것 같다. 5) 나는 인생이 개판이든 멋지든 관계없이 산다. 잘 났어.
이번 대간 길에는 온통 참나무 숲이다. 참나무가운데서도 굴참나무. 굴참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은 귀신처럼 머리를 풀고 있는 것 같았다. 굴참나무는 재미난 나무라고 하네요. 손석규선배에 따르면 굴참나무의 도토리로 만든 도토리묵이 가장 맛있단다. 대중가요에 자주 등장하는 가랑잎이 바로 굴참나무의 잎이라고 하네요. 대간 길에 수북히 쌓여 퇴적된 게 바로 어른 손바닥 두배 크기의 가랑잎이죠.
사람가운데 진실되고 멋진 사람을 '참인간'내지 '참사람'이라고 하잖아요. 이헌태 같은 사람 말이에요. 아니먼 그만이고. 그럼 나무가운데 진짜나무가 '참나무'인가. "하무 하무'. 기름가운데 진짜기름은 '참기름'이고. "하무 하무". 혹시 서양에서는 올리브기름이 참기름이 아닐까. 새가운데 진짜새는 '참새'고. "하무 하무". 참깨, 참꽃. 참외. 그만해라. 밤 새겠다. 모두 다들 진짜선수로 자격이 인정됩니다. 이슬가운데 진짜이슬은 '참이슬'이고. 그건 소주 이름이죠. 소주가운데 진짜소주는 '참소주'고. 그것은 아닌 것 같은데. 전교조의 '참교육'도 있더라구요. 개가운데 진짜개는 '참견'이고 회가운데 진짜회는 '참회'인가. "참회 한 접시 주세요". 한접시씩 반성하는 것은 좋은데 참회가 회는 아니지. 다금바리나 도다리회가 대표회선수이지. 연극가운데 진짜연극이 참극. 무시무시해. 목숨(수)가운데 진짜 목숨이 참수. 이것도 무섭네.나 원 참참. 말장난하지 마라.
7시 20분부터 능선 길에는 풍상을 겪은 세월을 느끼게 해주는 암릉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방에 비친 광경이 너무 황홀하다. 나아가는 대간길을 기준으로 왼쪽 장수군 장계면에는 덕산저수지가, 오른쪽 함양군 서상면에는 넓은 논밭과 마을이 여전히 신비하게 쫙 깔린 안개을 감싸 안은 채 평화롭고 정겹게 비친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태평연월'. 마을로 내려가서 "태평연월이시죠"라고 하면 "미친 놈"이라면서 맞아 죽을 걸. 지금 농촌이 어떤 지경까지 간 줄 아느냐. "너희가 개 맛을 아느냐"가 아니고 "너희가 농촌이 어떻게 되었는 지를 아느냐.". 알아도 속수무책이니.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이헌태의 농촌살리기 주장. 하루빨리 지방분권화하고 농촌을 도시인의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허정균선배도 주위를 둘러보며 소녀들처럼 연씬 감탄한다. "이제 산들이 초록빛깔의 옷으로 갈아있었구만"이라고 한마디 던진다. 허선배, 시씁니까. 산들이 겨울 옷을 벗은 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봄 옷도 벗고 여름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산속에 걷고 있으면 풀이나 나무의 순에서 겨우 연초록 빛깔을 볼 수 있을 뿐 아직도 갈색의 나무와 흙으로 온통 채색되어 있지만 백두대간 능선에서 멀리 숲을 쳐다보면 푸른색이 완연했다. 초록의 신록이 싱그러운 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1961년 4월 12일. 세계 최초의 우주선 보스토크 1호선을 타고 지구 한 바퀴를 1시간 48분만에 돈 소련우주비행사 가가린은 "하늘은 어둡고 지구는 푸르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숲 때문에 지구가 푸르겠지. 우주에서 보면 지구가 무슨 색깔일 까 궁금해 하셨죠. 지구는 푸른 모습이 정답입니다. 잘 아셨죠. 지구는 푸르고 숲도 푸른 게 본래 모습입니다. 또 하늘이 검다고 하네. '하늘천 검을현'이 왜 나왔는지 확실히 아시겠죠. 옛날 중국, 한자 만든 사람은 지구밖 외계인이었나. 어떻게 그렇게 잘 아나. 신기하지. 지구의 인류들이 우주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하더니 정말 맞나. 아닙니다, 아니고요. 얼마전 복제인간 만든다고 온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모 단체가 인류의 조상이 외계인이라고 주장한다면서요.
아름다운 한국의 사계절. 신의 축복인가. 나는 전생에 어떤 착한 일을 했길래 사하라사막이 아니라 시베리아 툰드라지역이 아니라 이 대한민국에 태어났든가. 대게는 부모님들 불장난으로 태어났다구요. 너무 심하시네. 다들 고귀한 생명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아시죠.
