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한해의 첫머리에 해당하는 날이 설이 되기 위해선 최소한 요즘의 달력 만들 정도의 역법(曆法)을 알아야 가능하다.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했고 신라시대 가위(嘉俳)나 수릿날 풍속이 있었다는 기록을 통해 우리 민족이 고유의 역법을 가졌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고유의 역법이 제정됐다는 명시적 기록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설은 6세기 이전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이 들어온 이후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각종 사기에 따르면 신라인들이 원일(元日) 아침에 서로 하례하고 왕은 일월신을 배례했다는 기록이 있고 혜공왕(765∼780) 때는 오묘(五廟: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를 지정하고, 정월 2일과 5일을 포함 연간 6회 성대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백제 고이왕은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은 정월에 시조 사당에 배알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설과 유사한 풍속의 시작은 삼국시대로 추정하는 것이다.
▲고려시대로 넘어와서는 설을 필두로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 등 9대 명절을 챙겼고,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이 4대 명절로 정착했다.
일제 강점기가 되자 먼저 개화한 일본이 우리민족 최대명절인 설을 구정으로 밀어버리고 신정을 내세우는 바람에 최근까지 신정.구정 논란을 벌이는 등 혼란과 후유증을 남겼다.
그러나 설은 민족 고유의 끈질긴 인고정신과도 같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설이 세태의 변화에 따라 성격과 행태가 많이 변질되긴 했지만 최대의 명절인 것만은 변함이 없다.
본질적으로 설은 조상 숭배와 효에 기반을 두고 있다.
먼저 간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자손의 번창과 화합을 다짐하는 날이다.
정성껏 준비한 설음식(歲饌)을 차리고 깨끗한 설빔(歲粧)으로 갈아입고 차례를 올린다.
옛날엔 차례를 지내기 위해 사흘전부터 목욕 재개했다.
차례를 마치면 어른들에게 세배(歲拜)를 올리며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새해 복많이 받으라"는 덕담(德談)이 오간다.
▲설은 집안의 행사만은 아니다.
집안에서 차례와 하례가 끝나면 이웃 어른들을 찾아나서 세배를 올리고 서로의 안녕을 빈다.
아낙네들은 즐겁게 음식들을 주고 받는다.
설날을 지나서는 동네 잔치가 벌어진다.
대보름까지 윷놀이 널뛰기 등 각종 놀이판을 벌여 이웃끼리 우애를 나눈다.
엄동설한에 맞는 설이 결코 춥지 않았던 것은 때때옷처럼 따뜻한 마음들이 서로를 녹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번 설은 올 겨울들어 가장 추울 것이라고 한다.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따뜻한 명절을 만든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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