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생 거위와 보낸 일년-거위 삶, 인생사와 닮았네

"어, 이 사진 어디서 본 건데…". 첫 장을 넘기자마자 눈에 익은 사진이 기억력을 자극한다.

교과서에서 한번쯤 보았을 어린 거위 새끼들이 수염이 허연 노학자를 어미 거위로 알고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 이처럼 콘라트 로렌츠의 '야생 거위와 보낸 일년'은 첫느낌부터 낯설지가 않다.

이 책은 오스트리아의 세계적 생물학자이면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저자가 야생 거위들을 연구하기 위해 오랜 세월 거위들과 함께 살았던 이야기다.

어린 거위 새끼들은 알을 깨고 나온 뒤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알게 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바로 그 유명한 이야기. 살아 있는 동물을 관찰하는 잔잔한 기쁨에 흠뻑 빠지게 된다.

또 "야생 거위의 결혼생활이 사람과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모른다"는 저자의 말처럼 사람과 비슷한 야생 거위들의 삶을 읽는 즐거움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틈만 나면 바람을 피워대고, '자식에 대한 사랑'을 부부사이를 잇는 끈으로 삼고,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스포츠카를 타고 쌩쌩 달리는 청년을 연상하듯 보통 때라면 걸어갔을 짧은 거리를 연인 앞에서는 굳이 날아가는 거위들….

거기에다 아내를 다른 수컷에게 빼앗긴 뒤 실의에 빠져 서열의 맨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거위와 암거위를 둘러싼 쟁탈전 등 사랑과 질투의 드라마는 가슴 뭉클하게 만들고, 새끼 거위들의 가소롭고도 치열한 서열 다툼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야생 거위들의 생생한 삶을 담은 147장의 사진이다.

책을 읽지 않고 사진만 보더라도 야생 거위들의 삶을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와 닿게 해준다.

또 사진 덕에 활자에 지친 눈을 잠시나마 쉬게 할 수 있어 더 좋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오스트리아 알름 계곡의 싱그러운 바람 냄새와 함께 그곳에서 뛰노는 야생 거위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독자들의 지친 영혼을 말끔히 씻어 줄 것이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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