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버지 이 아들을 용서하세요. 진작에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아버지 늦게 나마 이 아들 따뜻한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고이 잠드세요".
20일 낮 10시쯤 선친의 묘소를 찾은 탈북 국군포로 전용일(全龍日.72)씨는 어머니를 목메어 부르다 감격에 겨운 듯 말을 잇지 못했다. 52년만에 부모님께 올리는 큰 절. 선친의 묘 앞에 꽃과 술을 올리는 전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어 전씨는 옆에 있는 맏형 환일씨의 묘에도 큰절을 올렸다.
동생 수일씨의 집에서 하룻밤을 잔 전씨는 탈진상태였던 전날과는 달리 몸이 가벼워 보였다. 오전 8시쯤 집을 나선 전씨는 "잘 주무셨느냐"는 이웃들의 인사말에 "아직 억양이 낯설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점을 이해해 달라. 조국을 위해 바친 한 평생을 희생이 아니라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답하는 등 한결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동생 수일씨는 "형이 이날 새벽 4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며 "북에 남기고 온 2남1녀의 안위를 벌써부터 크게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전씨는 전날 밤 11시45분쯤 영천시 신녕면 완전리 형수 김손년(81.여)씨 집앞에 도착해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전씨는 고향 땅을 밟은 감격에 두팔을 높이 치켜든 채 연신 눈물을 흘렸고 목멘 소리로 기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약간 여윈 얼굴에 육군하사 계급장을 단 얼룩무늬 군복위에 코트를 입고 검은색 모자, 군화 차림의 전씨는 복받쳐오르는 감정과 한을 가눌길 없는 듯했다.
몇시간 전부터 전씨를 기다리던 추영호 신녕면장 등 지역 기관장과 주민 100여명은 전씨와 가족 일행이 버스에서 내리자 열렬한 박수로 환영했다.
형수 김씨 집 마당에서 간단한 환영식을 마친 전씨는 동생 수일(65)씨의 부축을 받으며 거실로 들어섰다. 이날 전역식 행사와 장시간 버스여행에 시달려 거의 탈진상태였다. 하지만 전씨는 자신을 기다리던 일가 친척들과 선.후배, 지역유지 등 고향사람들과 인사나누면서도 노병의 기개를 잃지않았다.
전씨는 "동포 여러분 고맙습니다. 고향에 계신 형제들 정말 기쁘오. 52년만에 찾아왔습니다"라고 인사말을 한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조카와 조카 며느리들의 큰 절을 받은 전씨는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는 조카들의 인사말에 "고생은 무슨 고생... 모두 이렇게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전씨와 함께 6사단에서 영천까지 동행한 정동재 영천시 대외협력담당은 "고향 땅을 밟는다는 설레임 탓인지 전씨는 강원도에서 영천까지 오는 동안 식사도 걸렀다"고 귀띔했다.
한 마을에서 자랐던 지원배(75), 이상인(71), 전복제(71)씨 등은 "용일씨가 어릴 적부터 성격이 무던하고 정의감이 강했다"며 "용일씨의 전사통지서를 받고 친구들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회상했다.
형수 집에서 30여분간 머문 전씨는 잠자리가 마련된 화산면 유성리의 동생 수일씨의 집으로 갔으며 자정이 넘도록 집앞에서 기다리던 가족, 주민 등 50여명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수일씨는 형님을 위해 아래채를 수리하고 요이불에다 침대까지 마련해놓았다.
그러나 화장실에 들른 전씨는 소변을 못보고 방광의 통증을 호소했다. 경찰순찰차를 타고 20일 새벽 12시50분쯤 영남대 영천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전씨는 혈압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막내동생 분이(56.여)씨는 "고향에 오자마자 오빠가 이렇게 몸이 아파 너무 안타깝다"며 안쓰러워했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없다는 진단과 함께 소변을 뽑아내는 응급처치를 받은 전씨는 가족들과 함께 동생 수일씨 집으로 향했다.
1951년 군에 입대하고 1953년 북한군에 포로가 된 뒤 탈북, 억류에서 귀향까지 52년간의 머나먼 여정을 마친 전씨는 20일 낮 영천시에서 마련한 환영회에 참석했다. 영천.서종일기자 jise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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