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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연휴의 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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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 초순경 다 늦은 시각에 중고 텔레비전을 집에 들여놓았다.

천안에 계시던 부모님이 다니러 오셨기에 심심해 하실 것 같아 구한 것이다.

설 명절을 여기서 보내시라고 강권하여 붙잡은 부모님은 올해로 칠순을 넘기신 분들이다.

이 분들에게 텔레비전은 참 필요하고 중요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어머니는 그래도 책을 읽으시고 아기자기하게 시간을 보내시기도 하지만 아버진 속수무책이다.

취미도 특기도 아무런 재미도 없이 일생 일만 하신 분의 노후는 자식으로서 보기에 민망할 만큼 지루함의 연속이다.

그나마 텔레비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부모님과 함께 명절을 보낸 덕분에 나는 연휴 내내 텔레비전과 함께 지냈다.

수년 동안 텔레비전 없이 살다보니 별로 흥미가 없다.

그래도 있으면 재미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해보긴 했다.

하지만 이번 연휴를 통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만큼 텔레비전에 질렸다.

잠이 적은 어머니는 이른 아침에 텔레비전을 켜신다.

아,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깨는 아침의 불쾌함이란…. 낮 시간에 보는 텔레비전은 하루를 녹여 버리고, 밤 시간은 생각하거나 정리할 여유를 증발시켜 버렸다.

하루종일 붕 뜬 채 살게 하는 능력을 텔레비전은 갖고 있다.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대중매체로서 텔레비전은 이미 우리의 삶과 정신을 조직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시청자는 보고싶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만 볼 수 있다.

채널이 많아진 것이 시청자의 선택 폭이 넓어진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화면이든 그 누군가가 통제하고 편집하고 삭제하며 만든 것이다.

그 누군가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뿐인 것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전달되는 내용이 가장 중요하며, 또 진실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다른 사람이 떠 주는 밥을 먹을 것이 아니라, 내 밥상을 내가 차리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이 아닌가. 주체로서 사랑하고, 경험하며, 판단하는 삶이 건강하다.

내일이면 부모님은 다시 천안으로 가신다.

난 가장 먼저 텔레비전을 치우고 밖에 나가 누구라도 만나볼 생각이다.

정금교(대구 만남의 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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