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달픈 월세방의 겨울...어느 노부부 겨울나기

대구 서구 평리동의 10평 남짓한 월세방에 사는 이기택(85) 할아버지와 허연(84) 할머니의 올 겨울나기는 고달프기 짝이 없다.

아흔을 바라보는 할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앓아 누워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대.소변조차 못 가리는 부인을 10년이 넘도록 혼자서 간병해오고 있다.

방안에 바퀴벌레가 지나 다니고 며칠째 청소를 하지 않아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지만 병간호에 지쳐 청소할 엄두조차 못내고 하루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이들 부부의 식탁에서는 밥과 간장 이외 음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반찬 살 돈도, 장만할 건강조차 남아 있지 않기 때문.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할머니는 복지관에서 가져다 주는 과자류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다.

할아버지 역시 앞을 보기 힘들고 최근에는 귀까지 멀어 오히려 보살핌을 받아야 할 형편.

하지만 치료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대구시로부터 달마다 받는 경로연금 14만원이 수입의 전부인 할아버지로서는 치료비는 물론 약값조차 대기 힘들기 때문이다.

"귀가 조금만 더 잘 들리거나 눈이 조금만 더 잘 보여도 간호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텐데…". 뇌졸중으로 고통받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할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안타까움에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 노부부에게 가난은 '오랜 친구(?)'였고 불행은 평생을 따라다닌 '질긴 운명'이었다.

경북 군위의 한 시골마을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노부부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지난 1986년. 큰 아들이 병을 앓다 세상을 먼저 뜨는 '불효'를 하면서부터. 한평생 무던히 참고 살아온 할머니가 울화병을 얻은 것도 이때부터다.

자식 잃은 슬픔을 잊으려 대구로 이사까지 왔지만 할머니는 결국 지난 1991년 뇌졸중으로 몸져 누워버렸다.

이들 부부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1996년 둘째 아들마저 병으로 사망, 노부부는 삶의 의미조차 잃어버렸다.

"중풍을 맞은 뒤부터 웃는지 우는지 표정조차 구별되지 않는데 요즘은 죽은 자식놈들 생각에 할머니 눈가에 말라버린 눈물이 자주 비친다"는 할아버지는 "할망구만 자리에서 일어나면 함께 유람이라도 한번 다녀 왔으면 좋겠다"고 작은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현재 대구에 사는 65세 이상 노인중 이들 부부처럼 혼자 사는 노인과 노부부는 8만여명. 이들 중 대구시와 복지단체가 제공하는 가정파견봉사원서비스와 주간보호소 단기보호소 등 재가 노인복지서비스 혜택을 받는 노인은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 경로연금을 지급받는 빈곤층 노인 1만900여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노인들은 홀로 병마와 가난과 싸우면서 그늘진 곳에서 방치되고 있는 셈. 이들은 누구보다도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문의:053)353-8310(서구 제일종합사회복지관). 도움 주실 곳:대구은행 013-05-003402-3.

최창희기자 cc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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