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지역 극장매니저

극장 매니저. 언뜻 생각하면 화려하기만 하다.

얼마전 종영된 한 TV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그들의 화려한(?) 삶은 젊은층에게 선호 직업으로까지 어필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럴까. 자신의 직업을 화려하다고 표현하는 사람은 적겠지만 그들의 대답은 한마디로 'NEVER'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극장의 '노가다꾼'. 극장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기 때문이다.

대구MMC만경관 석경숙(27) 매니저는 "상영관 배정, 시간표 작성, 스태프 관리에서부터 고객 불평 처리, 대외 홍보, 프로모션, 매출 정산까지 극장에 관련된 모든 일을 한다"며 "게다가 하루 4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니 육체적, 정신적으로 일의 강도가 높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메가박스 배의희(25) 매니저는 "특히 요즘 극장 추세가 여러 개의 영화 상영관, 쇼핑센터, 식당, 카페 등을 한 건물 내에 갖춘 멀티플렉스 형태로 바뀌고 있어 매니저의 일이 더 늘게 됐다"고 했다.

극장 매니저의 역할이 '멀티' 수준으로 변한 이유다.

그래도 일이 많고 힘든 것은 참을 수 있단다.

매니저들에게 있어 직업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예의 없는 손님들이다.

씨네시티한일의 이은주(30) 매니저는 "다짜고짜 반말로 시작해서 욕설로 마무리를 짓는 일부 손님들 때문에 하루 하루가 괴로운 적이 많다"며 "시민의식은 높아졌다고 하는데 관객들의 수준은 여전한 것 같다"고 했다.

그들이 꼽은 '꼴불견 손님 유형'은 상상 이상이다.

500원 아끼려고 청소년용 표를 끊는 어른들, 상영관에 음식이나 술을 몰래 가지고 들어가는 사람, 다른 극장 칭찬을 한바탕 늘어놓고 그냥 가는 사람 등…. 롯데시네마 나배식(26) 매니저는 "상영관 안이 자신의 안방이라도 되는 양 큰 소리로 얘기를 나누거나 심지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까지 있다"며 "공공장소에서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이런 손님들은 애교(?)로 봐줄 만하다.

자신의 불만이 바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화장실 대신 영화관을 선택해 볼일(?)을 보거나, 만취한 나머지 구토흔적을 남기고 가는 엽기적인 사람까지 있다고 했다.

아카데미시네마 류승미(26) 매니저는 "손님들의 불평에서도 경상도 특유의 문화가 나타난다"고 했다.

"매니저에게 불평하는 사람은 주로 남성이 많습니다.

대부분 자신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여자친구의 불편을 대신 얘기해주는 거죠. 경상도 남자의 체면문화가 아닐까요. 또 손님의 불평을 처리하기 위해 찾아가면 바로 "남자 불러와, 너말고 더 높은 사람 말이야'라는 식으로 여자 매니저를 무시하는 손님들이 많은 지역도 이 곳이지요".

그런데 이들은 왜 이렇게 힘든 곳을 떠나지 못할까. 성취감, 보람 등 좋은 점도 많기 때문. MMC만경관 석 매니저는 "좋아하는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는 것이 제일 좋다"고 했다.

"1년에 200편의 영화를 봐요. 직원은 무료 관람이니까, 돈으로 따지자면 수백 만원을 저축하고 있는 셈이죠. 또 젊은 층을 많이 상대하다보니 젊게 사는 것 같아요.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이 또 있을까요".

아카데미시네마 류 매니저는 "사소한 친절을 베풀었는데도 나중에 고객들이 제 이름을 기억하고 찾아와 고맙다고 얘기해줄 때 이 일의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롯데시네마 나 매니저는 "고객들의 불편사항을 재빨리 해결했을 때나 끝까지 최선을 다해 해결방법을 찾은 뒤에 얻는 성취감은 다른 직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매력"이라고 했다.

그래서 좋은 매니저가 되려면 순발력과 인내심이 필수란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다 보니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 현장에서 벌어지는 돌발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고객의 불편사항을 끝까지 참고 들어줄 줄 아는 성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에다 말을 논리적으로 조리있게 잘 하는 달변가 기질까지 있다면 바로 극장 매니저에 도전하라고 권한다.

씨네시티한일의 이 매니저는 "편안한 이미지의 인상도 매니저의 필요한 자질"이라고 했다.

"아무리 친절해도 인상이 좋지 않으면 손님들이 싫어하지요. 그래서 극장 매니저 치고 못생긴 매니저가 없을 걸요. 하하하"

현직 매니저들은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도전하지만 실제는 험난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시작한 멀티플렉스가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아 근무여건이 열악한 상태라는 것. 메가박스 배 매니저는 "2, 3교대로 하루 9, 10시간씩은 일을 해야 하고 필요하면 연장근무 및 새벽근무까지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겉모습에 반했다면 일찌감치 그만두는 것이 낫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