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애성공기 영화2편

나폴레옹은 말하기를 "연애에서 남자의 승리는 도망치는 데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 도망은커녕 사랑이란 불구덩이 속으로 돌진해 사랑을 쟁취하는 두 남자가 있으니…. 그 둘은 오히려 나폴레옹에게 큰 소리로 반박한다.

"연애에서 진정한 승리는 부딪히는 데에 있다".

짝사랑하는 두 남자의 연애 성공기를 그린 한국영화 두 편이 같은 날 관객을 찾아간다.

'안녕! UFO'(김진민 감독)와 '그녀를 모르면 간첩'(박한준 감독)은 짝사랑을 소재로 한 코믹물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또 다른 닮은꼴을 갖고 있다.

새해 들어 '실미도', '말죽거리 잔혹사'로 이어지고 있는 한국영화 흥행 바통을 접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슬픈 거짓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거짓말을 해본 적이 있는가. 사람들은 흔히 아름다운 거짓말이라고 적당히 이름을 붙이곤 하지만 영화 '안녕! UFO'와 '그녀를 모르면 간첩'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거짓말이 안타깝다 못해 슬프다.

어느 날 길가에 주저앉은 맹인견 때문에 힘들어하는 시각장애인 최경우(이은주)를 도와주며 친구가 된 박상현(이범수). 첫눈에 반한 상현은 경우에게 잘 보이기 위해 버스 기사가 아닌 전파사 오너로, 박상현이 아닌 박평구로, 1977년생이 아닌 1975년생으로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둘 사이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눈먼 사랑을 얻기 위해 했던 거짓말은 슬픔이 되어 돌아오는데….

이처럼 '안녕~'이 사랑을 위한 남성의 거짓말이 등장한다면 '그녀를~'에서는 여성의 거짓말이 내러티브가 된다.

간첩이라는 신분을 속여야 하고, 그 신분 때문에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림계순(김정화)의 내면갈등은 한마디로 고통스럽다.

◇괴로운 외사랑

홀로 하는 사랑만큼 괴로운 것이 또 있을까. "짝사랑처럼 돈 안들고, 시간 뺏기지 않으며, 속 편한 것이 어디 있냐"고 혹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들을 살펴보시라. 그들이 정녕 짝사랑을 즐기고 있는지를….

'안녕~'의 상현과 '그녀를~'의 고봉은 소심함 탓에 짝사랑의 괴로움이 더 크다.

술에 의지해 슬픔을 잊으려고 하기도 하고, 비를 흠뻑 맞으며 밤새 돌아다니며, 길거리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등. 두 사람에게서 배어져 나오는 아픔은 이 영화들이 코믹물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또 가장 뛰어난 조연 중에 하나인 쏟아지는 비는 괴로움의 촉매제 역할을 단단히 한다.

하지만 왜 두 사람의 슬픈 표정에 웃음이 날까? 해피엔딩이 예고된 스크린에서의 괴로움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두 배우들의 코믹한 이미지 때문일까.

◇잔잔한 따뜻함과 지루한 웃음

두 편의 영화를 굳이 비교하자면 '잔잔한 따뜻함'과 '지루한 웃음'이다.

순박한 버스기사와 시각장애인의 로맨스를 다룬 '안녕! UFO'는 21세기에 휘발된 순정의 정서를 되살린다.

특히 두 남녀 주연배우의 원숙한 연기력과 탁월한 호흡은 '2004 베스트 커플상'으로 손색이 없다.

'오, 브라더스'에 이어 다시 순수한 캐릭터에 도전한 이범수는 약간 소심한 듯하면서도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이미지가 천성인 듯하다.

눈을 뜬 상태로 시각장애인의 역할을 소화해야 했던 이은주의 연기력도 이미 절정에 다가선 느낌이다.

지난해 '안녕~'을 비롯해 '하늘정원', '태극기 휘날리며'를 정신 없이 찍으며 보냈던 이은주에게 올해는 그녀의 해가 될 전망.

또 '바람난 가족'에서 개성 있는 연기를 선보인 봉태규와 가수 전인권 등 다른 조연들의 활약도 양념을 더한다.

다만 이야기의 구조가 고저 없이 평행만 달리는 등 폭이 좁고, 색깔이 다소 약한 주연 캐릭터들의 로맨스에 집착한 나머지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군상들을 너무 소홀히 처리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개성도 깊이도 없는 팝콘 무비의 왁자지껄함 보다 막차 버스에 흐르는 편안한 음악과도 같은 이 영화의 잔잔함에 더 끌리는 이유는?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지난해 전국을 강타한 얼짱 신드롬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긴 데다 김정화, 남상미, 공유 등 신인배우들이 대거 가세해 신선함으로 채워졌다.

소재 자체가 신세대를 겨냥하고 있어 영화는 전체적으로 밝고 신선하다.

하지만 '절대로 두 번 생각하지 말라'고 강요하듯 너무 가볍고 엉성하게 전개되는 스토리와 TV 시트콤을 연상하는 듯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캐릭터들…. 이런 저런 단점들로 인해 관객들에게 가장 말초적인 웃음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지루함만 더한다.

백일섭, 김애경, 자두 등 카메오 연기자들의 코믹함에 다소 위안을….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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