제가 돈도 없고 벼슬도 없다고 너무 무시하지 마세요. 앞에서 지적했지만 저도 술집에 가면 귀한 손님이고요. 잉. 돈 벌게 해주는데 술집에 귀한 손님 아닌 사람이 어디 있어. 미친 놈. 개그콘스트의 히트어, "나가있어"
대간산행을 하면서 우주속에서 지구를 바라본 가가란의 감회를 생각했고 더 나아가 하늘과 생명에 대해 한번 더 꼴똘하게 생각했다. 드디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경천동지할 대사상을 발견했다. 일명 '이헌태의 하늘아래 사상'
1) 하늘아래 새로운 게 없다 2) 하늘아래 같은 게 없다 3) 하늘아래 변하지 않는 게 없다 4)하늘아래 귀하지 않은 게 없다 5) 하늘아래 연결되지 않는 게 없다. 다 들어본 얘기라고요. 맞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은 어느 책에도 없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만약 있다면 신고바랍니다. 포상금 막걸리 한잔과 고추장찍은 마른 멸치.
이헌태, 너무 대단하다. 니는 사이비교주로 클 조건이 충분하다. 저는 이것이 21세기 현대에 꼭 필요한 '생명사상'을 구성하는 철학적 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심할 때 더 연구해서 학위 논문을 써서 발표하겠습니다. 대충 간단하게 설명하면.
생명 만물은 모두 귀하죠. 인간은 말할 것도 없이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개미 한마리라도. 그러니 함부로 꺽거나 죽이지 마세요. 인간은 나무가 배출한 산소 덕분에 살죠. 모든 생명은 다 연결되어있죠. 인간이든 나무든 태어나서 자라고 죽죠. 늘 변하죠. 천년이 지난 돌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풍상으로 인해 깍이죠. 이 지구상의 풀 가운데 같은 풀 보았습니까. 하늘아래 같은 게 없다는 것은 모두 다 귀한 생명이라는 뜻이죠. 하늘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나온 만물은 없다는 거죠. 부모에서 태어났거나 씨앗이 퍼져 탄생되었다는 거죠. 아니면 과거의 인연으로부터. 이 다섯가지 '생명사상' 만 투철하게 인식하고 실천하면 지구는 우주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행성이 될 것입니다. 이헌태, 니 스케일 크네. 우주로까지 나갔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멋진 사상이다. 내 역량을 너무 벗어났나. 제가 제시한 다섯가지 '생명사상'은 제가 독창적으로 창안한 얘기가 아니고요 종교,명상, 철학, 환경관련 책을 읽다 보니 나름대로 정리가 되더라구요. 정리는 진짜 잘하죠. 기자출신이라서 핵심 뽑고 정리하는데는 귀신이 다 되었어요.
허정균선배의 말을 갖고 너무 장황하게 설을 풀었나. 대간을 가면서 손석규 선배가 "저렇게 아름답게 확 피어난 진달래를 보면 꽃들도 자기 자태를 뽐내기 위해 일년을 기다리는 것 같애"라고 한마디 거든다. 계절마다 수 없는 꽃들이 피고 지지만 그 꽃 당사자로 봐서는 일년에 단 한번 그 때 절정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것도 '대단한 발견.' 산에 자주 가고 생명의 숨결을 느끼면 누구도 이렇게 순수한 사람으로 바뀌죠. 한번 해보세요.
40대 후반을 향해가는 선배가 꽃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소녀 같은 낭만적인 생각을. '대단한 발견'이 아니라 '대단한 중년'이야. 썰렁한 유머하나. 20대는 화장하고 30대는 치장하고 40대는 분장하고 50대는 변장하고 60대는 환장하고 70,80대는 끝장이라네요. 그러나 분장도 화장도 필요없고 갓난얘기처럼 보송보송한 맨 얼굴로 사셔도 되겠네.
7.
일행은 말이 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굴러 넘어졌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말궁궁재(이름의 내력이 참 시시하구만)를 지나 오전 8시쯤 암릉이 이어지는 곳인 '977봉'에 자리를 잡고 아침 식사를 했다. 깡마른 허정균선배가 두 분의 생일축하를 위해 러시아민요 '스텐카라진'을 특유의 처연한 목소리로 불렀다. 족발도 나왔고 김밥도 나왔다. 그 유명한 오가피술도 나왔다. 단연 압권은 냉동실에서 얼리다시피 차게 해 온 생맥주. 집 근처 생맥주 집에 가면 몇천원만 주면 페트병을 가득 채워준단다. 마셔보니 속까지 시원했다. 심상준 선배가 이틀 전에 "이제는 냉동실에 맥주를 얼릴 때'라고 사이트에 올려 간곡히 부탁했건만. 나부터 다들 입만 가지고 다니는 구만. 다음에 나도 꼭 준비해와야지.
너무 오래 휴식을 취했다. 놀러왔나, 대간산행 하러왔나. 오전 8시 43분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시 능선 길에 나섰다. 계속 굴참나무 숲이었다. 이상한 게 굴참나무는 5월이 다가왔는데도 삭풍에 다 날라가고 몇몇 누런 가랑잎이 나무에 딱 붙어있었다. 아교풀로 붙혔나. 북풍한설이 지나가도 한참 지났는데.
