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라면봉지의 은혜 갚을 차레"

경산버스(주)에 근무하는 한 버스기사가 라면봉지에 차곡차곡 모은 천원짜리를 불우한 처지에 놓인 학생들 돕기에 보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경산버스 99번 운전기사인 윤형식(45.대구시 수성구 두산동)씨가 주인공. 그는 고교 2학년때 어려운 가정 형편에 부모가 식도암과 디스크로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하는 바람에 병원에서 등하교해야 했다.

그러나 결국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끼니마저 떨어진 어느 날 아버지의 친구들이 쌀 한 포대와 라면 몇봉지를 전하고 갔다.

병세가 심각해진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놓고 유언을 남겼다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간다.

너는 불우한 이웃을 돕고 살아라". 윤씨는 아버지의 유언을 늘 가슴에 담고 살았다.

하지만 보일러 공장과 버스회사에 근무하면서 받는 '쥐꼬리 봉급'으로는 자신도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1986년 부인 최혜숙(41)씨와 결혼해 슬하에 1남1녀를 두었지만 생활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난 2000년 초교 4학년이던 외아들마저 교통사고로 잃었다.

모든 의욕을 잃었다.

힘든 이웃들과 함께하겠다던 약속도 지키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언과 세상을 먼저 떠난 아들과의 약속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올초부터 틈틈이 회사에서 지급하는 장갑비.연초비.목욕비 일부를 아껴 라면봉지에 1천원권 지폐를 모았다.

이렇게 모은 돈이 58만3천원. 그는 성탄절날 라면봉지에 모은 돈을 불우한 학생들을 위해 써 달라며 자인초교 우석구 교장에게 전달했다.

우 교장은 "윤씨의 정성이 놀랍다"며 "수백억 불법 정치자금 수수사건으로 혼란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릴만한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라고 했다.

윤씨는 99, 99-1, 399번 동료 버스기사들과 함께 지난 1997년 '새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해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모임은 매월 1만원씩 회비를 모아 경산시 자인.용성.남산초교에 다니는 10여명의 소년소녀가장과 결식아동들에게 매월 13만원씩 전하고 있다.

자인초교생들도 이 회사 박동식(44) 기사가 뇌졸중으로 입원했을 때 35만5천850원을 모아 위문편지와 함께 전달하는 등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경산.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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