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지나 콜라타 지음/사이언스 북스 펴냄
겨울마다 찾아오는 불청객 독감. 기침과 콧물.고열을 수반하며 전신이 욱씬거리는 고통을 주지만 1주일쯤 아프면 낫는 성가신 질병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독감은 그러나 에볼라나 에이즈.흑사병.탄저병 못지 않게 무시무시한 질병이다. 특히 10년이나 30년 주기로 등장하는 '살인 독감'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1957년 1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시아 독감'과 1968년 70만명의 희생자를 낸 '홍콩 독감'이 가장 가까운 예이다. 그러나 20세기 초 최소 2천만명, 최대 1억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전대 미문의 살인 독감 속칭 '스페인 독감'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1918년 창궐한 스페인 독감은 1.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 전사한 사람을 합친 것보다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았다. 감염자의 20 퍼센트 정도는 경미한 증세를 보이다가 별 탈 없이 회복됐지만, 나머지 80 퍼센트는 2명 중 1명이 심각한 증세로 악화됐다. 독감이 휩쓸고 간 곳은 지옥 그 자체였다. 이 독감에 감염돼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라고 당시 한 작가는 표현했다.
그러나 미스테리하게도 스페인 독감은 곧 '잊혀진 질병'이 됐다. 전쟁이 끝나자 독감 이야기는 자취를 감추었고, 신문과 잡지, 교과서, 사회의 집단 기억에서 깨끗이 지워졌다.
'복제양 돌리'의 저자이자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인 지나 콜라타는 1918년 독감의 미스테리에 주목했다. 책 '독감'(원제 Flu/안정희 옮김)은 1918년 감의 전염 경로와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피땀을 흘린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기록서로서 1999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과학자들의 끈질긴 추적으로 1918년 독감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이 분석됐지만 그 '살인 무기'와 감염경로는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다만 이 책에서는 한 과학자의 분석을 인용, 조류 독감에서 시작돼 돼지독감으로 전이된 뒤 인간에게 옮겨졌을 것이라는 추정만 소개된다. 저자는 1918년 스페인 독감 이후 어떤 독감이 인류를 위협했으며 그 때마다 과학자와 정부는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해서도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
사스(SARS)에 이어 조류독감, 돼지콜레라 등 전염병 소식이 끊일 날 없다. 항생제 개발로 바이러스와의 오랜 전쟁을 종식시켰다고 자만하고 있는 인류에게 바이러스들은 더욱 가공할만한 무기로 재무장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더구나 인간은 온갖 약을 남용한 나머지 면역력마저 예전같지 않은 상태이다.
1918년 독감과 같은 치명적인 독감이 언제 다시 인류를 위협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교통이 발달한 요즘에 1918년 스페인 독감과 비슷한 파괴력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창궐한다면 심장병.암.뇌졸중 등 다른 온갖 질환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1년 안에 앗아갈 것이 분명하다.
의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요즘 가장 흔한 질환인 독감이 공중 보건의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같은 재앙을 방지하기 위해 인간은 자만심을 버리고 조기경보 체계를 더욱 든든히 갖춰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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