더 웃기는 것은 같은 나무의 그 옆 가지에는 벌써 순이 돋고 있었다. 한 나무에 죽은 시체와 신생아가 같이 있네. 또 더, 더 웃기는 것은 그 바로 옆의 굴참나무는 아직도 새싹의 흔적도 없었다. 봄 채비가 멀었다. 이 무슨 조화인가. 손석규 선배에 따르면 아마 땅 내부와 일조량, 기온 등등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단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참 웃겨. 나중 산행 막판에 고도가 낮은 육십령쪽에 오니 굴참나무의 싹이 커져 초록빛 자그마한 잎을 달고 있었다.
무슨 새인지 모르나 계속 이어지는 새소리가 맑다. 봄철은 새소리, 여름철은 매미소리, 가을철은 벌레소리, 겨울철은 눈내리는 소리라고 했는데. 새소리가 내 마음을 뒤흔든다.
능선을 계속 타다보니 크고 작은 낙엽송이 군락을 이루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낙엽송을 보니 영락없이 파리떼가 붙어있는 모습이었다. 몇 년 만에 쑥쑥 자라는 속성 소나무라서 목재로서는 가치가 별로 없다고 하네요. 가을만 되면 가장 먼저 잎이 떨어져 낙엽송이라고 하네요. 낙엽송이 되지 맙시다. 허위대가 멀쩡하지만 내실이 없는 사람들을 낙엽송이라고 하면 되겠네. 이에 비해 참나무는 자라는데 시간이 걸리고 도토리 열매도 주니까 고마운 나무네. 참나무라고 부를 만하다.
자연의 미에 흠뻑 넋을 잃은 채 부지런히 걷다 보니 오전 9시 10분에는 북바위에 다다랐다. 이름의 유래는 백제와 신라가 서로 이길 때마다 북을 쳐서 생겼다고 하네요. 북치는 것은 좋은데 그 사이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겠나.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느낀 점 하나. 지명의 대다수가 전쟁과 관련되었거나 아니면 불교와 관계되었거나. 과거에는 전쟁과 불교가 생활 깊숙히 파고 들어갔구만. 합치니 '호국불교'네.
북바위 왼쪽으로는 깍아 지른 절벽이다. 떨어지면 즉사겠지. 아슬아슬한 바위 위에 서서 주변 경치를 구경했다. 선선한 계곡 바람까지 불어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봄바람은 술과 같고 여름바람은 차와 같으며 가을바람은 연기와 같고 겨울바람은 생강처럼 맵다고 했다. 영락없는 시원한 냉 녹차 바람이다. 설악산의 웅장한 산형태를 방불케 하는 멋진 산들이 다 보였다. 덕산 저수지 쪽으로 보니 참 이상한 형상이네. 대간 길에서 수없이 많은 지산들이 뻗어져 내려오면서 용꼬리가 감고 있는 듯한 곳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자연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는 마을이었다. 자연스럽다는 말이 자연에서 나왔구나. 그마을은 저수지 바로 위에 놓여있었는데 인공적인 요소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평화로움이 곳곳에 배여 있었다.
예전 조상들은 정자를 지어도 자연과 조화를 어울리게 지었다고 한다. 조상들의 건축적 안목이란 미국 하버드대 건축학과 교수보다 더 뛰어났구만. 그 분들이 건축학을 공부했나. 공부하기는 뭘 공부했어. 자연친화적 사고와 철학을 갖고 있으면 뛰어난 안목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지 뭐.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 마을이 바로 논개사당이 있는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이래요. 논개가 이곳 백두대간의 정기가 서린 곳에 태어났구나. "와 논개 논개 카는 (경상도 말씨) 이유를 이제사 알겠다"
산행에 다시 나서니 길가 섶에 청개구리가 꼼짝도 않고 앉아있다. 위장취업이 아니라 위장포복. 지난 산행에서는 도마뱀을 봤는데. 백두대간의 마루금에 웬 청개구리. 멧돼지들도 떼지어 다니는지 흙을 파놓은 흔적이 드문드문 보였다. 이현주후배에 따르면 엄나무를 캐다가 패였다고 하네요. 백두대간 코스 정도되면 야생동물이 바글바글 해야 하는데 여태까지 100킬로미터이상 산행하면서 에게게 겨우,청개구리, 도마뱀 한마리보고 감격하다니. 인간들이 얼마나 나쁘고 몹쓸 동물인지. 짐승가운데 인간들이 가장 무섭다고 하네요. 인간들도 독하니 자연 인간이 배설한 똥도 독하다고 하네요. 거름이 되려면 해독을 시켜야한다고 하네요. 그냥 밭에 뿌리면 식물들이 죽는다고 하네요.
