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문사설
병자호란 때 청국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성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목을 매 죽거나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포로로 끌려갔다가 귀환한 2만 5천여명 중 상당수가 자살했거나 자살을 시도했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이들은 '고향사람들의 경멸과 가족의 비난을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조선 땅엔 전쟁이 끝나고 나면 으레 여성들의 자살이 뒤따랐다.
고려 때 몽고군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성들에게는 환향녀((還鄕女)란 이름표가 붙었다.
이 말은 '화냥년'이란 말로 변하면서 '정절을 버린 못된 여자'란 의미가 덧붙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현지처 노릇으로 목숨을 부지한 여성들, 병자호란 후 살아 돌아온 여성들에게는 자살이 강요됐다.
이들은 이른바 가문과 정절의 이름으로 처단됐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여성의 정조를 사회문제로 대두시켰다.
우리는 '열녀 이데올로기'에 숨은 폭력성에 주목한다.
왜란 당시의 현지처, 호란 당시의 환향녀는 모두 왕조가 나라를 지키지 못해 생긴 희생자였다.
이들은 전쟁이 나기 전까지 꼬박꼬박 세금을 냈으며 각종 부역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백성된 자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왕조의 요구에 불평 없이 따랐다.
그러나 왕조는 왕조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
그 결과 국토는 유린당했고, 여성들은 왜병의 현지처, 화냥년이란 이름표를 달아야 했다.
백성을 지키지 못한 왕조와 집권 사대부는 엎드려 사죄해야 한다.
그럼에도 사죄는커녕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며 자살을 강요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 타살에 다름 아니다.
집권층의 이 같은 태도는 책임 회피이며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
'어버이가 잘못했다고 한들 어버이를 바꿀 수 없으며 원망할 수도 없다'는 식이다.
왕조는 이른바 '효의 논리'를 지배 이데올로기로 삼고 그 뒤에 숨어 남 탓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배층의 약삭빠른 태도와 함께 왜곡된 가족주의도 반성해야 한다.
'명예자살' 강요는 결국 가족의 생명조차 '가장'을 위해 존재한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과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가족구성원의 생명도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광기에 다름 아니다.
광기에 휩싸인 가족주의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기본적인 권리마저 짓밟아 버렸다.
무엇보다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은 생명이다.
임금이 최근 전국적으로 회절강(回節江)을 지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조치다.
임금은 '도성과 경기도 일원은 한강, 강원도는 소양강, 경상도는 낙동강, 충청도는 금강, 전라도는 영산강, 황해도는 예성강, 평안도는 대동강을 각각 회절강으로 삼는다.
환향녀들은 회절하는 정성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라. 만일 회절한 환향녀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례가 있으면 국법으로 다스리겠다'고 밝혔다.
타국인과 몸을 섞는다고 몸이 더럽혀진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
마찬가지로 흐르는 강물에 몸을 씻는다고 다시 깨끗해진다는 논리도 어리석다.
임금이 '회절하는 정성 운운'하는 것도 염치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어리석은 절차를 지지하는 것은 생명을 구하고 우리 사회를 광기에서 구할 수 있다는 현실적 기대 때문이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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