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랑하나 공동회

새해 첫날인 1일 오후 3시 동대구역광장 지하철 입구.

찬 바람에 구수한 떡국 냄새가 묻어나가자 이곳 저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굳이 나서서 알리지 않았지만 떡국이 끓여지고 있는 곳 앞에는 10여분 만에 60여명의 노인과 노숙자들이 늘어섰다.

이날 동대구역 광장에 차려진 간이식당은 '사랑하나 공동회'가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

"오늘은 일찍 나오셔서 다행이네요. 떡국이 식기 전에 얼른 줄 서세요".

'사랑하나 공동회'의 자원봉사자들은 낯익은 노인과 노숙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며 날렵한 솜씨로 떡국을 퍼담기 시작했다.

이날 이곳을 찾은 이들은 새해 첫날 '정성'이 가득 담긴 떡국 한 그릇을 비우며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식당을 떠났다.

서구 평리동에서 급식을 받으러 동대구역까지 왔다는 한 할머니는 손에 꼭 쥐고 온 까만 스타킹 하나를 음식 준비에 분주한 자원봉사자의 손에 꼭 쥐어주기도 했다.

할머니는 "매번 공짜밥을 얻어 먹는게 고맙기도 하고 너무 미안하기도 해 꼭 선물을 하고 싶었다"며 "추운데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스타킹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사랑하나 공동회'가 무료 급식에 나선 것은 지난 2001년 11월. 이때부터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매주 목요일이 되면 빠짐없이 동대구역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다.

"딱 집어 말할 만한 특별한 계기는 없었습니다.

평소 이웃을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실천에 옮긴 것뿐이죠". 사랑하나 공동회 회장 서영자(64)씨는 "저를 포함해 회원이 4명이니 굳이 봉사단체라 할 것도 없다"며 "모두 같은 교회의 신도들로 뜻이 맞아 봉사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무료 급식'이 생각만큼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음식냄새 풍긴다고 시비를 걸어오는 노숙자들, 술취해 주정을 부리는 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마음 고생이 심한 적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이들과 노숙자들은 '이웃'이 됐다.

처음에는 노숙자들의 시비로 잔디밭에다 자리를 펴고 급식을 했지만 이제는 정자에서 편하게(?) 급식을 할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아예 팔을 걷어붙이고 급식을 돕는 노숙자들까지 생겨났을 정도.

'사랑하나 공동회'가 무료급식을 하는 방법은 여느 단체와는 조금 다르다.

새해 첫날 노인들과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떡국 한 그릇 대접하고 싶어 특별히 떡국 메뉴가 추가됐지만 이들은 항상 밥.국.반찬과 빵.우유.삶은 계란 등을 봉지에 포장해서 나눠주고 있다.

"처음에는 저희들도 여느 봉사단체처럼 국밥을 드렸는데 굳이 먹지 않고 남겨가려는 분들이 계셨어요. 알고보니 다음날 아침.점심 끼니를 걱정해 조금이라도 남겨가려는 노인분들이 많더라구요".

부지런히 봉지에 반찬 묶음과 밥을 넣어 포장을 하던 전남돌(65)씨는 '사랑하나 공동회'만의 특이한 급식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3인분 가량의 밥과 국.반찬을 넣어 포장을 해주면 빵과 우유로 동대구역 광장에 앉아 허기를 달래고, 나머지는 집으로 가져가 다음날 끼니를 때우도록 한다는 것이다.

영양을 생각해 삶은 달걀 2개도 꼭 빠뜨리지 않는다.

회장 서씨의 설명처럼 회원이 고작 4명이어서 이들은 변변한 사무실 하나 없이 서씨의 집에서 매주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150인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지만 대형 밥솥이 없어 전기밥솥 세개에다섯 번을 돌아가며 밥을 짓고 있는 실정.

전씨는 "자원봉사 인원이 적어 매주 목요일 급식을 하고 나면 금요일부터 바로 다음주 급식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며 "급식에 빠지지 않는 메뉴인 김치는 금요일날 미리 봉지에 조금씩 담아 150개를 포장해 놓고, 메뉴가 정해지면 주말도 부지런히 움직인다"고 말했다.

포장식 급식을 하다보니 손이 두 배로 많이 가 급식이 있는 목요일이 되면 아예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라는 것.

이렇게 150명의 급식을 준비하는데 드는 비용은 20만원 내외. 하지만 정식 단체가 아니다 보니 후원을 받을 수가 없어 비용은 모두 회원들의 주머니를 털거나 지인들의 도움만으로 마련된다.

"배고픈 설움이 가장 크다고 하잖아요. 요즘 사람들은 음식이 남아돌아 다이어트다 뭐다 난리지만 이렇게 밥 굶는 사람들이 많은 줄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됐어요".

사랑하나 공동회 회원들은 밥을 기다리는 노숙자들과 노인들 때문에 추석과 설날 등 명절에도 제대로 쉬질 못한다고 했다.

명절날조차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이들 때문에 아침 일찍 나와 급식을 하고나서야 큰집을 찾아 제사를 지낸다는 것.

현재 동대구역에서는 여러 개의 단체가 요일별로 돌아가며 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일요일은 휴일이 되다보니 아무도 급식을 하는 단체가 없는 실정. 이 때문에 '사랑하나 공동회'에서는 새해부터는 일요일 급식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회원들은 "올해부터는 일이 두배로 늘게 되지만 단 하루라도 동대구역 사람들이 배를 곯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는 데 모두 뜻을 모았다"며 "나눠줄 수 있는 기회가 두배가 되니 오히려 행복이죠"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동대구역 광장은 떡국과 함께 검은 비닐 봉투에 담긴 음식물을 나눠주는 '사랑하나 공동회' 회원들 덕에 훈훈한 인심이 감돌았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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