대간길은 대신 나무와 꽃, 풀들이 산천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식물들이 새들이 날개치듯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모여 산다. 노랗고 희고 파란 빛깔, 그리고 보라빛, 자주빛 색깔을 띤 이름도 모르는 다양한 야생화들이 아름답다. 나중 김경순씨가 사이트에 야생화 사진을 찍어 올리고 필용담, 동의나무, 호제비,양지꽃이란 이름을 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진달래는 만개해서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가을에 녹두 크기의 빨간 열매가 맛있다는 버리동 나무. 붉은 자주색을 나타내는 두견화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손석규선배는 촌에서 자라고 한약재 장사를 해서인지 식물을 대단히 많이 알고 있다. 그래도 모르는 게 있는 가 보다. 싹을 틔운 꽃을 보고 "무슨 꽃이냐"고 물으니 "이런 꽃은 커 봐야한다"고 한다. '대단한 중년'이야. 세익스피어도 그런 말씀을 했더라구요. "어떤 일이 잘 된다고 해서 처음만 봐서는 안된다" 면서 끝까지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했거든요. 세익스피어는 화투판 고수같애요. '초반 끗발 개 끗발'이란 심오한 철학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고수들은 양의 동,서가 없죠.
황당한 얘기하나 해드릴까요. 영국의 간판스타는 물론 세계의 보배라고 해서 '세'자가 들어간 세익스피어는 '섹스 + 유토피아= 섹스피아(섹스낙원)'인가. 너무 했나. 죄송합니다. 대가리가 자꾸 그 쪽으로만 돌아가서. 그런데 인간을 섹스족이라고 하더라구요. 동물가운데 가장 관심이 크죠. '영웅호걸' , '경국지색','색즉시공' 이란 말이 나올 지경이니까. '색즉시공'은 섹스와 관계없다고요. 그럼 빼면 되지. 왜 성질을 부리시나요.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이란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고 말하고 실제로 몸바치고. 인류들이 돈을 모으고 권력을 갖기 위해 애쓰는 것도 오로지 그것을 위해서가 아닌가 할 정도로. 그것을 억제하고 처벌하는 법과 제도도 많고 무아지경으로 가는 테크닉 교재도 많고. 인간이 섹스족이라는 말이 너무 심했나. 아니먼 그만이고.
대간 능선은 이제 봄과 여름의 한 가운데 있었다. 중천에 떤 해로부터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쬐면서 무더운 느낌마저 들었다. 대간산행 시작이후 처음으로 여름용 반팔셔츠를 입어 그나마 더위를 덜 느낄 수 있었다.
허정균선배와 탁무권선배가 잠깐 뒤쳐졌다가 따라 붙여서 와서는 박새가 먼데서 두 사람앞 나뭇가지로 다가와 눈도 맞추고 영혼과의 대화도 했단다. 사진포즈를 짓길래 예술작품도 찍었고.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하시더니 이제 신선이 되셨나. '허신령, '탁신령'. 고승들이나 도인들에게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와 교류를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벌써 그 경지에.
이헌태가 좋은 표현 소개할께요. 누군가가 '산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별은 하늘의 문학이고 산은 대지의 문학'이라고 했다. 너무 멋지다. 산이 그런 존재였어요." 하무 하무." 보너스 하나. "꿈이 이뤄지느냐, 이뤄지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꿈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이헌태의 꿈은 오로지 백두대간 종주. 생애에 걸친 꿈은 더 나아가 전세계 하나도 빠짐없는 모든 국가 여행. 결국 "꿈을 현실로 만들자"
나중에 이 소식을 전하자 일행들은 원래 박새는 인간들이 나타나면 먹이를 줄까 봐 다가선다고 초치는 바람에 우습게 되었지만. 새들이 먹이 때문에 가까이 다가 올 수도 있지만 진짜로 두 분이 도를 깨우쳐 새들이 말동무를 위해 날아 왔는 지 어떻게 알아요. 두 분이 요즘 신선의 지경에 들어가고 있기도 하거든요. 도의 수준이 30에서 40, 50으로 자꾸 올라가나. 이헌태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제 입으로 어떻게 얘기해요. 대략 80 정도는 되지 않을까. 착각 속에 살아라. 착각은 자유. 착각은 공짜.
사실은 현대에 사는 사람은 옛날 기준으로 하면 다 도인이고 신선이죠. 도인과 신선의 대표적인 행동이 축지법이거든요. 지금은 비행기로 북경에서 서울까지 몇 시간이면 가죠. 이국만리 미국에 있는 사람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얘기를 주고 받죠. 따라서 현대인은 모두 신선이네. 과학기술의 발달로서도 신선이 되는구만. 옛날 신선이 타임 머신을 타고 이 시대에 와보면 깜짝 놀라겠죠. 보통사람들이 자기들 신선가운데서도 가장 도가 높은 신선이겠죠. "뼈빠지게 괜히 도닦았다"고 후회할 것입니다. 현대인은 과학기술 덕분에 쬐금만 노력해도 신선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것도 안하니. 나 원 참.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무지를 박살냈죠. 불결한 예 하나. 정액속의 정자는 1667년 현미경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원시시대에는 여성이 먹는 것이나 꿈을 꾼 것이 달이나 태양의 영향으로 아이가 탄생된다고 믿었어요. 서양철학의 대부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액이 태아에 정신과 영혼을 부여한다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중세에 들어와서는 아주 작은 아이가 정액 속에 있는데 이것이 여성의 태내에 들어간다고 믿었고요. 쬐금 더 낫구만. 2천년전으로 되돌아 가면 무식한 저도 인류최고의 박사노릇 할텐데.
