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상 논술특강-인문학적 사고와 자연 과학적 사고

찥 다음은 학문의 영역과 학문하는 자세에 관한 글들이다.

이 글들을 읽고, 인문학과 자연 과학의 독자성과 변별성을 파악한 후 특히 과학 기술의 발전이 두드러지는 현대 사회에서 인문학적 사고와 자연 과학적 사고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띄어쓰기 포함 1,000자 ±100자)

[가]사물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존재 일반에 대한 지식이 아니다.

과학적 지식이란, 특수한 것에 대한 지식이다.

그것은 명백히 지시된 대상을 목표로 하는 것이며, 존재 자체를 향한 것은 아니다.

과학으로 얻는 지식은, 과학이 존재 자체에 대해 철학적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요컨대, 과학의 지식은 삶의 목표와 가치 또는 그 방향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다루는 학문은 과학의 명증성 바깥에 있기 때문에, 삶의 본질적 의미를 과학이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삶이란 과학적 논증을 초월하여 실존한다.

즉, 인간의 삶과 행위는 과학적 논증을 초월하는 진리와 설득력에 근거하는 것이다.

(중략)

이렇게 과학과 철학은 서로 부합하지 않는다.

철학이 여러 가지 과학 중의 하나인 것도 아니다.

사실 철학은 기원, 방법, 그리고 그 의미로 볼 때 본질적으로 과학과 다르다.

그렇지만 과학과 철학의 관계는 밀접하다.

과학은 철학과 연결되면서 빚어지는 혼란에서 스스로를 지킨다.

과학은 사변적(思辨的)인 간섭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항하여 싸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과학은 철학에 특유의 적개심을 드러낸다.

그러나 과학은 과학 자체의 한계성를 인정할 수 있다.

과학만으로는 진리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과학은 철학의 자체적 탐구 영역이 커지는 것을 내버려 둔다.

과학은 철학적 발견의 가치를 승인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과학적인 연구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철학이 판결을 내리지 않는 한, 과학은 철학에 간섭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과학은, 철학이 근거 없는 진술이나 상상에 의한 증명을 내놓지 않도록 면밀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계는 과학과 철학, 양편에 이익을 준다.

과학은 철학적 방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철학이 그대로 과학에 적용된다거나, 과학이 철학의 고유한 목적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철학은, 과학이 추구하는 참된 의미의 동기가 될 때 효력을 발휘한다.

철학은 과학에 이념을 제공한다.

과학자는 그 이념에서 통찰력을 얻고 앎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성찰하며 자신의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철학은 과학에 침투해 들어온다.

철학은 과학의 방법에 접근하지 않으면서도 과학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철학이 침투한 과학은, 말하자면 구체화된 철학이다.

과학은 과학의 활동에 내포된 의미를 인식하면서 사실상 의식적으로 철학화한다.

과학자들이 철학에서 얻는 이익은 실용적인 종류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점차 과학의 전체적인 전후 관계를 알게 된다.

더 나아가 그들은 과학적 연구에 대해 새롭고 강한 동기를 얻게 되며, 그들의 과학적 활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자각하게 된다.

한편으로 철학은 과학이 철학에서 필수적인 것임을 인정한다.

비록 철학은 과학과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진정한 철학은 과학에 결속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철학은 과학으로 터득할 수 있는 세계의 실체를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철학은 진실하고 설득력 있는 것은 무엇이나 알고자 한다.

철학은 스스로 증대하는 자아 인식의 결실을 맺기 위해 진실하고 설득력 있는 것을 원한다.

철학하는 사람은 누구나 과학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경험을 얻는 것이다.

학문적 태도는 진실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철학은 반(反)학문과 겨루어 학문의 승리를 추구한다.

철학에서 과학적 사고 방식을 보전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 조건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성과 학문을 멸시하라. 인간이 지닌 힘 가운데 가장 위대한 그것들을. 그러면 나는 너를 손아귀에 넣게 되는 것이다'라는 메피스토펠레스(괴테의"파우스트"에 나오는 악마)의 위협에 담겨 잇는 진리를 철학은 인식한다.

- 칼 야스퍼스, '대학의 이념'에서

[나]나는 인간이라는 한 동일체의 두 부분, 즉 기계와 자아라는 두 측면을 살펴보기 위해 이 수필의 제목을 '인간의 정체성'이라고 붙였습니다.

사람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의 부분인 생물학적 기계이며, 이후 경험에 의해서 자아가 됩니다.

인간 자아의 특성은 자연을 경험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경험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쉽게 직접 타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인간이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인식하는 것은 타인들과의 관계에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타인의 사상과 감정을 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배우며, 인간성의 여러 가지 모습을 갖춘, 더욱더 심원한 자아를 자신 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자연에 관한 지식은 인간에게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며, 동시에 인간이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반면에 자아에 관한 지식은, 인간에게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자아에 대한 지식은 인간이 인간적 고뇌와 삶의 곤경을 통해 성장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그것은 사람이 모든 피조물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내재한 기계는 분명히 자아에 못지않게 고귀한 것인데도 우리는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그 기계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인간이 하나의 생물학적 '기계'라는 이 자명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인간이 과연 하나의 자아일 수 있는지조차 의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과학이라는 지식이 우리의 윤리를 강화시켜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도대체 믿으려 하지 않고 있으며 그에 따라 윤리는 점점 그 힘이 쇠잔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 안에서 지식을 추구하는 일은 자아를 향한 지식에 못지않게 풍요로운 가치들을 생성해 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동을 위한 지식을 추구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연구 업적에 대해 각별한 존경심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자아에 대한 지식을 위해 다른 사람을 살펴볼 경우, 우리는 그에게 인간으로서 훨씬 더 친숙한 존경심을 품게 됩니다.

인간이 자연(nature) 안에서 얻는 자긍심, 즉 인간의 본성(nature)에 대한 우리의 자긍심은 바로 이러한 연결에 의해서 단 하나의 감각, 즉 인간 존엄이라는 감각으로 성장해 갑니다.

과학의 윤리와 자아의 윤리는 바로 이러한 가치를 통해 연결되는 것입니다.

- 제이콥 브로노프스키, '인간의 정체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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