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우리의 정신문화 브랜드를 찾자

새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이십여 일이 지났다.

올해는 설이 빨라서 연초에 느끼는 세월의 속도감이 특히 빠른 것 같다.

설 연휴를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가 평상심을 회복할 때 즈음이면 그런 느낌이 더 하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그 때쯤이면 아마 모두들 연초에 세웠던 갖가지 계획들에 대해 예의 '작심삼일'을 경계하며 한 번쯤 되돌아보기 시작할 것이다.

갑신년 우리 사회의 새 출발 역시 과거와 미래를 균형감 있게 조망하는 이와 같은 반성적 몸가짐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관점에서 돌이켜 볼 때, 지난 해 우리 사회는 마치 큰 홍역을 앓은 느낌이다.

노사와 빈부, 보혁과 지역간 대립갈등은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하였고, 경제의 전반적인 불황은 나라 전체를 무기력 상태로 빠뜨렸다.

더구나 연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였던 불법 정치자금 문제는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정치라는 점을 확인시켜 줌으로써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쯤에서 다시금 되돌아보건대,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적인 소식이 아주 없지도 않았다.

그동안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던 검찰이 국민의 희망으로 떠올랐다든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수출이 드디어 2천억 달러를 바라보게 되었다는 소식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희망적인 소식들 가운데 특히 기억하고 싶은 것은 국내 대기업 하나가 세계 100대 브랜드에 25위로 진입했다는 지난 해 가을의 어느 외신이다.

이 뉴스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것이 작금의 총체적인 난국을 극복하고 우리 사회를 한 차원 더 도약시키는 데 하나의 의미있는 단서를 제공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가적 차원의 정신문화 브랜드 전략이다.

현대 마케팅에서 기업은 상품을 판다기보다는 오히려 상품이 상징하는 문화를 판매한다.

예를 들어 세계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리바이스 청바지의 성공배경에는 '자유'와 '독립정신'과 같은 미국적 가치를 상품에 담아 파는 브랜드 전략이 깔려 있다.

이처럼 현대사회에서 특정 제품의 브랜드 가치는 그것이 속한 국가의 이미지와 깊은 관련이 있고, 국가 이미지는 또 그 나라의 문화 또는 정신가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가 이미지를 높일 정신문화 브랜드의 창출 필요성은 바로 여기에서 생겨난다.

정신문화 브랜드는 글로벌 시대 국가 경쟁력의 자산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병폐와 갈등을 치유하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프랑스의 '톨레랑스'(관용)는 다민족 국가인 프랑스의 사회적 통합의 구심점이자 자국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무형의 자산이다.

이밖에 미국의 청교도 정신과 일본의 대화혼(大和魂) 등, 선진국으로 거론되는 나라들은 대부분 자타가 공인하는 정신문화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근래의 생활사 연구가 밝히고 있듯이 우리도 과거에는 뛰어난 정신문화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산업화 과정에서 얼마간의 부(富)를 손에 쥐는 대가로 상실해버렸고, 그 틈을 비집고 지나친 효율성 위주의 사고와 금전만능주의 사조가 사회저변에 팽배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 우리 사회에는 도덕적 정당성과 절차적 합리성이 무시된 채 집단간의 갈등과 윤리적 타락의 정도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난마처럼 얽힌 이런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정신가치를 모색하지 않고는 미래의 성장엔진도 2만 달러 선진국의 꿈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이제 다시금 세계에 내놓을 새로운 정신문화 브랜드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전통에 대한 탐색과 재해석에서 찾아져야 한다

눈 여겨 보면 자산은 적지 않다.

전통예술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한 상생(相生)의 미학이 발견되고, 한국불교에서는 이견과 대립을 포섭하는 화쟁(和爭)사상이 두드러진다.

또한 유학에서는 사욕을 넘어서 공동선을 추구하던 선비정신이 있고, 서민의 삶에서는 상호부조의 두레정신이 주목된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문화만큼 전통과 현대, 그리고 추상성과 구체성을 포괄하는 것도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전통문화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각도에서 접근해야 한다.

전통문화에서 우리 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고 국가경쟁력의 토대가 될 새로운 정신문화 브랜드를 준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갑신년 새해의 힘찬 첫 걸음이 전통 속에서 우리의 새로운 정신문화 브랜드를 창출하기 위해 사계(斯界)의 중지를 모으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심우영(한국국학진흥원장.전 총무처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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