8.
민령을 지나자 다시 완만하지만 오르막 능선이 나왔다. 굴참나무의 새순이 드디어 잎으로 변하고 있었으며 두견화도 무성했다. 버리동나무는 물론 찔레나무도 순을 보였고 제비꽃도 화사하게 피었다. 갖가지 꽃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자태를 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지대가 낮아졌고 따가운 일조량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송전 철탑을 지나고 뒤쳐진 6명은 오전 10시쯤 산 위 중턱에 이르러 지난번에 처음 선을 보였던 '빅 카드', 낮잠을 잤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푸른 하늘 그 자체였다. 해는 너무나 강렬한 빛을 내보내고 있어 맨 눈으로는 도저히 쳐다볼 수 가 없었다. 햇살이 따갑게 내려 쬐어 얼굴을 우산으로 차단했다.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왔다. 볏짚처럼 말라버린 낮은 키의 억새풀 군락 지여서 지나온 대간 길은 물론 아득하게 저 멀리 백운산과 장안산을 위시한 이 일대의 큰 산과 함양군 쪽으로 시원하게 뻗어있는 대전-충무고속도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최고급 호텔의 시설과 분위기, 전망보다 더 나았다. '특급 자연호텔' 이라고나 할까. 국내를 물론 전세계에 가장 좋은 호텔이 볓 다섯개 짜리죠. 아마 이날 낮잠을 잔 자연호텔은 별 10개짜리 호텔이 아닐까 싶네요.
밤잠이야 습관처럼 자야하지만 낮잠은 특히 꿀맛이다. 그것도 산중턱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대략 30분쯤 한숨 자고 나니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너무 혼곤한 단잠이었다. 지난 번처럼 코를 드르렁 드르렁하며 곯았나 모르겠다. 오전 10시 40분쯤 다시 길을 나섰다. 앞서간 팀이 어떻게 되었나. 기다리겠지 뭐.
터벅터벅 걷다 보니 오전 11시 4분쯤 깃대봉 (1014.8미터)에 도착했다. 이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인지 동서남북의 큰 산과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이정표에는 육십령까지는 2.5킬로미터가 남았다고 적혀있다. 한 여름의 따가운 햇살이 작열했다. 6명은 자그마한 크기의 정상에 둘러앉아 김밥과 오이를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앞선 팀이 우리가 낮잠을 자는 틈에 여기서 쉬고 또 출발했는지 보이질 않는다.
산불방치 차원에서 덕유산 국립공원 입산을 통제한 모양이다. 그 쪽을 포기하고 반대편인 이쪽으로 올라온 부부팀들이 몇 팀 있었다. 15분 가량 휴식을 취한 뒤 본격적인 하산길에 나섰다. 함양군쪽의 덕유산 산자락에 허옇게 살을 드러낸 채석장을 보니 너무 가슴 아팠다. 꼭 그렇게 파야 하나. 저것도 천박한 돈 때문이겠지. 위암에 걸린 사람이 위가 아파 위만 신경쓰듯이 경제병, 돈병에 걸린 현대인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돈만 찾는다고. 이 지독한 경제병, 돈병에 걸린 경제암 환자, 돈암 환자를 치료하는 의약기술과 약은 없나. 현대인은 전부 경제암, 돈암 환자들이구만. 큰일났구만. 인류가 생긴 이래 이렇게 전인류차원의 대규모로 병에 걸린 적은 없었는데. 더 큰 문제는 병에 걸린 것도 모르니까.
하산길에 봉우리를 하나 넘다 보니 샘터가 하나 나왔다. 안내판에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는 길손이시여' 라는 제목 아래 "우리는 한 모금의 약수물에서 구원함이 산임을 인식합니다. 우리는 한 모금의 약수물에서 여유로운 벗이 산임을 인식합니다"라고 적혀있다. 뜻은 알겠는데 무슨 말인지. 기자출신이라서 문맥이 안 맞으면 고쳐야 하는 버릇이 생겨서. 캬, 물맛은 좋다.
하산길은 완만해서 편했지만 팔부 능선 산허리를 따라서 돌아서 가다 보니 생각보다는 길게 느껴졌다. 하산 길에는 지대가 낮게 내려와서인지 나무와 풀도 푸르고 또 숲이나 산들이 모두 연초록빛과 진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초록의 향연'이었다. 참나무의 연초록 잎사귀도 제법 커졌고 사시사철 진초록인 소나무도 빽빽히 들어서 있기때문이다. 소나무에 마구마구 내뿜는 솔향이 너무 진하다. 솔향의 내음이 온몸을 휘감고 있으며 정신이 청명해 지는 것 같다. 얼마만에 맡는 자연의 향기인가. 산삼 한 뿌리를 먹은 것처럼 온몸에 생기가 돋는 듯하다.
