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들에게 깨달음의 '죽비'를 내리치던 해방 이후 선승 1세대들이 올해 차례로 열반송을 남기고 이승의 옷을 바꿔 입었다.
깨달음의 실체를 담은 큰 스님들의 열반송은 팍팍한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인간사의 우둔함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일체의 속박을 벗어난 우주적 법신을 이룬 스님들이 노래한 열반송은 실체하는 현존의 삶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에 문자의 세계를 떠나 대중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서고 있다.
오랜 세속의 먼지를 털고 떠나는 순간에 부르는 열반송은 평생의 구도행을 정리하는 노래로 매우 중시되고 있다.
열반송은 스님이 임종할 때 글로 남긴 계(戒)라고 해서 임종게(臨終偈)라고도 한다.
게(偈)는 스님들의 귀글(한문의 정형시처럼 짝을 맞추어 지은 글)을 뜻하며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말씀'을 남기는 것이다.
열반송은 때론 서정적이고 때론 충격적일 정도로 역설적이다.
그래서 어떤 것은 아름다운 서정시가 되고, 어떤 것은 오묘한 난해시가 된다.
여기에 특유의 은유.반어법에다 극도로 압축된 경우가 많아 대중들이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13일 입적한 백양사 방장 서옹(西翁) 스님. 좌탈입망(坐脫立亡.앉아서 죽는 것) 하루 전 열반송을 남겼다.
'임제 스님의 한번의 할은 바른 눈을 잃어버리고/ 덕산 스님의 한번의 몽둥이질은 교외별전이 끊어지도다/ 이렇게 와서 이렇게 가니/ 백학의 높은 봉에 달바퀴가 가득하도다(臨濟一喝失正眼/德山一棒別傳斷/恁 來恁 去/白鶴高峯月輪滿)'.
이달 초 입적한 통도사 방장 월하(月下) 스님은 '한 물건이 이 육신을 벗어나니/ 두두물물이 법신을 나투네/ 가고 머뭄을 논하지 말라/ 곳곳이 나의 집이니라(一物脫根塵/頭頭顯法身/莫論去與住/處處盡吾家)'라는 열반송을 남겼다.
조계종 관계자는 "비록 속세의 티끌같은 육신을 내던지고 열반에 들어도 세상만물이 나와 하나이고 곳곳이 나의 집이기에 가고 머뭄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지난 달에 입적한 전남 곡성 성륜사 조실 청화(淸華) 스님은 '이 세상 저 세상/ 오고감을 상관치 않으나/ 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此世他世間/去來不相關/蒙恩大千界/報恩恨細澗)'란 열반송을 남겼다.
올초 입적한 봉암사 조실 서암 스님은 열반송 아닌 열반송으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스님들이 "입적하시고 나서 사람들이 스님의 열반송을 물으면 어떻게 할까요"란 물음에 스님은 "나는 그런 거 없다.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라고 답했다.
서암 스님처럼 의표를 찌르는 것으로는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普照 )국사의 열반송이 있다.
그는 설법할 때 쓰는 주장자로 법상을 치면서 '천가지 만가지가 모두 이 속에 있다'고 소리친뒤 입적했다.
근대의 고승 경허(鏡虛)스님의 열반송도 심오하다.
'마음 달이 뚜렷이 밝아서/ 그 빛이 만상을 삼켰네/ 빛과 경계 모두 없으면/ 다시 이 무슨 물건인가'라고 했다.
후학들은 별들이 빛을 거두어 가듯 인간도 죽음으로 자성(自性)의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성철 스님은 '한 평생 무수한 사람들을 속였으니/ 그 죄업 하늘에 가득차 수미산(須彌山)보다 더하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갈래이리/ 한덩이 붉은 해 푸른 산 위에 걸려 있다'는 열반송을 남겼다.
성철 스님의 상좌인 원택 스님은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스스로 개발하라는 가르침이라고 풀이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