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03년을 보내고 갑신년 새해를 맞이하였다.
정초만큼은 밝은 뉴스를 기대했지만,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日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기습참배는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게 했다.
지금까지 한국정부는 4차에 걸쳐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면서 한.일양국의 우호증진을 꾀해왔으나, 일본은 고이즈미 총리의 '원단신사참배'로 보답을 한 것이다.
1998년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 대중문화의 단계적 개방 방침을 천명한 후, 그 달에 제1차 개방이 실시되었다.
이어 1999년 2차, 2000년 3차로 이어지며 일본어 가창을 제외한 나머지 음반, 대중가요 공연의 전면개방이 이루어졌다.
현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일본 대중문화개방의 폭은 넓어졌다.
새해부터 시작된 4차 추가개방으로 우리는 일본의 드라마도 케이블 TV나 위성방송을 통해 안방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 대중문화의 전면 개방은 자칫 일본의 잔인하고 선정적인 저급문화도 함께 수입하게 되며, 이를 한국의 청소년이 모방하게 됨으로써 교육상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저속한 대중문화를 보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을 엄격히 구별하고 있다.
그 가치는 본인이 판단해야 할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 문화의 현상만을 보고 편견과 선입감을 가질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를 잘 선별하여 즐길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일본인이 대중문화를 철저히 상업화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국인 가수 보아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한국인이라기보다 상업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 대중문화에 지나친 내셔널리즘적인 접근은 오히려 양국의 우호증진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오히려 우리도 철저하게 상업적 접근으로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해야 한다.
나아가 일본 대중문화의 이해를 통해 일본민족이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를 찾아내어 그 차이를 인정하고 극복하면서 양국의 바람직한 문화교류를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일본민족을 이해하기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서구민족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선악의 구별이 분명한 절대적 윤리관을 가지고 있다.
반면 일본민족은 선악의 개념이 불분명하고 상황에 따라 선악이 뒤바뀔 수 있는 상대적 윤리관을 가졌다.
일본 속담에 '빨간 신호라도 모두가 건너면 무섭지 않다'는 것이 있다.
이것은 일본인의 집단성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범죄 행위라도 모두 함께라면 괜찮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도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모습이다.
이 전쟁은 서구인의 절대적 윤리관에 비춰 볼 때 분명히 '악'이지만, 일본인은 일본의 자위를 위해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결코 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이라고 강변한다.
역사교과서 왜곡이 일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일본인은 당연히 반성하지 않으며, 하더라도 떠밀려 마지못해 하는 형식적인 반성일 뿐이다.
위와 같은 일본인의 역사인식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이어진다.
A급 전범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일본인이 전쟁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자신들을 지켜준 조상에 대한 전통 행사로서의 참배일 뿐이라고 강변하며, 오히려 주변국에 이해를 구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부분은 선악관념이 분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국익에, 혹은 일본인의 결집에 도움이 된다면 '악'도 '선'으로 둔갑시키는 일본지도층의 사고방식이며,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일본인의 상대적 윤리관이다.
때맞춰 미국 중앙정보국(CIA) 산하 기관인 국가정보회의(NIC)로부터 일본이 오는 2020년까지 방위력 확대를 위해 헌법을 개정하고 핵무기를 보유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보도까지 접하고 보니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우리는 다시 한번 일본에 대한 경각심을 새롭게 다지며 일본을 능가할 수 있는 우리의 역량을 키우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병로 계명대교수.일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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