산행이 시작된 무령고개에서 영취산, 이어지는 긴 능선에서는 나무의 싹과 풀들만 초록색을 띠었는데 이제는 산천이 모두 초록 물결이다. 푸르름이 가득하다. 푸릇 푸릇 초록색 옷을 갈아 입었구나. 여름이 왔구나. 식물들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계절. 유식하게 '성하의 계절'. 대간 길을 한참 내려가는데 개미들이 떼지어 분주하게 움직인다. 뭐 하느라고 바쁘나. 따식들. 대간길에 동물들이 사라져서 너거들을 봐도 그래도 반갑다. 행복하게 잘 살아라. 이헌태, 개미 봐도 감격하고 니도 참 많이 센티해졌구나. 그게 아니고요. 진짜 동물 구경하기 힘들어요.
참 이상한게 아홉번째 백두대간 산행을 하고 지금까지 100킬로미터 가량 걸어왔지만 우리의 국화 무궁화는 왜 안 보이는지. 너무 귀해서 따로 잘 보관하고 있다구요. 네. 그렇습니까. 누가 국화를 무궁화로 정했나. 단군 조상께서 제사를 지낼 때 무궁화가 있었다고 하지만. 이헌태 너무 따지지 마라. 알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래도 국화를 가까이서 자주 보았으면 해서요.
9.
정오를 간 지난, 낮 12시 23분. 최종 종착점인 육십령 고개에 내려왔다. 영호남을 잇는 국도 26호가 지나가고 있었다. 한쪽은 경남 함양군 서상면이고 한쪽은 전북 장수군 장계면이다. 육십령 고개 이름의 유래는 다양하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안의 감영과 장수 감영에서 각각 60리기 때문에, 또 60 고개를 넘어야 하기때문에, 또 산적이 많아서 60명의 사람을 모아서 넘어야 하기때문에. 아무려면 어때. 휴게실에 장수군 홍보입간판이 서있었다. 장수쪽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사과의 고장'이라고, 반대로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충절의 고장'이라고 써 있더라구요. 오는 사람은 사과를 사 먹으라는 말씀. 나가는 사람은 충절의 고향으로 기억해달라는 말씀. 쬐금 머리를 썼네요.
질문하나. 예전에는 사과하면 제 고향인 대구, 즉 능금하면 대구라고 했거든요. 대구아가씨들이 예쁘다고 했거든요. 능금아가씨 선발대회가 전국적 명성을 얻기도 했구요. 전국을 돌아다녀보니 충주에 가도 사과의 고장, 경기도 어느 고장을 가도 사과의 고장. 전국이 다 사과의 고장이더라구요. '사과 공화국'이구만. 세계화 시대에 사과가 수지가 맞나 모르겠네. 한국이 걸핏하면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나서 대량으로 죽는 '사고 공화국'인데 비슷하게 놀다 보니 '사과공화국'이 되었구만. 잘못과 실수를 많이 저지르면 사과를 많이 해야 되거든요. 사실 역대대통령이 너무 사과를 많이 해서 '사과 공화국'도 맞지 뭐. 잉, 다 연결되네.
육십령 고개의 휴게실 정자는 최고의 전망대였다. 장계 쪽으로 바라본 모습은 눈을 시리게 하는 초록빛의 물감을 뿌려놓은 한 폭의 수채화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들과 그 안에 폭 싸여있는 마을과 논과 들, 전진해야 할 덕유산의 측면능선까지. 계곡의 여름바람이 시원하게 치고 올라오면서 불어와 온몸이 푸른 기운으로 물들면서 너무 너무 기분이 좋더라구요. 그 바람 한번 맞아 보실래요. 서울에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도시의 답답하고 찌든 스트레스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가슴이 다 후련한 바람 말이에요. 이 느낌, 이 분위기 그대로 서울에서 팔면 벼락부자되는데. 그것은 도시로 못 옮겨간다고요. 자연도 장사할 게 있어야 한다고요. 이 정도는 야외로 나와서 구경해야 한다고요. 알겠습니다.
