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우가 멋있잖아". "아니야, 김하늘 보러가자".
이번 설은 연인들에게 힘든 연휴가 될 것 같다.
한국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사진 위)와 '빙우'(사진 아래)가 16일 동시에 극장가에 걸리기 때문. 하지만 영화 속 청춘스타들과 자신의 연인을 비교하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이상형인데 어떻게 하냐고? 그럼 둘 다 보면 되잖아.
◇말죽거리 잔혹사
한마디로 권상우를 위한 영화였다.
최근 청소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아이돌 스타로 자리매김한 권상우는 이 영화를 통해 장동건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곱상한 외모, 소심하게 들리는 어눌하기만 한 말투는 그의 훌륭한(?) 근육질의 상반신과 조화를 이루며 소년과 남성의 이미지를 한데 뭉쳐 놓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유하 감독·16일 개봉)는 TV 드라마 '천국의 계단'을 좋아하는 마니아나 권상우 팬이라면 반드시 보아야 할 영화이다.
등굣길에 선도부원에게 '충성' 구호를 외치며 거수경례를 하고, 교련 교사는 아예 군복을 입은 채 돌아다녔으며, 주먹 앞에는 어떠한 정의도 통하지 않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됐던 그 곳. 바로 1970년대의 학교. 현수(권상우)가 전학간 말죽거리의 정문고가 그랬다.
교련 교사에게 '힘'을 부여받은 선도부장은 폭군처럼 날뛰었고, 덩치가 작은 녀석은 엎드려 있거나 '빽'이 없는 부모를 원망해야 하며, 아이들은 주먹으로 서열을 만들고, 왜 맞아야 하는지 이유조차 물을 수 없었던 당시 청춘들의 슬픈 기억들…. 유하 감독이 왜 영화의 제목에 '잔혹사'라는 말을 빌렸는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 잔혹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 10대였던 사람들과 지금 10대의 성장통(成長痛)을 앓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아름다웠던 청춘의 송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얀 여름교복에 갈래머리 은주(한가인)의 귀밑머리가 일품인 버스 안 풍경은 한번쯤 그런 여학생을 짝사랑해 봤던 30, 40대 남성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선사한다.
연기는 최적이라고 하기 힘든 한가인을 캐스팅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또 감독은 고교생 현수의 동정을 빼앗는 떡볶이집 아줌마(김부선)라는 비현실적으로 보일 법한 인물을 등장시키면서까지 관객들의 추억을 자극한다.
아마도 30, 40대의 머릿속에서 1982년 '염혜리'라는 이름으로 애마부인에 등장했던 그녀의 영상을 끄집어내려 했던 것일까.
영화는 종반부를 치달으면서 우정과 사랑이라는 단순한 70년대 청춘영화의 카테고리를 완전히 벗어 던지며 대박 조짐을 보여준다.
당시 폭압적 국가 권력을 닮았던 제도권 학원 폭력에 대한 감독의 반발감은 "대한민국 학교 X까라 그래"라며 학교를 뛰쳐나오는 현수의 말을 빌어 잘 나타낸다.
거기에다 유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은 라스트신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비록 조금 촌스럽게 보이는 영화 포스터 때문에 다른 영화로 눈길이 돌아가는 관객이 있을 수도 있어 아쉽기만 하지만…. 그래도 세련된 포스터와 잘 포장된 예고편에 속았다는 배신감은 일단 없지 않은가.
◇빙우
온통 눈으로 뒤덮인 설산 빙벽을 오르던 두 남자가 조난을 당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들의 머리 속은 오히려 가슴 저편에 묻어두었던 옛사랑의 기억이 차지한다.
관객들은 알고 있지만 중현(이성재)과 우성(송승헌)은 전혀 모르고 있는 그 주인공, 다름 아닌 경민(김하늘) 한 여자다.
그들이 산에 오른 이유이기도 한 그 여자. 한 남자는 잃어버린 마지막 사랑을 만나기 위해, 다른 남자는 이루고 싶었던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영화는 이렇듯 조난을 당한 두 남자와 그들의 과거를 번갈아 보여주며 힘차게 시작한다.
한국 최초의 산악영화인 '빙우'(김은숙 감독·16일 개봉)는 산악인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산악영화라고 해서 '버티칼 리미트'나 '클리프 행어'류의 긴박한 모험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캐나다에서 찍었다는 알래스카 아시아크산의 아찔한 풍광은 현재 시점의 배경일 뿐. 이야기는 두 남자가 되짚어가는 과거의 '멜로'에 더 큰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영화에는 선 굵은 남성의 산악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섬세한 사랑의 감정이 물씬 풍기는 여성감독 특유의 감성이 배어져 나온다.
감독의 섬세함은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는 아시아크를 오히려 '잃었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사랑의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또 두 남자의 회상이 교차하면서 여주인공의 캐릭터를 형성하는 독특한 구조는 기존 삼각관계의 상투성을 벗어나게 한다.
하지만 극적 긴장감과 순발력이 돋보이는 전반부를 지나면 다소 지루함이 몰려온다.
거기에다 다소 산만한 편집은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몰입하게 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김하늘의 연기에 비해 두 남자배우의 내면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거운 촬영장비를 짊어지고 배우들과 함께 현기증 나는 험준한 산을 오르며 위험한 조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던 제작진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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