일행들은 정자에서 모여 조껍데기 막걸리 (이름도 더럽구만)에 깔깔대는 잡담을 안주 삼아 모처럼 느긋한 휴식을 취했다. 신선이 따로 있나요. 육십령 기념바위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나서 지난 번에 집단 목욕을 했던 장계계곡에 다시 내려가서 집단나체목욕을 했다. 이번에는 무려 15명의 싸나이들이 참여했다. 사진촬영을 누가 했나 모르겠네. 2주일 만에 다시 찾은 계곡 물은 찬 기운이 싹 가셔있었다. 계곡물이 아직도 다소 차가왔지만 몸을 담구고 있을 정도는 되었다. 계곡에서 나체로 목욕한다고 하니 어떤 분이 항의 하더라구요. 저희들이 목욕하는 계곡은 인적이 1000% 끊긴 곳에서 합니다. 예의와 상식이 있는 산행팀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서울로 향했다. 나는 상경하는 버스안에서 '락'이란 단어를 갖고 유선배에게 시비를 걸었다. 형님의 사이트 필명이 '무락'이다. "극락의 반대아니냐". "자연 지옥하고 같다"고 말했다. 유선배 왈, 무락은 무언 내지 묵언이 앞에 생략되었단다. 즉, 무언의 상태가 지락의 상태라는 것. 여러분 아시죠. 저는 대간 사이트에 '희희낙낙'이란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 저의 낙천적 성격이 잘 나타났다고 봐야죠. 유선배는 낙중에는 '일락'이 최고라고 하네요. 그 순간에 한 곳에 집중하는 즐거움. 지랄과 지락은 혹시 극과 극으로서 통하는 것은 아닐까.
반대말이 이상한 게 많더라. 아시죠 사랑의 반대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증오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하네요. 말장난인가.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그 말이 말이 되기나 되나요. 증오도 사랑의 한 표현이라고. 사람 다 죽여놓고. 아둔한 내 머리로서는 역시 말장난이네. 맞겠지 뭐.
버스가 논개사당아래 대곡호를 따라 달렸다. 대곡호는 눈개의 눈물이라고 하네요. 리비아대수로에서 터져나오는 물처럼 흘렸나. 얼마나 울었길래. 샘물처럼 퐁퐁 쏟아졌나. 하기야 100만톤 물 가운데 눈물 한방울만이라도 섞여 있으면 논개의 눈물로 인정해야하나. 누구 맘대로. 이헌태, 맘대로. 시골길 드라이브는 역시 좋구만. 2주 전에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활짝 피었더니 이제 칼라 빛은 다 사라지고 초록빛 한색 밖에 남지 않았다.
'화무십일홍' (꽃이 피면 열흘 이상 붉게 피는 꽃이 없다)이고 '권불십년'(권력도 10년이상 갈 수 없다) 이라더니. 근래는 정권말기 레이덕 빼면 '권불 3년'. 노무현 정권을 보면 '권불 1년'이 될까. 앞으로는 '권불 무년'으로 바꾸어야죠. 그래서 '봉사 5년'이 되어야죠. 전두환정권 시절의 허화평, 허삼수, 허문도씨로 일컬어지는 '쓰리허'는 어디 갔고 노태우정권 시절의 박철언씨는 어디 갔고 김영삼정권 시절의 김현철, 최형우, 서석재씨는 어디 갔고 김대중정권 시절의 권노갑, 한화갑은 어디 갔나. 노무현 정권은 출범한 지 얼마 되지도 안았는데 핵심측근인 안희정, 염동현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대통령만들기 일등공신들인데. 모대통령, 와 독하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인데.
10.
바로 고속도로에 버스를 올려 오후 5시 반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날에 도착해서 오후 7시쯤 집에 도착했다. 역대 대간산행가운데 가장 여유롭고 편한 산행이었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우리가 똥개인가. 똥개처럼 헉헉 대면서 백두대간을 종주할 수는 없잖수. '음미, 완상, 만끽, 예찬'하는 백두대간 종주가 되어야죠.
몇 해전에 지리산 세석산장에서 천왕봉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함께 등산하는 주인없는 개 한마리를 보았는데요. 글쎄, 그 개가 우리 일행을 따라 반대편인 대원사 방향으로 따라 내려 왔더라구요. 그 개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결코 낮은 산이 아닌데 이쪽 저쪽을 종횡무진하면서 쉬지도 않고 마냥 즐겁게 내달리더라구요. 도인이 아니고 도닦은 '도견'인가. 도사견은 도사 개입니까. 모르겠다. 이날 이후 산천을 즐기지 않고 마냥 앞만 보고 내달리듯이 걷는 사람을 보면 자꾸 그 생각이 나서. '똥개'. 이헌태, 말 조심하라구. 죄송합니다. 헉헉대지 않고 잘 달려가니, 그 만큼 건강하시다는 뜻이죠. 다른 뜻은 없습니다. 말은 잘 한다.
백두대간 아홉번째 산행의 화두. 이날의 화두는 역시 허정균선배와 탁무권선배, 두 분이 박새와 나눈 영혼의 대화. "두 형님들, 새들과 대화를 많이 하셨다는데 그 새하고 다음에 또 만나기로 했나요". 다음에 만나면 또 물어봐야지. "새들하고 대화 잘하고 계시냐"고. 이헌태의 나쁜 점이 뭔 줄 아세요. 약점 잡히면 항복할 때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 남북통일의 그 날까지가 아니라 "박새와 영혼의 대화는 무슨 대화. 그냥 해본 소리지 뭐"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그냥, 넘어가라구요. 알겠습니다. 농담입니다. 농담이고요. 새들과의 영혼의 대화, 좋습니다, 좋고요. 두 분은 영혼의 대화가 가능하리라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고요.
이헌태, 선배들 너무 갖고 놀리지 마라. 니 그러면 소외당하고 왕따당한다. 최근 현대인의 행동들이 모두 본질에서 벗어나 소외의 양태를 이루고 있더라구요. 고드스블름의 '니힐니즘과 문화'라는 책에 너무 적확한 사례들이 있어 한번 소개해봅니다. '현대의 삶'의 핵심을 콕콕 콕콕 콕콕 마구 콕콕 찔렀다고 봐요. 진심으로 음미할 대목입니다. 현대인은 어느 시대보다 더 순간적으로, 쾌락적으로 살고 과거와 미래로부터 자유롭다고 하네요.
"자기수양으로서의 노동관의 타락, 보여주기로서의 정치, 심미적 거리가 상실된 예술, 제의적 의미가 사라진 여가, 생활적응훈련으로 대신된 교육, 법원병원과 같은 사회기관이 의당져야할 아버지나 기족의 책임을 대신 떠맡는 것, 생식의 부담을 지지 않는 부부생활, 감정의 깊이 없는 인간관계, 청춘에 대한 열광적인 예찬과 노령과 성숙에 대한 경멸"
이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무아지경적인 자기도취가 실은 타인의존에 불과하며 현대의 나르시시즘이 타인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쳐보이는 자기도취라고 하네요. 구구절절이 맞습니다.
루소가 말한 '자연으로 돌아가자'가 아니고 '본질로 돌아가자'를 이헌태가 외치고 싶습니다. 이것도 이헌태의 어록에 들어가나요. 누가 먼저 말한 사람이 있으면 쪽팔리고. 본질에서 벗어난 사례하나 더. 산수공부보다는 경제교육을, 어학보다는 의사소통을, 생물학보다는 바람직한 식생활과 생명사상을. 본말이 전도된 전형적인 케이스죠.
보너스 하나. 루소가 당시 계몽사상가들이 인간의 이성과 문명을 예찬하며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설치고 있을 때 반기를 들었죠. 대단한 분입니다. '인간 불평등의 기원론'(1755년)이란 책, 원초적 자연상태의 인간은 구속도 없이 자유로운 존재였으나 공동생활을 하면서 불평등이 발생했다는 것, 따라서 문명인의 삶은 불행하기 때문에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죠. 인간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은 사치때문이 아니라 불평등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루소가 젖소인지 한우인지는 모르겠으나 시대를 250년 앞서갔구만.
보너스 둘. 현대의 큰 특징중의 하나. 이혼이나 핵가족, 가족간의 교류단절로 인해 가족공동체가 인류사상 가장 대규모로 파괴되면서도 인류사상 어느 시대보다 가족이 가장 중요해지고 가족에 매달리는 시기는 없었다. 아이러니컬 하구만. "가족으로 돌아가자. 기업들이 무한경쟁시대에서 거뜬히 살아남고 크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 지 아세요. "기본으로 돌아가라". 요즘 경영학의 최대화두죠.
자연으로 돌아가고 본질로 돌아가고 가족으로 돌아가고 기본으로 돌아가고, 돌아갈 곳이 너무 많아서. 다 돌아가야 하나요. 한 군데만 돌아가면 안되나요. 나 혼자만 안 돌아가도 괜찮겠지 뭐. 소외당하고 왕따 당할래. 제가 꼭 마음속으로 한 군데 돌아가고 싶은 게 있거든요. 아름다운 여인의 품. 농담. 마누라한테 맞아 죽을 뻔 했다. 좀 더 고상하게 얘기해서 아무 걱정없이 즐겁게 노는 세상, 에덴의 동산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유영래선배가 오면 '무락'의 경지로 돌아가자고 할텐데. 실향민들은 돌아갈 고향이 없어서.빨리 통일이 되기를.통일이 힘들면 교류라고 자유롭게 되기를.
진짜 마지막. 달라이 라마가 매일 외우는 기도문이 있다고 하네요. 이것 소개하고 끝내겠습니다. 동양의 철학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동양의 철학으로 마쳐야죠.
"누군가를 만날때마다 언제나 나 자신을 가장 미천한 사람으로 여기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상대방을 최고의 존재로 여기에 하소서 / 나쁜 성격을 갖고 죄와 고통에 억눌린 존재를 볼 때면 마치 귀한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그들을 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 다른 사람이 시기심으로 나를 욕하고 비난해도 나를 기쁜 마음으로 패배하게 하고 승리는 그들에게 주소서 /내가 큰 희망을 갖고 도와준 사람이 나를 심하게 해칠 때 그를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게 하소서 / 그리고 나로 하여금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모든 존재에게 도움과 행복을 줄 수 있게 하소서 / 남들이 알지 못하게 모든 존재의 불편함과 고통을 나로 하여금 떠맡게 하소서"
안녕. (4월 26,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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